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잃어버린 5월

@최민석 입력 2021.05.10. 18:10

5월은 산과 들에 피었던 꽃이 지는 시기다.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징검다리이기도 하지만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여서 '계절의 여왕'으로 불린다. 사라진 꽃잎은 푸르름이 채워지면서 신록이 자리를 메운다. 이렇듯 아름다운 계절이 사랑과 축복으로 넘쳐나지만은 않는다.

41년 전 80년 5월도 여느 해처럼 녹음이 짙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고 따스한 햇살과 싫지 않은 바람은 온 천지를 휘감았다.

해마다 어린이날을 맞은 5일엔 부모님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과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떠났고 어버이날엔 고사리손의 아이들이 아빠와 엄마 가슴에 정성스레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스승의 날인 15일에는 선생님에게 꽃다발과 선물을 건네며 사제지간의 정을 나눴다.

그러나 그해 5월은 달랐다. 부모님과 어른들은 어느날 갑자기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며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문을 닫는 상점들이 많았다.

거리에서는 차창 유리가 전부 깨진 버스와 트럭에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시위대가 지나간 텅 빈 골목과 거리에는 정적만이 감돌 뿐 인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밖에 나갈 수 없어 무작정 켰던 TV에서는 딱딱한 시국을 전하는 메마른 뉴스와 재탕 삼탕으로 이어진 오락프로가 종일 방영됐다.

그해 5월은 그렇게 지나갔고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현실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것이 필자가 기억하는 1980년 5월의 모습이다. 그렇게 4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989년 열린 5월 청문회 등 광주민주화운동의 올바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역사적 자리매김을 위한 숱한 시도가 있었음에도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은 여전히 제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 광주시 지원으로 제작돼 80년 5월 광주를 다룬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에 출연한 배우 안성기는 "5·18 민주화운동의 아픔은 끝난 게 아니다"며 "이 영화가 반성과 용서, 화해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희생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책무다.

최민석 신문제작부부장 cms20@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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