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이라 쓰고 기본소득이라 읽는다.
"어리둥절해요. 이렇게 일찍 마감된 적이 없는데"
저녁 7시가 갓 넘었을까 싶은, 이른 저녁 북구 말바우시장 고깃집이 문을 닫아 걸 채비를 하고 있다. 고기가 다 팔려 매장 문을 열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재난지원금이 제공되면서부터 확연히 손님이 늘었는데 '그날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 명절 때보다 더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가게 앞에 내놓고 손님을 유혹하던 이동형 냉장고는 이미 철거해 포장덮개가 씌워졌고 실내 대형 냉장고 고기는 거의 동나고 팩 몇 개만 남아있었다.
혼자 마감을 하던 여성 직원은 절로 흥에 겨운 모양새였다. 그 많은 고기를 다 팔려면 얼마나 많은 손님을 맞아야했을텐데 피곤함보다 즐거움이 더 커 보였다.
고깃집 정도는 아니지만 시장은 전체적으로 활기가 넘쳤다. 물건을 구입하는이도 파는 이도 발걸음은 가벼웠고 장터는 알 수 없는 흥분으로 북적였다. 사용처가 지역 업체로 한정되면서 시장이나 동네 가게에 새로운 손님들이 나타나고, 그동안에는 얇은 지갑으로 차마 내밀지 못했던 손을 과감히 내밀고 있는 것이다. 동네 한 가게 주인은 대통령에 대한 감사와 찬사를 더하기도 했다. 이게 다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원했기에 가능한 일 아니냐는 설명과 함께.
다른 한편 사람들이 돈을 마구 쓴다는 비판도 있다.
불요불급한 것들에 재난소득을 쓰냐는 비난인데 억울한 부분도 많다. 이를테면 네일샵이나 미용실 사장님들이 '우리도 자영업자'라는 하소연을 하고 나서는 식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머리 한번 다듬는 일이, 손발톱 다듬는 일이 절실한 일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주장과, 가게 운영자는 우리 동네 자영업자라는 걸 잊지말아달라는 청이다. 소고기나 미용이나 한 사람의 마음의 위로로 치자면 플렉스 효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허나 다른 풍경도 있다.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구했다는 친구 딸은 광주시민들의 쇼핑행태를 탓했다.
'세금으로 왜 일본기업 제품을 사느냐, 자기 돈으로 사도 마땅치 않은 마당에 일본 불매운동 한지가 언젠데 벌써 잊어버리고'
국민세금으로 일본브랜드를 구입하는 시민들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 지적에도 플렉스를 갖다 붙여도 되는 것인지는 대략난감하다. 플렉스는 젊은층이 좀 과하지만 만족한 소비행태를 표현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다.
재난소득이 다양한 풍경과 상념을 던진다.
불의한, 부정한 , 수치스럽기까지했던 국가가 어느 날 우리 곁에 다정한 이웃으로 다가온 느낌이랄까. 코로나 19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절, 국민 모두에게 제공된 국가의 지원은 돈 이상의 풍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말에 경기 일으키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에겐 안된 말이지만 재난지원금이란 이름의 기본소득이 이토록 지친 국민들의 마음에 작은 풍족함을 선사하고 있다.
세금으로 소고기냐라고 하지만 먹느라 즐겁고, 동네 사장님 돈벌어 좋다. 소박한 플렉스라도 여유롭게 즐기는 풍경 보기에만도 좋다.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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