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물벼락' 전남 농어가 "보상 길 없다니" 또 날벼락

입력 2021.07.16. 18:31 선정태 기자
[400㎜ 폭우 피해 해남·강진의 한숨]
하천 범람 논밭 침수, 전복 2천만마리 폐사
규정 모호하고 금액도 턱없어 보상 막막
특별재난구역 지정 요청에도 정부는 "···"
강진군 마량면의 전복 양식장은 폭우로 민물이 한꺼번에 바다로 밀려와 2천만 마리 이상이 폐사됐다.


"70 평생 살면서 이렇게 많은 비는 처음이었죠. 피해 보상을 받으려면 확인해야 한다고 해서 악취나도 치우지도 못하고 방치하고 있습니다."

지난 5일과 6일 사이 내린 많은 비로 해남군과 강진군 하천을 중심으로 큰 피해를 입어 복구가 한창이지만, 하천 인근 농지와 전복 양식장은 피해보상이 막막한 실정이다.

특히 피해 농어가의 현실적인 보상을 위해 특별재난구역 지정이 시급해 전남도와 지자체장, 도의회, 지역 국회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특별재난구역 선포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다.

강진군 대구면은 지난 6일 12시간 동안 최대 600㎜ 이상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대구천이 범람, 인근 논이 매몰·유실됐다. 특히 대구천을 가로지르는 세월교가 유속을 방해해 피해를 키웠다.

◆ 수확한 농산물은 보상 안돼

16일 오전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 한 하천. 범람으로 제방이 무너져 인근 논으로 모래와 자갈이 밀려들었다. 이렇게 피해를 입은 마을 주민 이경식씨의 4천여 평 논은 모내기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떠밀려 온 모래와 자갈로 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날 이씨의 논에 쌓인 모래와 자갈을 2대의 굴삭기가 4대의 덤프트럭에 퍼 담아 제방에 쌓고 있고, 바로 옆 하천에서도 톤백을 이용해 쓸려간 제방을 다시 쌓고 있었다.

해남군 삼산면의 한 하천이 폭우로 물이 불어나 인근 밭이 유실됐다.

이씨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공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올해 농사는 포기다"고 짧게 탄식했다.

더 큰 문제는 논 옆의 비닐하우스. 7개동의 비닐하우스에서 단호박과 고추도 키우고 있는 이씨는 한 곳으로 안내했다.

그를 따라 들어간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에 '윽'하는 비명과 함께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폭우로 범람한 하천이 비닐하우스까지 덮쳐 농사를 마친 단호박이 잠긴 것이다.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경식씨는 지난 6일 폭우로 하천이 범람해 논 4천평이 모래로 뒤덮였다. 또 인근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던 단호박은 물에 젖어 썩은 상태지만 보상받을 길이 막막하다. 사진은 썩고 있는 단호박을 바라보고 있는 이씨.

상당수는 떠내려 갔고, 일부 남은 단호박은 온통 곰팡이가 핀 채 썩고 있었다. 보상을 위한 증거로 썩고 있는 호박 악취를 매일 맡고 있지만, 피해 10일이 지나도록 면이나 군 등 어느 한 곳에서도 피해 현황을 조사하거나 확인하지 않았다.

답답한 이씨가 면사무소를 두 차례나 찾아갔지만 돌아온 것은 "군과 협의 중"이라는 암울한 답 뿐이었다.

이씨는 "지난 1일 호박을 수확해 판매하기 위해 1천500박스를 쌓아뒀다가 폭우 때문에 1천여 박스 이상은 떠내려가버리고 남은 것이 겨우 200~300 박스 정도다"며 "해남군에서 '수확한 상태이기 때문에 보상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만 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밝혔다.

해남군 현산면의 이경식씨의 논이 하천 범람으로 모래에 뒤덮였다.

그는 "2018년 한차례 범람해 제대로 수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무시당했었다"며 "그 때 제대로 보수했다면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고 원망했다.


