㉚고령역<중>영호남 연결하는 대가야박물관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㉚고령역<중>영호남 연결 대가야박물관
오롯이 대가야 문화 유적만 전시
구내 유일의 대가야 전문 박물관
왕릉전시관서 순장묘 위용 짐작
지산동 44호분 발굴 모습 그대로
우륵 박물관에서는 가야금 창제한
악성 우륵 관련 자료 한데 모아놔
1천600년 전 대가야 시대 재현한
대가야생활촌도 명소로 자리매김
대가야는 서기 42년 건국돼 562년까지 존속했다. 대가야 도읍지 고령군은 찬란한 대가야의 유물을 한곳에 모아 대가야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지난 2005년 건립한 대가야박물관은 대가야만을 전문으로 한 박물관이다. 대가야 문화 유적을 오롯이 간직한 국내 유일의 박물관이다. 대가야박물관 소장품들은 달빛 내륙 철도가 완성될 경우 영호남 고대사를 연결하는 소중한 부장품으로 그들의 가치는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국내 유일의 대가야 전문 박물관
대가야박물관(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대가야로)은 대가야역사관, 왕릉전시관, 우륵박물관으로 구성됐다. 부장품은 선사시대 유적부터 현대에 이르는 암각화, 토기, 철기, 순장 풍습, 가야금 등 고대와 현대의 삶과 문화를 아우른다.
대가야역사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상설전시관은 대가야 역사를 확인하는 공간이다.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문화에 대한 2천여점의 유물을 상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최근 발굴된 일본 오키나와에서 서식하는 야광 조개로 만든 국자를 비롯해 왕이 쓰던 국보 제138호 왕관(진품은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을 포함 세밀한 금관 장신구에까지 대가야 유산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대가야 시대로 돌아가는 왕릉전시관
대가야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 죽은 뒤에도 현세의 영화가 지속되리라 믿었다. 권력을 쥔 자들은 죽어서도 영화를 누리려 했다. 그 흔적이 순장이다. 무덤 주인공과 시종들은 함께 몸을 누였다.
고대 장례 풍습 순장이 44호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역사 최초로 실제 모습을 드러낸다. 지산동 44호 고분은 우리나라 최초 순장 묘로 기록돼 있다. 중앙에 으뜸 돌방과 2기의 딸림 돌방을 만들고 소형의 돌덧널 32개를 두는 특이한 구조다. 주인공을 가운데 두고 나머지 순장자들이 셋방 살 듯이 빙 둘러있는 구조다.
대가야왕릉 전시관 44호 고분에는 산 사람 40여명이 고스란히 순장돼 누워 있다. 대가야 왕릉 전시관 44호분은 대가야 왕의 권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무덤이다. 대가야 왕이 아니면 누리기 어려운 권세다. 아마도 왕의 저승 궁궐을 새롭게 만들어 사람들이 함께하지 않았을까 한다.
왕릉전시관은 발굴될 당시 실물을 재현해 놓은 것으로 고령의 저력을 보여주는 역사 현장이다. 최초 순장묘인 44호 고분을 발굴 당시 모습으로 옮겨 놓았으니 타임머신을 타고 160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크기도 실물 크기여서 현실감을 더한다. 으뜸 돌방 주위로 32개의 석관이 둘러싼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다. 오늘날로 하자면 주인공 주위로 원룸을 한 채씩 분양한 모양새다. 부채꼴 모양 석관에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인골이 담겨 있어 조금 짠한 기분도 든다.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부장품 종류와 성격 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고대 가야인들의 삶이 어땠는지 대충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륵박물관은 가야금 역사 탐방
역사관과 왕릉전시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륵박물관(고령군 대가야읍 가야금길)이 소재한다. 대가야박물관 역사관과 왕릉전시관에서 대가야의 유물을 봤다면 이제 가야 문화의 진수 가야금을 만나볼 차례다.
가야금 하면 우륵이 떠오른다. 우륵은 조국 가야의 쇠락을 지켜본 비극적 예술혼이다. 가야국 가실왕 명으로 가야금을 발명했지만 적국인 신라에서 연주해야 했다. 망한 나라 가야국 예술인 우륵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본 사람이 신라 진흥왕(534~576년)이다. 우륵은 신라 전통음악 향악보다 한 단계 진화된 음악을 선보였다. 그런 우륵의 가야음악에 매료된 진흥왕이 우륵에게 신라 음악 집대성의 임무를 준 것이다.
