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철도 타고 지역 소멸 파고 넘는다

입력 2023.02.23. 19:22 나윤수 기자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39.후일담.끝<4>함양·거창·합천역
함양대봉산휴양밸리는 선비문화의 본고장인 함양에서도 공기 좋고 경치 좋기로 소문난 곳에 자리잡은 힐링 명소다. 스릴을 즐길 수 있는 모노레일과 짚라인,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숙박시설과 캠핑시설, 자연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산림욕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39.후일담.끝<4>함양·거창·합천역

달빛내륙철도 경남구간은 함양·거창·합천군이 포함됐다. 풍요로움과 인자함이 흐르는 땅이다. 그 땅에 달빛내륙철도가 몰고 올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경남 주민들은 "달빛내륙철도는 경남의 미래를 결정지을 숙원사업이다"로 간절함을 말한다. 그들에게 달빛내륙철도는 예비타당성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국토에 설치되는 단순한 철도이겠지만 함양·거창·합천주민들에게는 지역 소멸 파고를 넘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함양군 상림숲에 부는 기대

일찍이 함양군은 영남을 대표하는 선비의 고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지리적으로 백제와 신라의 경계 탓에 두 세력이 맞부딪친 곳이기도 하다. 군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교통요지로 부상했다. 2030년 달빛내륙철도가 개통될 경우 함양은 영호남을 잇는 내륙 관광도시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질 전망이다.

우선 주목되는 곳이 상림(上林) 이다. 함양은 상림이고 상림이 곧 함양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함양에서 상림숲의 상징성은 크고 높다.

1천년 전 백성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만든 숲이 오늘날 함양을 대표하는 자연 유산으로 자리 잡은 사례다.

1천년의 숲 상림은 신라 최고의 지성 최치원이 숲을 만들었으니 역사적 가치가 여느 숲과 비할 바가 아니다. 상림 숲은 천연기념물 154호다. 우리나라 최초 인공 숲으로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색색의 꽃들이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꽃이 만개하면 함양이 빚은 무릉도원이다. 달빛 내륙철도가 열리는 날 상림은 대한민국 최고 정원 숲이라는 반열에 오를 일만 남았다.


◆새 명소 급부상 '대봉산 휴양밸리'

함양 상림이 옛것을 대표한다면 대봉산 휴양밸리는 새것의 선두 주자다. 항노화엑스포 성공으로 함양군이 새로 눈을 돌린 곳이 대봉산 휴양밸리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대봉산을 개발해 상전벽해로 변화시켰다.

함양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대봉산 휴양밸리에 서면 함양의 미래가 보인다. 대봉산 휴양밸리는 지난 2021년 4월 개장했다. 산악 레포츠에서 휴양까지 산이 주는 온갖 상상력을 더한 곳이 대봉산 휴양밸리다.

우리나라 최초 산악관광 모노레일은 길이만 3.93㎞로 웬만한 도시 길이다. 모노레일을 타고 대봉산 정상에 오르면 지리산 천왕봉과 마주한다. 정상에서 타고 내려오는 국내 최장 집라인은 시속 120㎞ 스피드 향연이다.

함양군청 휴양밸리과 소창호 과장은 "대봉산 휴양밸리는 산의 활용 패러다임을 바꾼 대역사다"면서 "2030년 달빛내륙철도가 완공되면 함양 관광은 차원이 다른 관광모습으로 영호남 화합에 도움을 줄 것이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번영 꿈꾸는 거창

거창군은 아픔의 땅이다. 거창하면 양민 학살을 떠올릴 정도로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오늘날 거창은 미래와 기회가 충만한 고장으로 가슴 설레게 하고 있다.

거창 수승대 관광지는 거창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유명하다. 이곳 명물 거북바위는 바위가 계곡 중간에 떠있는 모습이 거북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세월의 아픔을 견뎌낸 소나무들이 바위 곳곳에 자라고 있어 평지 같은 인상을 준다. 바위 둘레에는 퇴계 이황이 수승대로 개명할 것을 제안한 오언율시를 비롯해 풍류가들의 글들이 새겨져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거창 관광 1번지 하면 수승대(授勝臺)다.

수승대는 물과 바람, 바위가 빚어낸 절경이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시원스레 바위를 감싸고돈다. 수승대는 퇴계 이황 선생이 "수심을 잃어버린다"는 뜻으로 이름을 바꾼 뒤 오늘날 거대한 자연과 역사박물관으로 변했다.

