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119의 배신

@안현주 입력 2022.08.11. 14:35

펜에도 심장은 있다. 때론 작은 일도 크게 써서 경각심을 주는 반면 큰 일을 작게 쓰기도 한다. 후자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소방' 기사다.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소방관들에 대한 존경이자 예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견제와 비판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합당한 지적을 수용하지 못하는 부작용도 있다. 또 현장 소방관들의 예우를 자신의 예우로 착각한 일부 고위직들이 변화와 혁신을 외면하는 조직 분위기도 있다. 최근 폭우로 발달장애 가족 3명이 숨진 서울 관악구 반지하 참사를 두고 소방당국의 체계적이지 못한 신고출동이 비판을 받았다. 신고가 몰리는 재난상황에서 목숨이 오가는 시급성을 제대로 가려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었다. '중증도 분류'(Triage)라는 소방재난 용어가 있다. 부상자가 대량 발생했을 때 치료의 우선순위를 신속하게 분류하는 기준이다. 첫째 위독하지만 빠른 처치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경우, 둘째 위독은 아니지만 조기 처치가 필요한 경우, 셋째 이송이 필요 없는 경상, 넷째 사망을 포함 부상이 심각해 치료해도 생존이 불가한 경우다. 제한된 소방력을 객관적이고, 효율적으로 투입하려는 가이드라인이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소방출동 지령에도 명확한 우선 기준이 적용됐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광주에서도 "사람이 쓰러졌다"는 신고를 119상황실이 취객으로 오판해 경찰로 넘기는 사이 요구조자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유족들은 소방당국의 부실 대응에 분통을 터트렸다. 더욱 가관은 광주소방의 해명 과정이다. 우연히 요구조자를 발견한 신고자가 상태를 제대로 알리지 못해 취객으로 오해했다는 식의 해명이었다. 해명의 적절성을 판단할만한 시간대별 조치내역도 없었다. 국가직으로 전환된지 한참이 지났지만 해명자료조차 업무 연관성이 별로 없는 광주시청 대변인실을 통해 배포했다. 취객 신고가 긴급출동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더라도 주객이 뒤바뀔 순 없다. 생명의 위급성을 가려내고 구조하는 게 소방 본연의 역할이자 발전시켜 나가야할 사명이다. 소방과 경찰의 '취객 떠넘기기'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취객을 소방과 경찰에 떠맡기는 현실이 다소 불합리하더라도 사태의 본질이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 돌이켜봐야 한다. 과연 소방행정이 국민의 눈높이에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안현주 사회교육팀 부장 press@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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