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춘추전국시대, 당시 제나라 중대부에 이사라는 대신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왕의 초대연에 참석했다가 술이 너무 취하여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와 대궐 통로 문에 기대어 있었다. 궐문을 지키던 문지기가 다가와서 "혹시 남은 술이 있으면 저희에게도 좀 내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애걸하게 부탁하였다. 문지기는 월형을 당해 한쪽 발꿈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사는 문지기의 볼품없는 행색을 보며 "뭐라고? 전과자인 문지기 주제에 감히 누구에게 술을 달라고 한단 말이냐."라고 호통을 치자 문지기는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자신을 멸시한 이사가 궁 밖으로 나가자 문지기는 궐문 앞 처마 밑에다가 마치 오줌을 싼 것처럼 물을 뿌려두었다. 다음 날 아침 왕이 궐문을 나서다가 이 광경을 보고 문지기에게 꾸짖었다. "대체 누가 감히 오줌을 쌌느냐?" 문지기는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그랬는지 자세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중대부 이사가 여기에 서 있는 것을 보기는 했습니다." 이에 왕은 이사를 사형에 처해버렸다.
군주와 국가의 존립을 동일시하던 그 시대의 분위기로는 대궐 기둥에 오줌을 쌌다는 것은 왕의 존엄을 해치는 불경죄로 능지처참을 받을 수 있는 중죄였다. 초라한 행색에 볼품없다고 홀대하거나 모멸감을 주면 누구나 원한을 사 허망하게 앙갚음을 당하게 된다. 위 이야기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한비가 쓴 '한비자(韓非子) 내저설편'에 기록된 일화이다.
모멸감 관련하여 하나 더 말하자면 유대인 출신인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박사를 언급할 수 있다. 그는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인 1942년 9월 25일부터 1945년 4월 27일까지 나치 독일 점령 기간 아우슈비츠등 네 곳의 수용소에서 언제 가스실로 보내져 죽을지 모르는 공포와 최악의 고통을 3년 동안 겪으며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았다. 그는 죽음의 공포, 비위생적인 환경, 절망, 구타, 학대, 굶주림과 추위 등의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무엇보다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정신적 모멸감"이라고 했다.
모멸감은 상대방에게 깔봄이나 업신여김을 당하여 하찮게 느껴지는 수치스러운 감정이다. 모멸감은 쉽게 치유되지 않아 분노와 경멸의 트라우마를 남긴다.
중대부 이사는 남는 술이 있음에도 자신의 인색함 때문에 문지기에게 불필요한 분노를 일으키게 한 것이다.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된 것처럼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하찮은 존재로 여기게 되면 모멸감을 받게 된다. 그럴 때 인간은 목숨을 걸고 자기 존재를 알리고 인정받고자 한다. 또한, 보복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인간이 가진 가장 고차원적인 인정 욕구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도 함부로 홀대하거나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한 번쯤 최악의 상황을 극복한 사람은 결코 타인을 홀대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이진국 ㈜에덴뷰 대표 / 경영학 박사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