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부인 판소리 즐기다보니 80먹고 상받아 영광"
"좋은 일, 시간 정해놓고 찾아오지 않아…결실의 시기 달라"
후학 양성에 헌신한 호랑이 스승, 오정해·박애리 등 배출
"판소리가 참 어려운 일인디...그래도 마음에 쌓아둔 근심·걱정 붙들어 매고 즐기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겄는가."
15살에 소리를 배우기 시작해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안애란(79) 명창에게 최근 뜻밖의 좋은 일이 찾아왔다. 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기념 국무총리표창 수상자에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안 명창에게 이번 수상은 단순히 상장의 의미를 넘어 일생을 바친 판소리의 계승·발전에 헌신했다는 증표와도 같았다. 그는 "제 나이에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판소리는 언제나 제 삶의 전부였고, 즐거운 삶을 살고자 노력하다 보니 영광스러운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안 명창은 후배들에게도 "즐겨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판소리를 즐기지 못했다면 이 나이 먹어서까지 이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소리꾼이라면 자기 일을 즐길 줄 알아야 흥돋는 무대를 보여줄 수 있다"면서 "물론 도중에 난관에 부딪힐 수는 있겠지만, 그럴 때 흘린 땀방울과 노력으로 인해 언젠가 결실을 보는 법이다. 그 시기가 저처럼 느지막한 나이 일수도 있고 더 일찍 일 수도 있다. 지난 삶을 돌아보니 좋은 일은 시간을 정해놓고 찾아오지 않더라"고 전했다.
전남 나주 출신인 안 명창은 유년 시절 목포로 올라와 15살에 판소리를 접했다. 여성국극 공연을 보면서 소리꾼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당시 한창 붐이 일던 여성국극을 보고 전통예술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안 명창은 신영희 명창의 아버지 신치선 선생에게 판소리를 처음 배운 뒤 장월중선 선생을 거쳐 정응민 선생 문하로 들어가 실력이 만개했다. 20~30대 시절 여성국극 단원으로 활동했고, 제6회 목포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전남무형문화재 제29-2호 동편제(김세종제) 춘향가 예능보유자인 그는 1981년부터 목포시립국악원 판소리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 양성에 집중했다.
그는 교단을 떠난 지금도 안애란 판소리 전수소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있다.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 오정해를 비롯해 국립창극단 주역으로 활동한 팝핀현준의 아내 박애리,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의 김송, 정승희 등 내로라하는 소리꾼들이 안 명창의 제자들이다.
안 명창은 "자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제자들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은 것 같다"며 "다른 건 몰라도 제자들을 많이 사랑하고 아꼈던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안 명창은 호랑이 스승으로 유명하다. 평소 특유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재치 있는 입담을 뽐내다가도 수업이 시작되면 급변한다.
국악인 박애리씨는 한 방송에서 안 명창을 언급하며 "안 선생님 소리공부는 엄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면서 "매일 조금씩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가르쳐주셨는데, 지금도 선생님에게 배운 소리는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안 명창은 "예전부터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하나는 확실했다. '한마디를 해도 정확히 짚고 넘어가 한다'는 주의였다. 오늘 가르친 소리가 내일 엉망이라면 될 때까지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국악이 다시금 주목받는 요즘 안 명창은 후배들에게 당부의 한마디를 건넸다. 그는 "티비에 나오는 국악 경연 프로그램을 종종 보는데 요즘 후배들은 자신감 이 넘쳐 보여서 보기 좋다. 크로스오버 등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즐길 줄 안다"면서도 "저같이 늙은이들이 볼 때 새로운 시도도 좋지만, 우리 전통도 잘 고수해가면 좋겠다"고 했다.
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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