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좌절 속 역사적 소명 담겨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투쟁 기록도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7건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고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의 평전이 출간됐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23일 이 회장의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송경자 지음·시민모임 엮음)'가 출간됐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결혼 2년 만인 1942년 11월 일본 해군 군무원으로 징용된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뒤 생후 8개월 된 아들을 홀로 돌봤다.
징용 1년뒤인 1943년 11월25일에는 미군의 대규모 상륙작전으로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전한 남편의 전사 소식을 접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군부독재 정권하에서 사실상 일본을 상대로 한 권리행사 기회마저 오랫동안 봉쇄당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69세가 되던 1988년에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를 결성, 초대 회장을 맡는 등 30여년 여생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한길을 걸어왔다.
1990년대부터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본격적인 소송에 나섰다. 법정투쟁을 통해 전후 배상 문제를 외면한 일본 정부를 국제사회에 고발함으로서 일본의 반성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패소를 각오하고 나선 일종의 '투쟁'이었다. 몇 번을 넘어지더라도 싸움을 통해 이슈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원고 1천273명이 참여한 '광주천인 소송'으로 대일(對日) 투쟁을 예고하는 신호탄을 시작으로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소송', '관부재판',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을 비롯해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총 7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본 사법부에 제기, 일제강제동원 문제를 한일 간 이슈로 끌어냈다.
법정 진술, 재판 방청, 각종 시위, 일본 지원단체와의 연대 활동 등 노구(老軀)를 이끌고 일본을 오간 것만 자그만 치 80여차례에 달했다.
또 이 회장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과 일제 피해 진상규명 피해자 조사에도 앞장섰다.
무모하지만 끈질긴 소송 투쟁은 2018년 한국 대법원의 전범기업 대상 손해배상 확정 판결로까지 이어지며 결실을 맺었다. 2019년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모란장도 받았다.
평전에는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 회장이 외롭게 부딪히며 맞서야 했던 고뇌와 투쟁이 담담히 풀어져 있다.
특히 아들과 며느리, 손녀까지 3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맞서 싸웠던 숨은 사연도 소개된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발간사에서 "어디에도 없는 나라는 온갖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역사적 소명을 위해 한평생을 던진 이금주 한 개인의 기록임과 동시에, 광복 후에도 풍찬노숙해야 했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다"며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구실로 또다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그 제물로 삼으려는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 이금주 평전이 시대를 성찰하는 작은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일본 소송을 주도한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며 "이금주 회장의 인생을 알고 그 심정을 이해하면 가해자도 아닌 자가 대신 배상하는 대위변제안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고 평전에 의미를 덧붙였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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