⑳ 함양역<상>설렘이 있는 경남 관문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⑳함양역<상>설렘이 있는 경남 관문
달빛 내륙 철도는 오는 2030년 개통을 목표로 하는 1천800만 호·영남 주민의 숙원사업이다. 지난 2017년 광주시와 대구시는 달빛내륙철도건설 추진 협의회를 구성했고 2022년 3월에는 달빛 철도 경유지 지자체장협의회 구성 등을 거쳐 지난해 6월 자체 연구 용역에 들어가 조기 건설 방안을 모색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마침내 국가 철도망 구축 계획에 포함되는 괄목할 토대를 마련했다. 경남의 관문 함양군민들의 기대도 크다. 만나는 사람마다 "달빛 내륙 철도는 호·영남의 주민의 숙원사업이다"고 동서 화합을 강조했다. 선비 고장 함양의 뜻이라면 반대 목소리는 잦아들 수밖에 없다. 함양군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달빛내륙철도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북쪽은 덕유산, 남쪽은 지리산 국립공원
함양군은 북쪽 덕유산, 남쪽 지리산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천혜의 고장이다. 경상남도 서부에 있는 군으로 영남과 호남을 잇는 주요 교통 요지다, 최근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 번은 들러야 할 곳으로 꼽힌다.
예부터 함양은 유교 최고의 덕목인 인간의 길을 묻는 선비 고장으로 이름 높다. 삼국시대까지는 가야 문화권에 속했다. 지리적으로 백제와 신라의 경계 탓에 두 세력이 맞부딪친 곳이다. 1466년(세조 12년) 함양군이 되었다.
현재는 함양읍을 비롯해 마천·휴천·유림·수동·지곡·안의·서하·서상·백전·병곡면 등 1읍 10개면으로 구성돼 있다. 군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4통 8달의 교통요지로 부상했다. 2030년 달빛 내륙철도가 개통될 경우 함양은 영호남을 잇는 내륙 관광도시로서 입지를 확고히 굳힐 전망이다.
◆주민 배고픔 생각한 애민사상 산물
함양군의 캐릭터는 '물레동자'다. '물레동자'는 연암 박지원의 실사구시 사상을 탄생 배경으로 한다. 함양의 실천적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중국의 선진 문물을 보고 감탄했는데 그중 하나가 물레방아로 역저 '열하일기'에 소개돼 있다.

1792년 연암은 함양군 안이현감으로 부임해 마음속에 품었던 물레방아를 용추계곡 입구 안심 마을에 설치했다. 국내 최초 물레방아가 선을 보인 것이다. 앎을 생활 속에 실천하는 실사구시 정신이 물레방아에 녹아 있다. 그러니 함양군 캐릭터 물레동자는 실학사상을 대표하는 캐릭터라 해도 괜찮다. 어떻게 하면 주민 배고픔을 덜어줄까 하는 애민사상의 산물이기도 하다. 물레동자는 행동하는 함양군 이미지를 주면서도 밝고 순수함을 표현하는 개구쟁이 이미지로도 다가온다.
◆꽃밭 천국안 천상의 숲 '무릉도원'
함양은 상림이고 상림이 곧 함양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함양에서 상림숲의 상징성은 높고 깊다는 뜻이다. 9월 상림공원은 꽃밭 천국이다. 1천년 전에 백성을 위해 만든 숲이 오늘날 제대로 그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초가을 30도를 넘은 날씨에도 상림 숲은 시원하다. 1천년전 신라시대 최고의 지성 최치원이 숲을 만들었으니 역사적 가치가 여느 숲과 비할 바가 아니다. 함양 사람들의 상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도 크다. 보존을 위한 노력도 지극 정성이다. 그러니 숲의 가치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1천년 전 숲을 만든 조상들의 안목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상림 숲은 우리나라 최초 인공 숲이다. 천연기념물 154호로 지정돼 있다.
상림 숲은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는다. 숲 곁에 꽃밭이 조성돼 형형색색의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낸다. 푸른 상림 숲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꽃밭은 노란물결이 이는가 하면 보라색이 이어지고 보라색이 끝나는 자리에는 빨간물결이 이어져 사람들의 감탄이 끊이지 않는다.
숲이 잊혀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색색의 꽃들은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져 함양 상림은 무릉도원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다. 상림에서 인간사 시름은 사라진다.
◆조상이 남긴 자연과 인문이 만난 공원
경남 함양군 읍소재지 서쪽을 흐르는 천이 위천이다. 위천을 따라 조성된 함양 상림(上林)은 약 1.6㎞의 둑을 따라 110종의 낙엽 활엽수, 참나무, 느티나무, 개서어나무, 쪽동백, 복자기 등 2만여 그루가 숲을 이룬다. 참나무 종류가 60% 정도를 차지한다. 숲 사이로 천이 흐르고 요새는 큰나무 아래 꽃무릇이 지천이다.

