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은 물론 정부 지원체계도 전무한데 광주가 획기적인 발달장애인 정책을 선보여 감사한 마음입니다."
전화기 너머 김유선 장애인부모연대 대표의 목소리는 상기돼 있는 듯 했다.
발달장애인들을 공공영역에서 돌보겠다는 광주시의 최근 정책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만감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얼마나 다행하고 반가운 일인지 모른다.
코로나 19로 온 사회가 셧다운 되다시피 하면서 약자들은 또 다른 재앙에 직면해야 했다. 그 중 다른 이의 돌봄이 생의 조건이 되는 일부 장애인들에게 기관 폐쇄는 생사가 걸린 현실적인 재난이다.
지난 봄 제주에서 발달장애 아들과 부모가 죽음으로 내몰린데 이어 6월에는 광주에서 똑같은 참사를 목도해야 했다. 동반자살이란 이름의 이 사회적 타살 앞에 누구도 선뜻 알은채를 안(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광주가 정책으로 응답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애로가 있다'는 그 닳아빠진 변명조차 들리지 않는 이 불행한 사회에서 광주가 '사회적 돌봄'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너무나 자명한 이 대안은 그러나 누구도, 국가도, 여느 지방자치단체도 거들떠 보지 않고, 못했던 길이다.
이는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정책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자 극단화된 각자도생의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장애, 혹은 돌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새롭게 규정한다는 점에서다. 이 새 정책은 약자의 취약함이 사회적 문제라는, 사회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하다는 인식의 대전환을 제시한다.
이와함께 장애인을 특정 '시설'에서 집단 관리하는 체계에서 벗어나 한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누구나처럼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새 정책은 들여다 볼수록 새롭고 따스하다. 핵심은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 지원센터 설치, 이를 통한 24시간 돌봄체계구축, 발달장애인 전환지원팀 신설, 긴급돌봄센터 운영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강조했다시피 전국 최초다. 죽음으로 내몰리던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정책이다.
사람을 살리는 이 전국 최초는 시민의 절박함을 나몰라라 하지 않은 관계자들의 노력이 빚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6월 불행한 참사 후 관련단체와 머리를 맞대고 이끌어낸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사족을 더하자면 이 대장정의 여정에 시민사회의 진지한 관심과 응원이 뒤따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앞서 김 대표는 지속적인 '예산'지원이 뒷받침 될 수 있을까 조심스러워 했다. 전국 최초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걸맞는 예산이 지원돼야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걱정도 뒤따랐다. 혹여 형평성(특정 장애만 지원하느냐는) 논란이 일지 않을까. 발달장애는 여느 장애와 달리 개별성이 중요한데 그걸 잘 모르는 이들이 이를 곡해하면 어렵게 시작한 사업이 뒷걸음질치게 되지 않을까.
그녀의 조심성이 심장을 서늘하게 한다. 죄송하지만 우리사회가 약자들에게 강요한 자기검열 같아서다.
아프지만, 이 아름다운 발걸음에 대한 감사와 행복함은 어찌할 수 없다. '광주다움'이란 진짜 이런게 아니겠는가.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 · [공연 리뷰] 일본인의 양심으로 전한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진상
- · [공연리뷰]안정성은 곧 예술적 풍부함으로
- · [공연 리뷰] 아직 오지 않은 소녀의 광복
- · [공연리뷰] 동시대 창작 레퍼토리 위한 과감한 시도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