◆ 원상복구 아닌 개선 복구 필요

해남군 현산면의 이경식씨의 논이 하천 범람으로 모래로 뒤덮였다. 사진은 모래를 퍼나르고 있는 공사 차량들.

인근의 삼산면도 한꺼번에 쏟아진 비로 대흥사에서 삼산천까지의 4㎞ 계곡 제방 곳곳이 무너져 내리고 인근 논과 밭이 잠겼다.

계속 바닥에 쌓인 모래와 자갈을 10일이나 퍼내고 있지만, 복구 완료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았다.

인근 논과 밭도 범람한 모래와 자갈로 피해를 입었지만 실질적 보상이 가능한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재해지수에 따라 보상금이 결정되는데, 현 피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남군은 피해지역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지난 6일 폭우로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 계곡이 범람해 제방이 무너지고 인근 농경지가 침수됐다.

김철하 해남군 삼산면장은 "계곡 곳곳이 유실됐지만 원상복구만 가능해 또 많은 비가 내리면 다시 무너질까 우려된다. 인근 논과 밭의 복구는 가을이 지난 후 진행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높아져 피해 예방을 위해 무너진 하천 둑에 개선 복구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원상복구비만 주고 있어 피해 반복이 우려되고 있다"고 밝혔다.


◆ 피해 키운 세월교 철거 절실

지난 6일 폭우로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 계곡이 범람해 제방이 무너지고 인근 농경지가 침수됐다. 사진은 복구 중인 모습.

강진군도 폭우로 농작물 1천㏊ 이상이 침수되고, 오리 6만7천마리 이상이 폐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전복 양식어가들의 피해는 수백억원에 이른다.

대구면은 지난 6일 자정께부터 12시간 동안 최대 600㎜ 이상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대구천이 범람, 인근 논이 매몰·유실됐다. 특히 대구천을 가로지르는 세월교(하천을 막은 후 배수로를 뚫어 놓은 잠수교의 일종)로 인해 유속을 막아 토사가 내려가지 못해 이 일대의 피해가 더 컸다.

주민들은 "물이 넘쳐나는데다 세월교가 큰 돌이나 나무가지로 막히면서 범람한 것"이라며 "세월교를 뜯어내고 다리를 설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피해는 수백억, 보상은 0원

마량면의 전복 양식장은 폭우로 민물이 한꺼번에 바다로 밀려와 2천만 마리 이상이 폐사됐다. 민물의 급격한 유입으로 양식장 인근 바닷물 염도가 4ppm으로 급격하게 낮아진 까닭이다.

이날 오후 찾은 양식장은 음식물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더운 날씨로 높아진 수온으로 부패는 더 심해졌지만 치울 수 없어 먼 바다로 흘러가길 기다릴 뿐이다.

31명의 양식 어민들은 400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지만 보상 받을 길은 막힌 상태다. 재난지원금을 받을 방법도 없는데다 까다로운 절차와 비싼 비용, 턱없이 낮은 보상금 때문에 보험도 가입하지 못했다. 그나마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돼야 5천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피해 지역을 둘러본 도의원과 국회의원들은 저마다 "재난지역 선포를 통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재난지역 선포를 요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피해 규모와 액수가 충족돼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태다.

피해 현장에서는 피해 규모를 최대한 반영하려는 해남·강진군과 축소하려는 행정안전부 직원들 간의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 조건 여부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이상심 강진군 부군수는 "하천 기본계획이 변경돼야 대구천 세월교를 바꿀 수 있는데, 변경까지 4년 정도 걸려 예상되는 피해 예방을 위해 수시로 점검하겠다"며 "양식어가 역시 특별재난구역이 선포돼도 보상금액이 현실과 맞지 않아 보상금 상향을 요청한 상태다"고 밝혔다.

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해남=박혁기자 md181@mdilbo.com·강진=김원준기자 jun09771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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