㉓ 거창역<상>관광1번지 수승대
물·바람·바위 어울린 풍광 '절경'
마음 속 걱정 털어내는 힐링 장소
학생 위한 온돌방 정자 '요수정'도
계곡 지키는 수호신 거북 바위에
퇴게 오언시 새겨 풍류를 즐기고
바위 벼루 먹물 세필짐서 씻어내
전국 최대 야외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㉓ 거창역 <상>관광1번지 수승대
거창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나이 든 세대는 조금 무거운 마음이다. ' 거창 민간인 학살'이 우선 떠오르기 때문이다. 역사의 비극을 모른 채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나 께름칙 하다. 그러나 막상 거창에 발을 디디면 밝고 환한 '거창한 거창'이 눈에 들어 온다. 거창(居昌)은 넓고 밝은 곳이다. 이름그대로 거창하기 이를 데 없다. 거창 사람들은 누구보다 달빛 내륙 철도 건설을 원했다. 거창 민간인 학살 현장의 목소리도 같았다. 용서와 화해라는 동병상련 같은 상징물로 달빛 내륙철도를 지목했다. 그 뜻은 국가가 저지른 폭력을 치유하려는 광주 5·18정신과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어원은 '크게 일어날 밝은 곳'
거창(居昌)은 '크게 일어날 밝은 곳'이라는 뜻이다. 큰 밝은 뜰이라는 뜻에서 거열, 거타(居陀), 아림(娥林)으로 불리다 신라 경덕왕 16년 (757)년 거창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근대 들어와 1937년 거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57년 월천면이 거창읍으로 편입돼 오늘에 이른다. 현재는 거창읍을 비롯해 주상·웅양·고제·북상·위천· 마리· 남상·남하·신원·가조·가북면등 1읍 11면으로 구성돼 있다.
◆자연 산수화 어우러진 선비 사상
거창군에 들르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수승대다. 수승대는 물과 바람, 바위가 빚어낸 절경이 펼쳐진다. 소백산 국립공원을 품은 산수의 고장 거창 그 중에서도 위천면 수승대는 거창 관광 1번지로서 손색이 없다. 영남 제일의 명승지 수승대(授勝臺)를 찾지 않고서는 거창을 봤다 할 수 없다. 거창에 오면 누구나 들러야할 성지같은 곳이 수승대다.
이름에서부터 뭔가 설렘을 갖게 하는 수승대는 거창읍에서 15㎞로 차로 20분 정도 거리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시원스레 흐른다. 물길 사이로 기묘한 바위, 노송 등이 빚어내는 광경은 신묘한 자태를 뽐낸다. 수승대 경치에는 저마다 사연을 지녔다. 그러니 절대 발길을 서둘러서는 안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수승대에서 만큼은 금과옥조다.
이곳이 수승대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맞댄 곳이 수승대였다. 백제 사신들은 이곳을 통해 신라로 들어갔다. 이 시기 고국인 백제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신라 사람들이 고국 백제를 걱정하며 떠나는 백제 사신을 떠나 보내던 곳이 스승대였다. 그래서 원래 지명은 수송대(愁送臺)였다. 즉 '수심 가득히 떠나는 사람을 송별한다'는 뜻이었다.
어느날 조선 중기 최고의 지성 퇴계 이황선생이 수승대를 찾았다. 퇴계는 빼어난 자태에 비해 왠지 슬픈 이름의 수송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퇴계는 시를 한수 짓게 된다.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발길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다"는 시를 한수 지어 이름을 수송대에서 수승대로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퇴계의 시에서 비롯된 수승대는 '수심을 잃어버린다'는 뜻으로 퇴계의 시에서 이름이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로 하자면 걱정을 털어버리는 힐링 장소라는 뜻이다. 이처럼 조상들은 자연모습에 이름하나를 짓는 데도 시적 감각을 부여했다. 수승대 거북바위에는 수승대 개명의 전기를 마련한 퇴계의 시가 새겨져 있다.

◆거대한 자연·역사 박물관
수승대에 발을 들여 놓자마자 영남 선비들이 왜 그렇게 침이 마르도록 수승대를 칭송했는지 알 것도 같다. 수승대는 국가 명승 53호다. 먼저 목 좋은 곳에 정자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요수정(樂水亭)이다. 요수정은 관수루와 거북바위를 두고 마주하는 정자로 요수 신권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장소다. 이런 자연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매일 소풍와서 공부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요수는 신권의 호다. 공자의 요산 요수 (樂山 樂水)에서 호를 따왔다. 요수정에는 특이하게 방이 만들어져 있다. 정자의 방은 추운날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따뜻한 온돌방을 마련한 것이었다. 지금도 요수정에 서면 그 옛날 학동들이 온돌방에 빙 둘러 앉아 낭낭하게 책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수승대의 명물 거북바위는 보는 사람마다 모습을 달리한다. 하지만 대다수가 거북을 떠올릴 만큼 거북을 쏙 빼닮았다. 오늘날 거북바위는 수승대 계곡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등에 소나무 몇그루를 이고 있어 거북바위를 더욱 신비롭게 한다. 거북바위에는 퇴계 이황 오언시를 비롯해 옛 선인들의 시가 빼곡하다. 지금 같으면 자연 훼손으로 큰 일 날 일이지만 예전 묵객들은 바위에 작품을 새기는 것을 풍류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자체로도 볼거리다. 거북 바위밑 구연교(龜淵橋)는 콘크리트 벽으로 다리를 연결해 놓았다. 수승대 계곡을 편히 건널수 있게 했다. 편리함은 좋은데 하얀 인공다리가 왠지 자연과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수승대 곳곳에는 영남선비들의 여유와 호탕함을 엿볼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다. 그중 세필짐은 '시문을 짓고 흐르는 물에 붓을 씻는다'는 곳이다. 연반석은 '시인 묵객들이 물가에 앉아 시문을 지을 때 사용한 자연 반석 벼루'라는 뜻이다. 바위를 벼루삼아 흐르는 물에 붓을 씻는 조상들의 여유와 호탕함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여유 없음을 비웃는 듯 하다.

