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전쟁과 소나기

@최민석 입력 2022.06.20. 10:28

비와 햇살은 전쟁과 평화를 가리지 않는다. 포성이 멈추지 않은 땅에도 여지 없이 비는 내리고 태양은 열기를 뿜어댄다. 한국 단편소설의 최고봉 황순원의 '소나기'는 1953년 5월 발표됐다. 한국인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친숙한 작품이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많이 읽히기도 했지만 작품 자체가 세대를 초월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소나기'는 사춘기 시골 소년과 도시 소녀의 순수하고 슬픈 첫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작품이 나온 1953년은 아직 한국전쟁이 끝을 향해 가고 있던 시기다. 황순원은 전쟁 막바지 분단의 현실 속에서 일제암흑기에서 벗어나 광복의 기쁨도 채 누릴 사이도 없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현실을 소년과 소녀의 짧은 만남 속 둘의 때묻지 않은 사랑을 통해 잃어버린 삶의 원형과 새로운 희망을 열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작품을 썼다.

6월은 여름의 문이다. 신록에서 초록으로 변하는 풍경 속에 계절은 다가올 무더위의 전조인 장마를 뒤에 두고 소나기를 뿌린다. 며칠 사이 따가운 햇살이 내려쬐다 소나기가 오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헐거운 마음으로 우산 없이 길을 가다 더위의 무게를 감당 못해 내리는 소나기로 흠뻑 젖기도 했다.

엊그제 한 외신사진을 보니 전쟁이 한창인 우크라이나에도 비가 내렸다. 비가 온 후 더위를 참지 못한 아이들이 수도 키이우 한 시내에서 물이 쏟아지는 분수대 사이로 친구들과 함께 노는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의 군사작전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곳곳에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폭등한 석유와 가스, 밀가루 등 식량가격, 이로 인한 공급망 붕괴로 미국 등 선진국들도 몸살을 앓고 있다. 급기야 세계 경제의 등대인 미국은 41년 만에 치솟은 물가와 인플레로 '자이언트 스텝'으로 불리는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도 주택담보대출 등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무엇보다 리터당 2천원을 넘어선 유가가 서민들의 목을 옥죄고 있다.

오랜 가뭄으로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모내기철 논에 댈 물 조차 부족하다. 지구촌 전체가 전쟁으로 인한 경제난으로 아우성이다. 비는 우산으로 피하면 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경제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나기 같은 소식을 간절하게 기다려 본다.

최민석 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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