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해자 자식들의 '갈등과 용서'
73년 트라우마 수작···21일 전국 개봉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당신은 죄가 없소' 한 마디야."
오는 21일 전국 개봉을 앞두고 있는 여순사건의 아픔을 담은 영화 '동백'이 여순사건 제73주기 합동위령제 및 추념식이 열린 19일 여수와 순천 지역 일부 영화관에서 첫 선을 보였다.
영화 '동백'은 여순사건 당시 아버지를 잃은 노인 황순철과 그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의 딸 장연실이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복수,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담은 영화다.
신준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원로배우 박근형과 주연배우 김보미·정선일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호흡을 맞췄다.
영화는 2020년을 살아가는 순철과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순철은 어머니의 뜻을 이어 받아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동백식당'이라는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불경기로 인해 식당이 폐업 위기에 놓이게 됐고 착하기만 한 아들 남식과 장사에는 통 관심이 없는 손자 준영은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당에 한 낯선 손님이 찾아온 후 순철과 그의 가족들에게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낯선 손님은 바로 서울 유명 투자 업체 회장. 그는 순철에게 프랜차이즈를 제안했고, 순철과 가족들은 기뻐하지만 회장의 아버지가 여순사건 당시 순철의 아버지를 죽게 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영화의 갈등은 극에 다다른다.
영화는 경기 침체 속에서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순철과 여순사건 당시 순철의 아버지를 밀고한 후 도주해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가해자 가족의 상반된 모습을 비추면서 역사의 비극에서 비롯된 민낯을 조명한다.
영화 중간에는 순철이 여순사건 당시인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삽입해 1948년 10월 19일부터 27일까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특히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냐. 내가 평생 단 한번이라도 듣고 싶은 말이 '당신은 죄가 없소'라는 말이다", "우리 부모를 죽인 자식은 서울 높은 빌딩에 터줏대감처럼 살고 있는데 우리는 무슨 죄가 있다고 이 치욕을 견뎌야 하나…다들 잊으라 하는데 잊을 수 없다"는 순철의 대사는 70여년 간 통한의 세월을 견딘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견뎌야 했던 설움과 마음을 대변한다.
이날 영화관을 찾은 김경열(51)씨는 "어머니가 여순사건 당시 가족을 잃는 등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셨다. 어머니는 70여년의 세월 동안 트라우마와 함께 힘들게 지내셨다"며 "영화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억눌려있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한 영화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진정으로 우리 유족들은 '죄가 없다'라는 말 한 마디라도 듣고 싶을 뿐이다"고 강조했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신준영 감독은 "영화 '동백'을 통해 많은 이들이 여순사건의 진실을 바로 알고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이 빨리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예지기자 foresight@mdilbo.com
- 전남도, 여순사건 희생자·유족 신고 첫 심사 현대사의 비극 여순사건전남도가 '여순사건 희생자·유족 신고'에 대한 첫 심사를 통해 163건을 여순사건 실무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전남도는 '여순사건 실무위 소위원회'를 여순사건 전문가, 시민단체, 대학교수, 전남도교육청 관계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8일 도청에서 개최해 여순사건 희생자·유족 신고 166건의 사실조사 결과에 대한 사전 심사를 했다.심사 대상은 그동안 전남도와 시군에서 접수한 희생자·유족 신고 2천200여 건 중 첫 심사임을 감안해 희생자·유족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은 건으로 이뤄졌다. 심사 내용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이미 진실규명을 받고 '여순사건 특별법' 상 희생자·유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신고한 143건 ▲경찰서 보안기록·군법회의 판결문 등 증명자료가 있는 19건 ▲증명자료가 없어 보증서를 제출한 4건이다.위원들은 희생자·유족신고 166건에 대해 도와 시군의 사실조사 결과를 토대로 신고 내용과 입증자료 등을 심도있게 검토했다.특히 신고내용에 대한 입증자료가 없어 보증인 2명의 진술이 첨부된 건에 대해서는 여순사건 관련성 및 보증인 진술의 신뢰성 등에 대해 위원들 간 열띤 토론이 있었다.이날 심사에서는 166건 중 163건을 실무위에 상정키로 하고, 나머지 3건은 증거 자료를 보완하거나 추가적인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상정을 보류했다.심사에서 일부 위원은 "여순사건은 74년 전 일이라 증명자료 없는 사건이 많고 사건을 직접 목격했던 분도 거의 없어 대부분의 보증인 진술도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간접 증언이 많다"며 "희생자로 결정할 권한이 있는 명예회복위원회에서 '희생자 결정 기준'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박종필 전남도 여순사건지원단장은 "이번 소위원회 사전 검토를 통과한 희생자·유족 심사건은 8월 초 여순사건 실무위원회(위원장 도지사)를 열어 심의한 후, 여순사건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에 제출할 계획"이라며 "명예회복위원회에서는 '여순사건특별법 시행령' 제11조에 따라 90일 이내에 심사·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적극적인 신고·접수와 사실조사 등을 통해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15일 현재까지 접수한 여순사건 희생자·유족 신고는 2천317건(진상규명 101, 희생자·유족 2천216)이다. 여순사건 피해신고는 2023년 1월 20일까지, 진상규명 신고는 전국 시·도와 시군구, 희생자·유족 신고는 전남도(시군 및 읍면동 포함)에 방문 또는 우편으로 하면 된다. 서울에 있는 여순사건 명예회복위원회 지원단에도 신고·접수가 가능하다.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