'흑산도 아가씨' 빼놓을 수 없어
맛 들기 시작하는 흑산 홍어도
정약전의 '자산어보' 실제 무대
최근 '신안 흑산 홍어잡이 어업'
제11호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흑산도' 하면 가수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와 코끝이 알싸한 감칠맛 나는 홍어가 생각난다. 흑산홍어는 초가을에 들어서면서 맛이 들기 시작해 겨울에 절정을 이룬다. 흑산도는 홍도와 연계되어 일 년이면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전국에서도 유명한 섬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가 지난 5월부터 상영되면서 자산어보의 실제 무대였던 흑산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더 많아졌다. '자산어보'는 1814년에 정약전이 저술한 어류도감으로,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 갔을 당시에 쓴 책이다. 이번 흑산도 섬산 여행기는 2회에 걸쳐 흑산도 여행과 칠락산 여행으로 나눠 싣는다. 흑산도 예리항을 감싸 안은 칠락산은 유명한 아웃도어 업체 블랙야크에서 섬&산 50에 지정한 곳으로, 전국의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지명 유래
섬은 바다로 둘러싸인 산이다. 섬이 곧 산이듯, 흑산도(黑山島)가 곧 흑산(黑山)이다.

흑산도 사람들은 흑산(黑山)에 터전을 잡고 살았다. 흑산이라는 큰산 이름에 딸린 대모산, 칠락산(七樂山·272m), 반달봉, 상라봉(象羅峰·227m), 깃대봉, 문암산(問岩山·400m), 선유봉(仙遊峰·300m), 옥녀봉(玉女峰·274.5m)은 큰산이 지어진 뒤에 붙여진 산 이름들이다. 결국 흑산도의 모든 산과 봉우리들은 흑산이라는 큰산에 딸린 산과 봉우리들이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흑산도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고려도경은 섬을 산으로 인식한 최초의 문헌이다. 흑산(黑山)이나 백산(白山)은 항해로에서 섬을 바라볼 때 보이는 모습에 따라 명명한 섬 이름 이었을 것이다. 옛날 중국과 교류하던 시절 항해로에 위치한 흑산도는 역광(逆光) 상태에서 바라보면 시커멓고 큰산으로 보였을 것이다. '선화봉사고려도경'은 고려 인종1년(1123년)에 송나라 휘종의 명에 따라 사신으로 파견된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년)이 한달 남짓 개성에 머물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송나라에 돌아가 편찬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의 항해기를 보면 "흑산은 백산(홍도로 추정) 동남쪽에 있어 바라보일 정도로 가깝다. 처음 바라보면 극히 높고 험준하고, 바싹 다가서면 산세가 중복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앞의 한 작은 봉우리는 가운데가 굴같이 비어 있고 양쪽 사이가 만입(灣入)했는데, 배를 감출 만하다. 옛날 바닷길에서 이곳이 사신의 배가 묵는 곳이었다. 관사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런데 이번 길을 잡음에는 여기서 더 이상 정박하지 않았다. 위에는 주민의 부락이 있다. 나라(고려를 말함) 안의 대죄인으로 죽음을 면한 자들이 흔히 이곳으로 유배되어 온다. 언제나 중국 사신의 배가 이르렀을 때 밤이 되면 산마루에서 봉화불을 밝히고 여러 산들이 차례로 서로 호응하여서 왕성(개경을 말함)에까지 가는데, 그 일이 이 산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시 후에 배가 이곳을 지나갔다"고 기록됐다.

흑산도에 도착하면 관광객을 안내하는 버스기사나 택시기사들은 "흑산도란 섬 이름은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섬이라 하여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흑산이란 산 이름 역시 블랙(black)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큰산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걺미' 혹은 '검뫼'를 한자로 흑산(黑山)이라 표기한 것이다. 한자 흑은 black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훈차표기(訓借表記)도 아니고 (흑/hei)이란 음을 적기 위한 음차표기(音借表記)도 아니다. '크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사음훈차(似音訓借)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선시대 유명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인 손암 정약전이 사리에 15년 동안 유배와서 지은 자산어보의 서문에 "흑산이라는 이름은 어둡고 처량하여 매우 두려운 느낌을 주었으므로 집안 사람들은 흑산(黑山)을 자산(玆山)이라 쓰곤 했다. 자(玆)는 흑(黑)과 같은 뜻이다"라고 하여 자산이란 이름의 유래를 밝힌 바 있다.
흑산이 '크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사음훈차를 한 것이라고 정약전 선생이 알았다면 자산어보라는 책이름은 흑산어보(黑山魚譜)란 이름으로 지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날 홍어와 삭힌 홍어
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산폐현(榮山廢縣)은 주의 남쪽 10리에 있다. 본래 흑산도 사람들이 육지로 나와 남포(南浦)에 우거하였으므로 영산폐(榮山廢)이라 했다. 고려 공민왕(恭愍王) 12년 (1363년)에 군으로 승격했다가 후에 주에 예속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 말, 몽고와 왜구가 제주도를 자주 침입해오자, 그 대비책으로 고려 조정은 '해도입보론(海島入保論)'과 '해도개발론(海島開發論)' 두 가지 대안을 내놓았다.

