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산양

@양기생 신문잡지본부장 입력 2021.09.14. 13:48

며칠 전 함께 근무하다 퇴사한 선배를 만났다. 콩나물국밥을 함께 먹으며 덕담을 나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인간사를 많이 바꿔놓는다는 얘기였다. 불완전한 존재여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고등 동물인 인간이 한갓 미물에 풍비박산이 나고 있다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선배는 커피와 함께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추가했다. 선배의 정성이 고마워 포크로 한 번은 맛을 보았지만 나올 때까지 케이크는 사라지지 않았다.

단 것을 먹지 않으려는 습관 때문에 케이크에 손이 가지 않았다.

치즈 얘기가 나오자 선배는 임실치즈 공장을 방문했던 얘기를 늘어놓았다. 내륙 지방 한 가운데 위치한 임실 지역 농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젖소 키우기였고 가공품이 치즈였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 참 임실치즈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어릴 적 산양 키우던 추억이 소환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년 정도 산양을 키웠다. 당시 6학년 담임선생님의 얘기들이 어려서 우유가 필요했다. 시골 골짜기까지 우유 배달이 어렵다 보니 직접 산양을 키웠던 것이다. 관사에서 생활하시던 선생님이 산양을 키우기는 쉽지 않았고 학교에서 공무직으로 근무하시던 아버지께서 대신 산양을 맡게 되었다. 아버지는 뒷마당 자투리 공간에 산양 우리를 만드셨다. 그날부터 산양을 키우는 몫은 온전히 내게로 왔다.

매일 등교하기 전 뒷산으로 끌고 가 밧줄을 매달아 놨다. 방과 후 다시 집으로 데려오기를 반복했다. 산양은 떨어진 풀이나 잎사귀는 절대 먹지 않는 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산양 우유는 아침마다 아버지께서 짰다. 빨간 바가지로 한 가득 나왔는데 가는 체로 걸러서 투명한 병에 담았다. 선생님은 아침마다 오셔서 우유를 가져가셨다. 아이 2명이 우유를 다 못 먹는다면서 절반은 남겨뒀다.

나머지 우유는 내 차지가 됐다. 1년 동안 신선한 우유를 매일 마셨다. 심심한 우유가 낯설었던 동생들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어느 덧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필자 건강의 비결이 산양 우유였던 것은 아닐까. 천방지축 뛰놀고 거침없이 들판을 누볐던 소싯적 기초 체력이 더해져서 지금까지 무탈하게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암튼 감사할 일이다. 양기생 취재4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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