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납품단가 연동제와 관련해 제작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납품단가 연동제는 주요 원자재가격이 일정 비율 이상 오르면 의무적으로 납품단가를 올려주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시장경제 원리를 훼손한다는 점과 중소기업의 혁신 의지를 약화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관련 제도를 비판한 내용으로 기억된다. 일축에서 살피면 일리 있는 주장으로 보이나 현실적인 상황을 배제한 일방의 주장만을 제시한 것으로 느껴져 아쉬움이 남았다.
본론에 앞서 거시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대표적인 두 학파 케인즈학파와 시카고학파를 잠깐 살펴보자. 케인즈의 핵심은 '정부의 개입을 통한 수요 창출'로(이는 사회주의 쪽으로 치우친 경향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정부를 하나의 경제주체로 보고 재정정책을 통해 완전한 자유경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경기 변동폭을 최소화하자는 의미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학파'로도 불리는 시카고학파는 '경제 운용은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야 하며 정부 개입은 원칙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는 정도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얼마 전 차기 정부 총리 후보자의 인터뷰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최소한의 개입을 경제정책 기조로 삼겠다고 한 내용이 상기 학파의 이론들을 적절히 혼용하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최소한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라는 내용이 모호하긴 하지만 이는 현실에 맞춰서라는 전제로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납품단가 연동제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원자재비가 폭등하며 이미 논의된 내용이다. 정부에서는 '사적 계약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다른 형태의 개선방안을 제시했지만 실제로 계약 당사자 간의 관계나 하도급 업체들의 경쟁 상황을 고려한다면 현실성이 부족한 구조인 것이 사실이다.
연이은 국내 경제정책의 실패, 코로나19와 그 이전부터 지속된 세계 경제전쟁,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대내외적인 악재는 공급망 마비 사태를 초래했고, 이는 원유와 철강 등 원자재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졌으며, 이를 파생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 외에도 금리 인상, 현장 근로자 수급 문제 등 수많은 비용 상승의 요인이 중소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으로 규정하는 납품단가 연동제의 도입은 필수의 문제로 보인다. 사급 현장에서 도급사와 하도급사의 의견이 수평을 달린다고 하면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당장 입법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정부와 지자체의 조달업무에서부터라도 이를 추진해 차츰 민간 계약에도 적용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19조'와 동법 '시행령 제64조', 동법 '시행규칙 제74조'에는 단가연동과 관련된 내용이 이미 존재한다. 하지만 사실상 이를 기준으로 업무를 보는 공무원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지자체에서는 감사를 이유로, 각 지방조달청에서는 여타 지역의 분위기를 살피느라 계약 당사자에게 좀 더 명확한 근거(원가분석)만을 요구한다. 현장에서 원가분석을 할 때 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이 최소한 4~5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어려움은 가중된다.
'상생'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중요시되는 요즘이기에 차기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기대해 본다. 류승원 광주전남 콘크리트 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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