이는 적이 침입해 오는 길목에 위치한 섬에 군사와 주민들을 들여보내서 이들로 하여금 섬을 방비하도록 하여 섬을 개발하자는 제안이었지만 이 계획들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되었다.
진도, 장산도, 압해도, 흑산도 등 서남해 치소를 모두 내륙으로 이동, 섬 주민들을 강제로 육지로 내보냈다. 섬을 비우는 정책, 이른바 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이주를 하게된다.
흑산도 사람들은 나주에서 남쪽으로 10여 리 떨어진 영산현(榮山縣)에 살았다. 압해도 사람들은 압해현에, 장산도 사람들은 장산현에 살았다. 흑산도 사람들이 살았던 곳을 흑산현으로 하지, 왜 영산현이라 하였을까.

흥미로운 것은 1982년 한글학회에서 발행한 한국지명총람에 영산현이라는 현이 존재한다. 흑산도 주민들이 공도정책으로 영산포로 이주시기에 흑산현은 영산현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조선후기 1872년에 발행된 흑산도지도(黑山島地圖)에 영산도( 永山島)가 보인다. 흑산도 주변에 영산도(永山島), 내영산도(內永山島), 외영산도(外永山島)란 섬이 있다. 흑산군도의 영산도(永山島)의 '영(永)', 나주의 영산포(榮山浦)의 '영(榮)'은 한자도 틀리다. 영산도란 섬 이름은 영산홍(映山紅)이 많이 피어서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오지만, 영산홍(映山紅)이라는 꽃 이름과는 관련이 없는 섬 이름이다. 흥미로운 대목이기도 하다.
흑산도 사람들은 날 홍어를 즐겨 먹는다.

흑산 홍어의 찰진 맛은 회의 쫄깃한 맛을 압도한다. 흑산도 사람들이 영산포(榮山浦)로 이주 당시 흑산도 해상에서 잡은 홍어를 싣고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삭혀졌을 것이다. 영산강(榮山江)은 어느 땐가 흑산도가 영산현으로 불렸을 당시 유래된 강 이름일 것이다.
"홍어 댕기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가 댕기는 길은 가오리가 알지요."
영화 '자산어보'에서 흑산도로 유배를 온 조선 학자 정약전에게 어부 창대가 무심한 듯 홍어와 가오리를 구분해준다. 전남 신안군의 흑산도는 국내 참홍어 전체 어획량의 80~90%를 차지할 만큼 홍어 본고장으로 꼽힌다. 최근 '신안 흑산 홍어잡이 어업'이 제11호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됐다. 국가중요어업유산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고유의 유무형 어업자산을 보전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2015년부터 해양수산부에서 지정·관리하고 있다. '신안 흑산 홍어잡이 어업'은 흑산도 일대 연근해 어장에서 행해지는 전통 어법이다. 긴 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싯바늘을 달아 홍어를 잡는 낚시어구(주낙)로 미끼를 끼우지 않고 미늘이 없는 낚싯바늘(걸낙)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늘은 낚시 끝의 안쪽에 있는 작은 갈고리다.

흑산도의 '주낙' 방식은 혼획이 없고 미끼를 사용하지 않아 해양 오염도 최소화하는 등 수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점도 인정됐다. 신안 흑산 홍어잡이 어업이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앞으로 3년간 환경개선을 위한 홍어 위판장 현대화사업과 상징조형물 설치, 전통자료 복원, 연계 상품개발 등이 이뤄진다고 한다.
◆흑산홍어 맛보기 팁

흑산도 홍어는 지느러미에 가시가 있고, 색깔도 검붉은 윤기가 나며 살은 탄력이 넘치며 맛도 찰밥같이 찰지다고 한다. 흑산홍어는 신안군수협 라벨이 붙어 있다. 흑산도 예리항에서 홍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식당들이 많다.
날 홍어나 삭힌 홍어와 관계없이 한접시에 3만~5만원 선이다. 암치홍어가 수치홍어 보다 더 찰진 맛이 난다고 한다. 올해 추석 무렵에는 흑산도 큰 홍어 한 마리에 50만~60만원 선까지 거래된다.
천기철 기자 tkt7777@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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