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남원역<하> 고대 소설과 지리산 여행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16. 남원역<하> 고대 소설과 지리산 여행
◆두 마을 모두 체면 세워 준 흐뭇한 결말
고전소설 흥부전은 흥부와 놀부가 태어난 남원시 인월면 성산마을에서 시작해 복을 받아 부자가 된 아영면 성리에서 마무리된다. 한데 두 마을에서 작은 소란이 빚어졌다. 인월면과 아영면이 서로 흥부 연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인월면은 박첨지 설화가 '흥부전'의 배경이라고 하고 아영면은 "뭔소리당가", 우리 동네 "춘보 설화가 진짜 흥부여!"라고 주장했다. 둘 다 그럴만하다. 인월면 성산리에는 박첨지 묘가 있고 아영면 성리에는 흥부로 추정되는 박춘보 묘가 버젓이 존재한다. 입장이 난처하기는 남원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남원시는 대학에 심판을 맡겼다. 경희대 민속학연구소가 심판을 맡아 현지조사를 거쳐 어느 쪽이 진짜 흥부인지를 가렸다. 그 결과 심판은 아영면 '춘보 설화'에 손을 들어주었다. 인월면의 박첨지 설화는 하는 짓이 아무래도 놀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월면의 반발이었다. 졸지에 마음씨 좋은 흥부 마을에서 몹쓸 놀부마을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낸 묘안이 절묘하다. 흥부와 놀부가 태어난 인월면은 '흥부 출생지'요, 아영면은 흥부가 복을 받아 잘살게 된 동네니 '흥부 발복지'라고 한 것이다. 그쯤 되면 서로 싸우지 말고 반반씩 나눠 가지라는 것이다.
양쪽 체면을 세워주기는 했지만 흥부가 보면 조금 쑥스럽기는 할 것 같다. 반쪽이면 어떤가. 사실 요즘은 놀부가 더 잘나가는 시대인데 인월면이 조금 손해난 것은 아닌가.
◆숲길에 비춰진 비취색 계곡 '인산인해'
달빛 철도를 달리다 보면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남원이다. 시내 곁에 구룡계곡을 끼고 있는가 하면 자동차로 휑하니 오를 수 있는 정령치, 깊은 심산유곡 뱀사골까지 지리산은 남원에 가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남원시는 차로 10분만 달리면 아홉 마리 용이 산다는 구룡계곡과 마주한다. 구룡 계곡 입구에는 춘향이 묘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 당혹스럽다.
그동안 성춘향은 이야기 속 허구 인물로 알았는데 화려하게 꾸민 묘지라니 뭔가 조금 이상하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구룡계곡 입구 주천면 호경리 산 28이 성춘향 묘다. 계단을 한참 오르면 '만고열녀성춘향지묘(萬古烈女成春香之墓)'라고 새겨진 묘가 나온다. 매년 춘향제가 열릴 때면 춘향묘에 제사까지 지낸다고 하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구룡계곡은 육모정 주차장에서 구룡폭포까지는 왕복 8㎞ 트레킹 코스다. 협곡 형태로 오르내림이 심해 구룡폭포까지는 한나절 발품은 팔아야 한다.
뱀사골 와운 마을과 천년송 남원 지리산 하면 뱀사골이 떠오른다. 뱀사골 유래는 뱀처럼 구불구불 흐른다고 해서 뱀사골이라는 설과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석실 부근 배암사 절터 때문이라는 설, 뱀이 죽은 골짜기에서 유래했다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여름 뱀사골 계곡은 숲길에 비춰져 비취색으로 변해 있다. 입구부터 인산인해다.
목책길을 따라가면 구름이 눕는 마을 '와운 마을'이 나온다. 멀리서 보면 구름이 누운 듯 산세를 벗삼아 신세 좋게 누워 있는 모습이 와운 마을답다. 이 마을에 왔으면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 천년송을 영접할 차례다. 나무가 천년을 살았으니 그냥 소나무 한그루가 아니다. 기품이 당당해 움찔해진다. 하늘을 향해 솟은 폼에다 천년 세월의 두터운 용비늘 흔적까지 과연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천연기념물 424호) 타이틀을 거머쥘만하다. 천년송은 할머니 소나무라 불리는데 이곳에서 20여미터 떨어진 곳에 할아버지 소나무가 있다. 할머니 소나무가 화려하다면 할아버지 소나무는 단정한 매무새다. 와운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사흘 천년송 아래서 마을 안녕을 비는 당산제를 지내 천년송의 가치를 더한다.
◆발걸음 가벼워도 마음 한켠엔 무거운 짐
와운 마을을 나오면 길은 와운교에서 나뉜다. 화개재 방향으로 틀면 본격적인 뱀사골 계곡이다. 뱀사골 끝까지 가려면 30리는 족히 걸어야 하는 심산유곡이다. 뱀사골은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곳곳에 깊은 물길 소가 등장한다. 용이 노는 요룡소, 멧돼지가 노는 돗소(돗은 남원 사투리 '돼지'), 호리병 같은 병소 등 짬짬이 휴식을 취할 때마다 모습과 닮은 기록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름다운 뱀사골도 6·25 민족 비극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뱀사골 안쪽 석실도 그 아픈 기억의 한 비늘이다. 큰 바위가 엉켜 있어 뒤로 돌아가 보면 석실이 빨치산들의 은거지임을 알 수 있다. 석실은 노동신문과 사상교육을 담당하는 인쇄물 제작 장소로 알려져 있다. 골이 깊어질수록 몸은 가볍지만 마음이 무거워짐은 어쩔 수 없다. 뱀사골 깊은 계곡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외침과 메아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노고단·반야봉 거쳐 천왕봉까지 장관
걷기 힘들다면 구룡계곡이 뱀사골보다는 정령치로 오르면 만사형통이다. 남원에서 출발해 고기리까지 올라가는 코스로 차로 20분 정도 거리다. 정령치는 해발 1천172m다. 정령치에서는 지리산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너무 쉽게 지리산 연봉들을 만나는 것 같아 조금은 미안한 기분이다.
