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김치의 날

@유지호 입력 2023.11.28. 15:41

예부터 김장은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월동대책이었다. '겨울철의 반양식'이란 말처럼 김치는 반식량(半食糧)으로 통했다. '풍년이면 김장을 늦게 담그고 흉년이면 일찍 담가야 한다'는 속담도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흉년의 고통이 더 가혹한 탓이다. 먹을거리가 변변치 않았던 시절, 겨울부터 봄까지 유일한 영양 공급원이었다. 배추와 무, 그리고 갖은 양념과 젓갈로 버무린 김장김치가 서민들에게 더 중요한 양식이었던 이유다.

나눔의 장이었다. 일 손과 음식을 함께했다. '겨울농사'로 불릴 만큼 중요한 가정사였다. 한 집안의 3~4달치 김치를 한꺼번에 담그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가족이 모였다. 마을에선 품앗이였다. 아낙네들은 서로 돌아가며 이웃의 김치를 담갔다. 평소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아홉 방 부녀가 다 나온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생계가 어려운 이웃에게도 김치를 돌렸다.

날씨가 중요했다. 일 평균 4℃ 이하, 일 최저 0℃ 이하일 때가 최적기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김장을 하는 이유다. 대개 입동과 소설을 기준했다. 그 무렵에 해야 제 맛이 나기 때문. 조선 헌종 때 가사인 '농가월령가'의 '시월령'엔 "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소설 절기로다. 무·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란 대목이 있다. 요즘엔 기후변화로 적정시기가 갈수록 늦춰지고 있다.

22일은 절기상 소설이자 '김치의 날'이었다. 2020년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김치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다. 기념일 중 유일하게 음식이 주인공이다. 배추·무·마늘 등 김치의 여러 재료가 '하나하나'(11) 모여 면역 증진과 비만·노화 방지 등 '스물두 가지'(22) 이상의 건강 기능적 효능을 갖는다는 의미가 담겼다. 해외에서 더 각광받는다. 미국과 유럽, 남미에서도 '김치의 날'을 기념하는 지역들이 늘고 있다.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김치가 5·18 당시 광주 공동체의 심장부였던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으로 나왔다. 김장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째다.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1122명이 김치를 담갔다. 이들이 두 시간 동안 담근 김치 1만포기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내심 반가웠다. 그 간 김장을 통해 유지해 왔던 공동체적 친밀감이 나눔과 연대의 상징적 공간에서 잠시나마 되살아 난 듯 해서다. 남도김치의 건승을 기원한다.

유지호 부국장대우 겸 뉴스룸센터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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