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주남마을

@유지호 입력 2023.05.17. 15:53

광주광역시 동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주남마을은 소태역(도시철도 1호선)과 너릿재 터널 중간쯤에 있다. 광주와 화순을 오가는 15번 국도가 지난다. 예부터 무등산 골짜기를 따라 개간한 밭에서 녹두를 재배했다. 척박한 땅에서 쉽게 기를 수 있는 작물이기 때문. 옛 이름도 지한면 '녹두밭 웃머리'. 지한면은 조선시대 지원동의 옛 지명이다. "나무할 낫 한자루 품고 와야 한다." 마을로 시집오는 처자들이 들었던 말이다.

현재 40가구에서 150명이 살고 있다. 경로당 앞엔 당산나무인 '말채나무'가 150년 째 서 있다. 생명나무라 불린다. 사연이 있다. 1980년 5월 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후, 외곽도로 봉쇄작전이 시작되면서다. 7·11공수특전여단이 마을 인근에 주둔하며 화순쪽 도로를 차단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22∼27일 이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수 차례 벌어졌다. 생사의 갈림길에도 따뜻했다. 주민들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큰 길 대신 살 수 있는 지름길을 일러줬다. 당산나무 뒤에 숨어서다.

18명의 사상자를 낸 미니버스 총격 사건이 대표적이다. 10대 여고생 4명도 타고 있었다. 23일 11공수 소속 계엄군이 부상을 당한 채수길·양민석씨 등 2명을 주둔지로 끌고 가 사살한 뒤 암매장했다. 명령에 따른 공수부대원은 채씨의 사촌. 이들의 주검은 80년 6월 2일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다. 신원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인됐다. 숨진 지 22년 만이었다.

마을 앞 국도에선 네차례 이상 총격이 가해졌다.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 조사위 발표를 통해서다. 그 간 알려진 버스 총격 외에도 더 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의미. 암매장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장소로 꼽히는 이유다. 의혹은 진행형이다. 조사위는 해남 군부대 인근 5구, 영암 공동묘지 6구, 광주교도소 앞 야산 1구 등 모두 12구의 유해를 발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단장(斷腸)의 비애. 마을은 평온함을 택했다.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를 세웠다. 30주년 때다. 주민 갹출을 통해서다. 올해 10회째를 맞은 '기역이 니은이 축제'도 있다. 5·18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자는 취지에서다. '기억하라! 녹두밭'의 초성인 기역과 니은에서 따 왔다. "6·25전쟁 때 보다 더 한 공포였다." 굴곡진 현대사의 비극은 큰 생채기를 남겼다. 43주년, 오월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며 주남마을의 평화를 기원한다.

유지호 부국장대우 겸 뉴스룸센터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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