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스톱워치와 타이머

@안현주 입력 2022.06.15. 16:12

학부 때 전공과목으로 보도사진을 수강했다. 빈 도화지 위에 무언가를 하나씩 채워가는 회화가 '덧셈'이라면, 파인더에서 보여주기 싫은 부분을 피해서 셔터를 누르는 사진은 '뺄셈'이다. 매일 시간에 쫓기는 언론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뺄셈이 습관이 됐다. '오전 중', '오늘 중', '이주 중', '이달 중'이란 시한을 두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을 마무리했다. 잘하고 못하고는 마감보다 중요치 않았다. 시한을 지켜야 잘하고 못하고도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좀 더 적확하겠다. '뺄셈 인생'을 살다 보니 하다못해 라면을 끓여도 습성이 묻어난다. 면을 삶는 동안 봉지에 적힌 시간을 지키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시간을 재는 방식은 두 가지. 망설임 없이 초 단위로 늘어나는 '스톱워치'보다는, 지정된 시간이 역순으로 줄어드는 '타이머'를 누른다. 뺄셈의 삶은 참을성이 줄어들고 성격이 급해지는 부작용만 빼면 체계적이고 일사불란한 느낌이었다. 물리적 시간은 같지만 두 가지 계산법은 차이가 있다. '스톱워치'를 활용하는 분야는 시간을 단축하는 게 목표지만, '타이머'를 활용하는 일은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또는 일단락)하는 게 목표인 경우가 많다. 맞고, 틀림이 아니라 적용 대상이 다른 것이다. 대통령선거도 지방선거도 끝났다. 그간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정책공약과 과제들이 만만치 않은 숙제로 남았을 것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고 없고, 무엇을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 강기정 광주시장 당선자는 15일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신형철 교수의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 프롤로그 구절을 읊었다. 책에서는 문학의 근원적 물음을 얘기하기 위해 꺼낸 말이지만, 강 당선자는 최근 자신의 고민을 대변하는데 이를 인용했다. 책의 다음 구절은 이렇다. '나의 진실에 부합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날그날의 효율을 위해 이 질문을 건너뛸 때 우리의 정치, 행정, 사법은 개살구가 되고 만다.' 이는 강 당선자뿐만 아니라 지방권력을 쟁취한 모든 선출직 공직자들의 고민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결국 선출직 공직자들의 시계는 '스톱워치'보다는 '타이머'에 가깝다. 4년이라는 임기의 타이머. 역설적이지만 기한 내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그다지 없다. 다만 그 고민 속에서 진심을 말하고 행동할 뿐이다. 그들의 타이머는 오는 7월1일 눌러진다.

안현주기자 press@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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