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교사가 된 후 처음 들어갔던 교직원회의 시간을 난 아직 잊지 못한다. 교장, 교감 선생님과 부장 교사들의 업무 전달이 끝나고 난 후 나는 순진하게도 진지한 회의를 기대했다. 하지만 회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교직원회의 시간은 '회의'하는 시간이 아니라 '전달'하는 시간, 더 좋게 표현한다고 해도 업무 협조를 '부탁'하는 시간에 불과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2022년, 이제 교직원회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빛고을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안건중심의 교직원회의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교직원회 권역별 컨설팅에서 만났던 고등학교 교무부장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교직원회의 문화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입시 앞에서 모든 것이 멈춰 서 있던 고등학교마저도 패들렛이나 구글폼을 통해 교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었으며, 학교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교직원회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학교도 많다. 하지만 학교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교직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학교를 운영하는 비민주적인 학교는 드물다. 학교 민주주의는 이제 시대정신인 것이다.
학교 민주주의 시대를 견인했던 것은 빛고을 혁신학교를 비롯한 학교 현장의 치열한 헌신과 노력이었다. 하지만 헌신과 노력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와 학교자치조례와 같은 제도적인 뒷받침과 교육청의 적절한 정책적 지원이 없었다면 학교 민주주의는 이상적인 구호에 그쳤을 것이다. 최근 우리 교육청은 빛고을 혁신학교의 정신이 지역사회에 충분히 뿌리내렸다는 판단에 근거하여, 일반 학교들에 혁신학교 못지않은 생동감을 부여하고자 자치학교라는 새로운 학교 모델을 제시하면서 광주형 미래학교의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광주형 미래학교 운영설명회에 의하면, 광주교육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담은 세 가지 학교 모델은 자치학교, 혁신학교, 연구학교이다. 광주형 미래학교에 대한 발표는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광주교육의 혁신적 청사진을 기다려왔던 광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소식이었다. 미래학교의 상을 세 가지로 제시하여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반영했다는 점과 기존의 혁신학교를 미래학교 모델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것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특히 그 동안 학교 현장에서 힘들게 일궈왔던 학교자치와 관련된 구체적인 학교모델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만 하다. 하지만 자치학교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자치학교는 '학교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모델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학교'로 정의되며, '교육공동체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시교육청이 제시한 8가지 주제(실력향상, 미래교육, 기후환경·생태, 교육복지, 세계시민, 다문화, 문화예술체육, 지역사회연계)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운영된다고 한다. 자치학교의 운영주제를 살펴보면 모두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지향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잘 실현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실력향상'이라는 운영주제를 신청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수 학생들의 참여보다는 성적이 좋은 소수의 학생들만 참여하는 형태로 교육과정이 운영될 가능성은 없을까? 이 밖에도 교육복지, 다문화, 문화예술체육 등의 주제도 해당 주제가 갖고 있는 특수성으로 인해 해당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육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어렵거나 관심 있는 소수에 의해 학교 운영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 잘못하면, 자치학교는 자치라는 이념은 상실한 채 특색사업학교로 전락할 가능성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자치학교가 특색사업학교로 전락하게 된다면, 자치의 개념을 오용하고 있는 광주교육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 자치학교의 목표는 특정한 주제의 사업을 민주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학교를 만드는 것 자체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학교 민주주의는 제도와 정책, 학교현장의 헌신에 힘입어 더디지만 천천히 진화되어 왔다. 이번 자치학교의 발표가 이러한 진화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에 따르면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의 목적이 민주시민의 양성인 것처럼 자치학교의 목적도 민주학교를 만드는 것이어야만 한다. 민주학교와 다른 주제가 자치학교의 목적이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치학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치원 (운남고 교사)
- [교단칼럼] 세월호 참사 10주기, 책임의 무게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과 연대를 위한 평화 걷기'에 참가하기 위해 4월 13일 토요일 오전 9시 25분 딸 아이와 함께 양림 미술관에 도착했다. 함께 만나기로 한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순간 지역 언론사의 기자가 다가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첫 질문은, "왜 이 행사에 참여하는가?" 이었다.2018년과 2019년, 당시 근무하던 중학교에서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도군 임회면 행정복지센터에서 기억의 동산을 지나 팽목항까지 이르는 9.4km를 걷는 교육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두 해 모두 언론사의 취재가 있었다. 담당 PD가 물었다. "이런 교육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가?"이 칼럼을 집필하는 날 아침, 현장체험학습(수학여행) 낙찰 업체와 사전 협의 자리가 있었다.아직 가지 않은 수학여행이다. 필자의 머릿속에서 먼저 24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미리 세워둔 운영 계획서의 1박 2일 일정에 맞추어 출발부터 도착까지를 시물레이션 해 본 후, 확인이 필요한 부분과 요청할 부분을 정리하여 여행사 대표에게 질문한다. 이것이 정리되면 사전 답사를 떠나고 그 이후 미진한 부분을 다시 논의한다. 사실 현장체험학습(수학여행)은 학교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운영하지만, 활동 장소는 현장(교외), 활동의 형태는 체험, 활동의 목표는 학습인 매우 복잡한 교육 활동이다. 더욱이 숙박형은 교사 10~15명이 몇 백명의 학생을 안전하게 재워야 한다. 그러나 교사는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또 매뉴얼이나 안전 점검 체크리스트에서 조차도 걸러내지 못하는 상황들이 분명 존재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과 원칙이 지켜졌을 때 그리고 국가가 시스템과 문화를 제대로 구성하고, 깐깐하게 관리 감독해야지만 무탈하게 다녀올 수 밖에 없는 교육 활동이다.세월호 참사 이전,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회적 참사라 불리는 재난들을 대부분 사기업의 무리한 이익추구나 운영하는 주체 기관의 안전 불감증에서 기인한 것이라 치부해 버리곤 했었다. 안전과 관련한 높은 수준의 인식과 문화, 관련 매뉴얼, 재난 상황 시 대응 시스템등을 제대로 갖추고 관리 감독해야 할 국가의 역할은 제대로 다루지 않았었다.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 참사와 관련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우리에게 던졌다.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필자는 "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활동에 참여하고, 스스로 그것을 기획하고 운영하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을 하기가 10년 동안 쉽지는 않았지만, '안전한 사회'라는 큰 의제 아래 교사로서 내가 길 위를 걸으며 외치고 싶었던 구호는 비교적 간단했다. 모두가 각자 져야 할 책임을 지는 것! 알고 보면 총체적 난국이었을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사람, 규명된 진상에 의해 명확하게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 참사 이후 시스템을 정비하는 사람, 참사가 남긴 것을 교육하는 사람 등,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책임지는 것! 단, 책임의 주체가 여럿이거나, 기관이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책임의 공백까지 고려한 책임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물론 국가이어야 한다. 물론 '교사로 서의 나'의 책임도 있다. 다만 교사로서 내가 매뉴얼과 체크리스트를 충실히 따랐을 때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가는 확언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이 외쳤던 구호 중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구호를 외칠 때 마다 아직도 많이 애처로움을 느끼는 것을 보면 말이다. 김유진 산정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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