갖가지 이름이 붙은 기암괴석과 정자는 영남 선비 정신세계와 맞닿아 있다.

수승대의 명물 거북바위는 보는 사람마다 모습을 달리한다. 하지만 대다수가 거북을 떠올릴 만큼 거북을 쏙 빼닮았다. 오늘날 거북바위는 수승대 계곡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등에 소나무 몇그루를 이고 있어 거북바위를 더욱 신비롭게 한다. 거북바위에는 퇴계 이황 오언시를 비롯해 옛 선인들의 시가 빼곡하다.

지금 같으면 자연 훼손으로 큰일 날 일이지만 예전 묵객들은 바위에 작품을 새기는 것을 풍류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자체로도 볼거리다. 거북 바위밑 구연교(龜淵橋)는 콘크리트 벽으로 다리를 연결해 놓았다. 수승대 계곡을 편히 건널수 있게 했다. 편리함은 좋은데 하얀 인공다리가 왠지 자연과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한여름 밤의 꿈' 경남 국제 연극제

여름날 수승대는 거대한 야외 연극 무대로 변한다. 거창군은 연극 도시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데 그 중심에 거창국제 연극제가 자리한다.

한 여름밤을 뜨겁게 달구는 거창국제연극제는 지난 1989년 '거창 10월 연극제'로 시작됐다. 수승대 야외무대는 우리나라 최대 최고 야외무대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거창 국제연극제는 경남을 알리는 대표 문화콘텐츠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4년 만에 다시 열린 제32회 거창 국제 연극제는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여름 밤 연극과 함께하는 특별한 경험은 "우리나라 최고의 야외 공연무대다"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이성열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 회장은 "거창은 국가적 아픔을 간직한 땅이지만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말하고 "달빛내륙철도가 민족 화해를 위한 화합의 철도로 건설됐으면 한다"고 바랬다.


◆팔만대장경 품은 합천군 기대 부풀어

경남 마지막 역 합천은 팔만대장경이 존재하는 땅이다. 달빛내륙철도는 팔만대장경과 호국 인물들을 재조명하게 된다. 합천(陜川) 은 조선시대 이후에 호칭된 지명으로 '좁은내'라는 뜻이다. 그러나 달빛내륙철도가 들어서면 좁은 땅 이미지는 옛말이 된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의 내부. 대한민국 국보 제52호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임정옥기자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자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세계 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은 1236년부터 1251년에 만들어진 16년 집념의 산물이다.

대장경뿐이 아니다.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을 모신 집으로 1995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유네스코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방법에도 주목했다. 그 결과 장경판전은 세계기록유산과 세계유산이라는 두 가지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장경판전은 천연 태양광 항온·항습으로 오늘날 과학으로도 불가사의다.

15세기에 지어진 이래 판전안 대장경들은 단 한 번의 뒤틀림도 없었다.

해인사 문화해설사 박수남씨는 "달빛내륙철도가 열리면 팔만대장경의 국제적 가치는 더욱 선명 해진다. 사진만 찍고 돌아서지 말고 팔만대장경의 가치를 제대로 배웠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합천 '노블레스 오블리주'

합천은 조선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남명 조식이 태어난 고장이다. 남명조식은 1501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나 뛰어난 학문에도 불구하고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좌퇴계 우남명'이라 할 만큼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의 삶은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준다.

왜 이 시대에 또다시 남명인가. 남명은 우리 역사에서 보기 힘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의 의무란 뜻이다.

즉 사회 지도층이 책임 의식을 갖고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의무를 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달빛내륙철도와도 잘 어울린다.

달빛내륙철도 건설도 알아주지 않지만 누군가 꿰차고 나아가야 한다. 수많은 후학을 양성하고도 뒤로 나앉은 삶을 살다간 남명처럼 소신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달빛내륙철도 건설도 경제성만 따진다면 하세월이다. 이미 지방은 소멸하고 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남명 조식이 살아있다면 "누가 이 나라를 동서로 가르고 국토 균형발전을 가로막았느냐"고 준엄히 따지지 않았을까. 위정자들은 "우리에게 달빛 내륙철도는 멋을 내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시설이다"는 합천주민들의 외침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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