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두명의 오영수

@최민석 입력 2022.01.24. 11:12

두 명의 오영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전한다고 했지만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남은 이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름은 역사에 영원한 영웅으로 새겨지기도 하지만 오명으로 남기도 한다.

한국 소설문학사에서 오영수(1909∼1979)는 '갯마을'의 작가로만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의 대표작 '갯마을'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됐다.

그러나 그가 생전 남긴 문학적 성과와 업적은 깊고 넓다.

그는 이른바 '어촌문학'의 개척자다. 그는 한국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기계문명을 거부하고 향토색 짙은 주옥 같은 단편소설 창작의 외길을 걸었던 울산 출신의 소설가다.

그는 일본 오사카와 도쿄 국민예술원에서 수학했으며 1943년 경남여고와 부산중에서 교편을 잡았다.

50년 서울신문에 단편 '머루'가 입선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54년 서울로 올라와 이듬해 조연현과 '현대문학' 창간작업에 참여한 후 창작에만 전념했다. 그는 평생 돈과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예술적 열정에 불타는 천상 소설가였다. 무엇보다 오영수는 숱한 단편을 통해 특유의 소설미학과 함께 전후문학의 큰 기둥을 이루는 예술적 성취를 이뤄냈다.

그는 30년 동안 200여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장편은 단 한 편도 쓰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여기 또 한명의 오영수가 있다. 영화 '오징어게임'으로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영화상 골든글로브에서 TV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은 올해 78세의 '깐부할아버지' 오영수다.

67년 극단 광장에서 연기를 시작한 그는 23년간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했고 200편 이상의 연극에 출연할만큼 그에게 있어 무대는 운명이다.

오는 3월까지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되는 '라스트 세션'에서 열연 중이다. 수상 소식에도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습니다"라고 밝혔을 뿐이다. 소설가 오영수와 배우 오영수는 한 분야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예술적 성공을 일궈냈다는 점이다.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일관성과 진심이다. 두 예술가의 행보와 업적은 동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것을 웅변한다. 배우 오영수가 말한 수상 소감 전문 끝머리처럼 모두가 아름다운 삶을 사는 한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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