여름 지리산 연봉들은 시시때때로 구름에 가린다. 조금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저 멀리 구례 쪽 노고단, 반야봉을 거쳐 정상 천왕봉까지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장관을 정령치가 선물한다. 정령치는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 경계다.
멀리 남원시 조망도 한눈에 들어온다. 여름 정령치는 쏟아지는 별로도 유명하다. 정령치 별잔치를 보려는 동호인도 많다. 가을에는 좋은 자리 찾기가 힘들다고 하니 한가한 여름밤 별잔치 참여도 수지맞는 장사다.
◆흔한 음식이지만 진짜를 맛 볼 시간
지리산을 내려올 때쯤 생각나는 음식이 추어탕이다. 추어탕은 흔한 음식이 됐지만 남원에 온 이상 진짜 추어탕을 맛볼 기회다. 왜 남원 추어탕이 그리도 유명한지 눈으로, 맛으로 확인해 봐야 한다.
남원 추어탕은 여름 보양식의 상징이다. 남원만의 맛으로 자부심의 한켠을 차지한다.
남원 추어탕이 유명한데는 재료와 기후가 추어탕의 질을 높이기 때문이다. 지리산 맑은 물과 계단식 논 덕분에 원재료 미꾸리가 오래전부터 남원에 터 잡고 살았다. 남원 추어탕 맛을 내는 미꾸리는 미꾸라지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다.
예로부터 남원에서는 미꾸리를 추어탕 재료로 사용해 왔다. 미꾸리는 수염이 짧고 미꾸라지는 수염이 납작하고 길다고 한다. 미꾸리는 성어 기간이 2년으로 미꾸라지보다 갑절이나 길어 생산성이 떨어지는 약점도 보인다. 그만큼 귀한 음식재료라는 뜻이다. 남원시는 미꾸리 양식 기술을 개발하고 남원에 남아 있는 추어탕 집에 미꾸리를 공급해 남원만의 추어탕 맛 전통을 잇게 하고 있다.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
"끓이면 담백하고 살이 탱탱" 재료부터 남다른 원조 맛집
남원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추어탕이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추어탕이지만 남원이 간직한 비법은 무엇일까. 남원 추어탕은 도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그래서 찾은 곳이 남원에서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남원 추어탕의 원조 격인 '새집 추어탕'이다.
집주인 서정심(62)씨에게 대뜸 물었다. "도대체 남원 추어탕은 뭐가 달라요"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알고 보면 달라도 한참 달라요"다. 우선 주재료인 "미꾸라지부터 달라요" 한다.
추어탕에 들어가는 재료는 미꾸라지와 미꾸리가 있다. 추어탕을 수십년씩 먹었지만 설명을 들어도 그게 그거다. 남원의 맛을 내는 미꾸리는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종이다.
추어탕 장사 60년 전통의 서정심씨는 "미꾸리는 둥글이라고 해서 머리가 둥글둥글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꾸리는 끓이면 맛이 담백하고 살이 탱탱해진다"고 한다. "양식이 쉽지 않은 미꾸리를 고집하는 이유도 남원 추어탕 고유 맛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고 덧붙인다.
전통을 살리기 위해 남원시도 적극 나서고 있다. 남원시는 미꾸리를 농가에 보급해 남원 추어탕 전통을 잇게 하고 있다.
서정심 사장은 남원 새집 추어탕만의 세 가지 비법도 공개했다. 지리산 고산지대 시래기와 미꾸리, 여기에다 그가 개발한 독특한 들깻가루 3종 세트가 새집 추어탕 맛의 비법이다.
코로나로 손님이 줄자 서정심 사장은 '백년가게' 인증을 받아 팩으로 개발한 추어탕을 전국적으로 판매 중이다. "달빛 내륙 철도가 열리면 진짜 남원 추어탕 맛을 영남 친구들에게 맛보게 하고 싶다"는 그녀의 소박한 소망이 열리는 날도 머지않았다.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
- '달빛철도특별법' 국회 법사위 통과···광주시 "환영" 법제사법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이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법사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을 의결했다.이번 특별법은 대구시와 광주시를 연결하는 고속철도의 신속한 건설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토 균형발전과 영·호남 산업벨트 조성 및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는 내용이 골자다.구체적으로 ▲신속한 건설사업 추진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고속철도 역사 주변 3km 이내 개발 예정지역 지정 ▲건설사업 및 주변 지역 개발을 위한 필요 비용 보조·융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달빛철도는 대구(서대구), 경북(고령), 경남(합천·거창·함양), 전북(장수· 남원·순창), 전남(담양), 광주(송정) 등 6개 광역 지자체와 10개 기초 지자체를 경유하는 영호남 연결 철도다. 총길이 198.8㎞로 2030년 완공 목표다. 총사업비 4조5천158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국책사업으로, 달빛고속철도가 개통되면 광주에서 대구까지 이동시간이 1시간대로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이날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특별법은 25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광주시는 이날 "달빛철도 특별법이 오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환영합니다. 동서화합과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인 달빛철도사업이 시작되기까지 이제 한 걸음 남았습니다. 광주시와 1천700만 영호남 지역민들은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달빛철도 특별법이 의결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고 밝혔다.박석호기자 haitai200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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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 출발역, 메가톤급 호재에 기대감 부푼다
- ·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선 저항 정신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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