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고등어찌개

@양기생 신문잡지본부장 입력 2021.08.11. 19:16

이모를 생각하면 먼저 고등어찌개가 생각난다. 이모는 변하지 않는 퍼머 머리에 후덕하고 평범하다.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모습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자취생활을 하던 고등학교 시절 이모 집을 자주 찾았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부모님은 자식 걱정에 외할머니가 살고 있는 주변에 머물게 했다. 주로 조선대 후문 일대였는데 외할머니는 수시로 외손자들의 먹을거리를 챙겼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은 시절 민생고 해결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먹을 게 없었다. 방안 한쪽 구석의 난로 위 냄비에는 누렇게 말라가는 보리밥이 허기진 자취생을 기다렸다. 반찬이라고는 묵은지가 전부였다.

밥이 없을 때는 외할머니 집에 가서 끼니를 해결하곤 했는데 외할머니 댁 보다는 거리가 먼 이모 집을 더 찾았다. 외숙모의 눈치 때문이었다. 이모 집은 조대 정문 쪽이었는데 도내기 시장을 거쳐서 한 참을 가야 했다.

이모의 단골 반찬 메뉴는 고등어였다. 고등어찌개는 이모의 대표 음식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장사를 나가는 이모 입장에서는 시큼한 묵은지를 넣고 고등어찌개를 한소끔 해 놓는 것이 집에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반찬과 국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찌개였으니. 그리고 가장 흔한 생선 중 하나인 냉동 고등어는 이모의 최애 아이템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커다란 냄비에 가득 담은 찌개는 며칠 동안 가족들의 든든한 반찬거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그만큼 이모 집은 고등어찌개를 자주 먹었다.

이모 집에 가서 고등어찌개를 먹지 않은 날이 없었다. 가끔 미역국이 올라오고 갈치구이가 등장했지만 그래도 고등어찌개는 빠지지 않았다.

이모의 고등어찌개는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농촌에서 자랐기에 비린내 나는 생선에 거부감이 있었을 법 한 데도 이모의 고등어찌개는 코끝을 자극하지 않아 좋았다 세월이 흘러 외가 쪽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모가 병원에 입원 중이다. 위 바깥쪽에서 시작된 종양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고 있어서다. 무더위와 코로나19 속에 건강을 챙기고 종양도 툭툭 털어내며 다시 일어나시길 빈다. 이모의 시큼한 고등어찌개가 그립다. 양기생 취재4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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