◆경남 대표 콘텐츠 자리매김
여름날 밤 수승대 계곡은 거창한 연극 무대로 극적인 변신을 한다. 거창군은 연극의 도시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거창 국제 연극제가 대표적 컨텐츠다. 한 여름밤을 뜨겁게 달구는 거창 국제 연극제는 지난 1989년 '거창 10월 연극제'로 시작 됐다. 자연과 어우러진 무대와 수준 높은 공연으로 거창을 연극의 도시로 거듭나게 한 사건이었다. 그중에서도 수승대 야외무대는 우리나라 최대 최고 야외 연극 무대로 연극인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
한여름 밤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흐르는 물위의 연극 무대는 거창이 주는 여름날 최고의 선물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수승대는 독특한 수중 연극무대로 모습을 바꾼다. 우리나라 최고 야외 연극무대는 매년 모습을 바꿔 사람들의 맞는다. 여름 수승대는 자연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연극이라는 문화 장르로 사람들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이끈다. 오늘날 거창 국제 연극제는 경남을 알리는 대표적 문화 컨텐츠로 자리 잡았다. 수승대는 예전 우리네 선비들의 지적 유희 징소에서 국제적 연극 무대로 극적인 변신을 꾀한 것이다.
◆연극도시 맞게 인재 양성 교육
거창군은 전문 연극인 배출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국제 연극제 영향으로 전문 연극인을 길러내는 고등학교를 지난 2020년 개교했다. 거창 연극고는 연극 뮤지컬 신생 전문고등학교다. 재능과 끼를 발산 하고픈 83명 학생들이 연극과 뮤지컬 관련 전문연극인의 길로 들어서 꿈을 키우고 있다.
일찍이 거창은 연극이라는 장르에 눈을 뜬 고장이다. 하지만 내세울 만한 극단이 없는데다 연극인 배출창구가 없는 것이 약점으로 꼽혀왔다. 거창 연극고는 전문 연극인을 양성해 기획에서 연출까지 가능한 독립 예술가(I.P.A)를 다수 길러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전문 연극인으로 성장한 그들이 거창 연극을 이끌어가는 재목으로 성장하는 것도 쉽게 예상 할수 있다.
거창 연극고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놀이로 연극하고 연극하며 놀자"다. 일각에서는 이름만 연극고인 대안학교가 아니냐는 눈총도 존재한다. 하지만 거창 연극고는 대부분 학생들이 뮤지컬, 현대 무용, 무대 디자인, 편집, 영상, 의상등 연극 관련학과에 진학해 "연극인 없는 연극 학교"라는 우려를 씻어내고 있다. 거창은 전문 인재 배출로 연극 도시 거창의 앞날이 밝다는 것을 다시한번 거창 연극고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계곡에 시를 짓던 풍류 '연극이 되다'… 2022 제32회 거창 국제 연극제

4년만에 다시 열린 2022년 제 32회 거창 국제 연극제는 감회가 특별했다. 지난 7월22일부터 8월5일까지 보름간 펼쳐친 올해 연극제는 상표권분쟁과 코로나 창궐로 4년 만에 다시 열린 연극제였다. 거창군이 문제가 된 상표권 문제를 해결하고 코로나를 극복한 거창군만의 국제 연극제로 자리매김하는 원년으로 선포했기 때문이다.
개막 공연작으로는 '거창 한여름 밤의 꿈'이 무대에 올려졌다. 올해 연극제에서는 75차례 공연이 퍼포먼스와 불꽃, 드론쇼 등으로 다채롭게 이어졌다.

관람객들은 "시름을 잊고 즐기는 장소가 될 것이다"는 퇴계 선생의 예상대로 한여름 밤의 낭만을 연극으로 맘껏 즐기는 특별한 연극 잔치였다.
수승대 밤무대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연극을 볼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보는 이들은 "우리나라 최고의 야외 공연무대"라고 감탄한다.
이제 수승대 한 여름밤의 꿈은 거창만의 꿈이 아니다. 연극으로 하나되는 대한민국의 꿈이다.
퇴계 선생이 수승대 '시름을 잃게 하는 곳이다'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게 한 이유를 미련한 후손들이 이제야 알아챘다. 시대를 뛰어 넘는 퇴계 선생의 예지력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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