상림 숲의 특징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인간이 만든 숲이 연륜이 더해지면서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한다. 처음 조성할 당시에는 4㎞ 정도로 '대관림'이라고 불렸다. 중간 부분이 훼손되면서 숲이 상림과 하림으로 나누어진 후 현재는 위쪽 숲 상림만 남았다. 수생식물과 연꽃단지가 조성돼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상림에는 기이한 나무도 있다. 그중 한 나무인 듯 큰 나무 두 개가 합쳐져 한 몸이 된 '연리목'이 눈에 들어온다. 가시나무와 느티나무가 뒤엉켜 묘한 자태로 천년 숲 상림에서 사랑을 속삭인다.
표지석에는 '영원히 함께할 사랑나무'라고 쓰여 있다. 상림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꽃무릇은 이뤄질 수 없는 비극적 꽃의 대표격인데 반해 연리목은 천년이나 사랑을 이어오고 있으니 묘한 대조로 상림의 이야깃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수해에 시달리는 백성들 생각에 조성
신라 고운 최치원(357~미상)은 경주 최씨의 시조다. 그가 지은 '토항소 격문'은 지금껏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신라인의 명문장으로 남아 있다. 신라인의 격을 한껏 높인 대문장가 최치원은 함양에 숲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삶의 고달픔을 덜게 한다. 신라말기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함양의 태수로 있을 당시였다.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있을 당시 백성들이 매년 수해에 시달렸다. 태수 최치원은 수해로 헐벗은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을 궁리했다. 고민 끝에 나온 해결책이 물길을 돌리고 숲을 만드는 것이었다. 백성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궁즉통의 숲이 바로 상림숲인 것이다.
함양 군민들도 최치원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상림 안에는 곳곳에 최치원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문창후 선생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석에는 최치원이 당나라에 유학해 과거에 급제하고 이름을 떨친 업적을 빼곡히 기록하고 있다.

◆곧은 정신으로 빼앗긴 나라 찾겠다 각오
상림에는 사운정(思雲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1906년 모현정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됐다.
모현정은 최치원 선생을 기리는 정자라는 뜻이다. 모현은 '현인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모현이 곧 최치원이다. 이후 중건돼 이름을 사운정으로 바꿨다. 사운정의 운은 구름 운(雲)자로 고운 최치원의 호에서 따왔다. 숲의 고마움과 함께 1천년 전 조상의 은덕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의 장소가 사운정인 것이다.
함화루(咸化樓)라는 정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58호)도 조상의 은덕을 기린다는 의미다. 함화루는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다"해서 '망악루'라고 하고 원래 기능은 함양 읍성의 남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망악루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이 누각을 상림으로 옮겨 이름을 함화루로 바꿔 지금에 이른다.
함화루는 청렴결백한 함양의 선비 함(咸)자를 뜻한다. 함양 선비의 올곧은 정신으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각오가 담긴 정자가 함화루다.
이처럼 상림숲은 조상들의 지혜와 후손들의 각오가 넘쳐흐르는 곳이다. 식생의 보고로서 자연이 준 선물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정신적 지주 같은 곳이 함양의 숲 상림이다.
◆백성들 지성 받아야 바른 정치인
상림숲을 걷다 보면 함양의 역사 인물과 만나는 인물 공원이 나온다. 함양과 인연을 맺은 역사적 인물들을 한곳에 모셔놓았다. 함양 한 고을에 역사적으로 기릴 인물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놀랍다. 당나라를 놀래킨 대문장가 최치원에서부터 일두 정여창과 열하일기의 박지원에 이르기까지 함양의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인물마다 선정비를 세웠다.
함양이 배출한 걸출한 지성들은 오늘날 우리 현대사를 지배하는 사상의 은인들이다. 물론 다음편에 다룰 예정인 옥의 티 같은 인물도 있다.
그러나 인물 면면을 살펴보면 오래전 함양에서 베푼 선정이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꼭 한번 와서 되새길 만하다. 수령한테 백성들이 고맙다고 지성을 바치는 정도는 돼야 바른 정치인 아니겠는가. 상림 숲 역사 인물 공원에 가야 비로소 우리는 바른 정치를 만날 수 있다.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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