우륵박물관은 우륵의 예술혼을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이다. 2천752평 규모로 우륵의 사상과 역사를 살피고 가야금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구성됐다. 박물관 입구에는 우륵이 가야금을 켜는 모습이 조각됐다. 신라시대 악기를 연주하는 토우(土偶)들을 전시했는데 우륵이 만든 12줄 가야금을 켜는 모습이 또렷하다. 우륵 박물관에서는 직접 가야금 제작과정에 참여할 수도 있다. '우륵지'는 우륵이 직접 가야금을 만들고 켜는 장소라고 한다.
◆서민들의 삶을 재현한 생활촌
대가야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신남로에는 대가야생활촌이 자리한다. 작은 호숫가 주변으로 60여채의 가야 삶터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가야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엿볼 수 있게 꾸몄다.
한약재를 보관한 한약방은 대가야 약국이다. 각종 약재가 대나무 소쿠리에 보관돼있는 것을 보면 당시 의료행위를 짐작할 수 있다. 포목점은 너무 화려해 당혹스럽다. 형형색색의 의복이 오늘날 색감과 견줄 만하다. 재현된 생활상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한약방만 해도 4~5세기 순장 묘에서 한약재가 나온 데서 힌트를 얻어 재현했다. 화려한 비단도 근거가 있다. 발굴된 의복이 양잠에서 비롯됐음을 암시한 것이다. 변한(弁韓) 지역은 양잠업이 성행했다고 하니 대가야 포목점이 있을 법하지 않은가.
대가야 국력의 최대 원천은 철이다. 대가야생활촌에는 철기 공방을 재현해 당시 제련기술을 엿보게 한다. 대가야는 제철 왕국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철강 왕국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야인의 DNA를 물려받았다 해도 괜찮다. 철을 녹여 만든 덩이쇠를 일본과 중국으로 수출까지 했다고 하니 오늘날 제철 기술 DNA는 가히 가야인에게서 물려받았다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대가야 유적 발굴과 전시는 귀중한 성과"
손정미 대가야박물관 학예팀장

"대가야는 영호남을 연결하는 왕국이 될 것입니다. 고령 지산동고분군의 발굴은 대가야사 연구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한 대가야 유적과 유물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접하고 있는 대가야박물관 손정미 학예팀장의 대가야 발굴에 대한 생각이다. 손 팀장은 대가야박물관 개관 때부터 전시, 유물관리 업무를 맡아 왔다.
그는 "대가야 유적의 발굴·전시는 고대 국가 대가야를 기억 저편에서 우리 역사의 일부로 이끌어낸 귀중한 성과다"고 전제하고 "대가야는 영호남이 함께 발전하는 역사적 뿌리가 될 것이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손 팀장은 최근 발굴 성과에 대해서도 "연조리 제의 시설은 문헌에 없는 대가야의 제의 시설(祭儀 施設)로 가야문화권에서는 처음 발굴된 제의시설이다"면서 "대가야국의 국가적 제사 기록을 발굴함으로써 대가야국의 국제적 위상을 실증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고령군 대가야왕릉전시관에는 '지산동 44호 고분' 발굴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대가야의 순장 풍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곳이다. 44호분에 대해서 손 팀장은 "44호 고분은 우리나라에서 순장 풍습을 최초로 실증한 대규모 순장무덤이라는 면에서 가치가 매우 높은 고분이다"고 설명했다.
손 팀장은 대가야박물관이 들어서는 시점인 2003년부터 시작해 19년째 대가야박물관의 소장유물을 보관, 관리 및 사회교육 등 학예업무를 맡고 있다. 포항 출신인 손 팀장은 영남대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생일 때 발굴 조사한 고령의 지산동 고분과 인연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손 팀장은 "발굴조사 1년 후 고령에서 박물관을 건립하면서 학예연구사 모집 당시 고령 지산동 발굴조사 경력이 임용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최근 들어 가야연구가 활발한 영호남 지자체들과 연계 가능성에 대해서 손 팀장은 "전남 동부권과 전북 장수군과 전주 등에서 대가야 연구와 발굴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달빛 내륙 철도가 완성되면 인근 지자체와 연계한 관광 교육프로그램, 답사 투어 등 연계 사업도 활발해질 것이다"고 큰 기대를 나타냈다.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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