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남원역<중> 남원의 특별한 문학 기행
유명 고대 소설 배경 무대 만복사
대웅전 등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타
석인상만 남아 정막한 절터 지켜
왜적에 맞서다 숨진 1만 만인총
일제 때 몰락하는 양반촌 이야기
며느리 3대 사연 사투리로 풀어
소리 내 읽어내면 그대로 판소리
운율의 교과서 같은 소설 금자탑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⑮남원역<중> 남원의 특별한 문학 기행
남원은 우리 문학사를 가로지르는 특별한 곳이다. 춘향전과 흥부전의 탄생지며 만복사저포기, 최척전, 홍도경 같은 고대소설 현장과 남원이 탄생시킨 현대문학의 금자탑 최명희의 혼불에 이르기까지 남원이 주는 영감과 감동은 우리 문학사의 큰 줄기를 이룬다.
◆최초 한문 단편 소설이자 애정 소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1435~1493)은 금오신화의 저자다. 최초 한문 단편 소설이자 최고 애정소설로 꼽히는 소설 '금오신화'는 남원 만복사지가 주무대다. 매월당 김시습은 세조찬탈에 반대해 천하를 방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 금오신화의 '만복사저포기' 무대가 바로 남원 만복사다. 남원에 사는 양생이라는 친구가 배포 좋게 부처님과 한판 윷놀이를 뜬다. 양생은 부처님과 대결에서 이겨 배필을 소개받는데 그녀와의 소개팅 장소가 바로 만복사다.
소설 주인공 양생은 남해안 일대를 침범해 약탈을 일삼던 왜구에 의해 죽은 처녀 혼령과 3일 동안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운다. 양생의 비극적 사랑 얘기는 100여년 만에 실제 상황으로 재연되고 말았다. 정유재란 때인 1597년 8월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1만 남원 남녀노소 백성이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남아 있는 당간지주 길이만 10m
만복사(萬福寺)는 남원시 만복사길 기린산 아래 사찰로 고려 문종(1046~1087)때 지어진 사찰이다. 지금 만복사는 절터만 남아 있지만 정유재란 때 일본의 침략으로 불타기 전만 해도 대웅전, 천불전, 5층석탑 등 유적이 즐비한 큰 사찰이었다. 지금 내려오는 만복사지는 그때 규모만 짐작게 할 뿐이다. '백뜰'은 만복사지 앞 제방으로 "승려들이 빨래를 널어 이곳이 온통 하얗다"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만복사지 당간지주와 석인상 등을 통해서도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당(幢)은 절에서 행사를 할 때 부처님의 공덕을 기려 문 앞에 내걸던 일종의 깃발로 당간지주는 깃발의 깃대를 받치는 기둥이다. 지금 남아있는 만복사지 당간지주만 봐도 10m는 족히 돼 보인다. 만복사지는 1979년부터 1985년까지 발굴 조사를 거쳐 고려 가람 연구의 귀한 존재로 판명됐다.
여름 만복사지는 한참 더위에 적막감만 감돈다. 그럼에도 만복사지는 우리들에게 숱한 영감을 주는 곳이다. 만복사지를 지키고 있는 키 큰 석인상이 한껏 우리를 노려본다. 사람 형상이지만 조금 무섭게 다가온다. 원래 서있는 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주인 없는 만복사에 석인상이 남아 만복사지를 늠름하게 지키고 있다.
◆중국·베트남·일본 넘나드는 스케일
소설 '최척전'은 1621년 조위한(광해군 13년)이 지은 고전소설로 정유재란이 역사적 배경이다. 고전소설이라지만 배경만큼은 남원과 중국, 베트남, 일본을 넘나드는 스케일이 장쾌한 소설이다.
소설 속 최척은 정유재란 때 아내 옥영과 생이별한다. 생사를 모른 채 최척과 아내 옥영은 정유재란으로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옥영은 왜군의 포로가 되었고 최척은 외국을 헤매다 실심(失心)한 끝에 명나라 장수 여유문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살게 된다. 최척과 옥영은 아들 둘을 낳았는데 모두 만복사 부처님의 점지를 받는다. 그 후로도 어려울 때면 만복사 부처님은 여지없이 등장해 최척과 옥영을 돕는다. 가족들은 극적으로 다시 만나 고향 남원으로 돌아온다.
최척전에는 남원 교룡산성, 남원성, 만복사지가 등장하는데 여기만 따라가도 역사 얘기가 넘친다. 남원땅 만복사지에는 보물 제 31호로 지정된 만복사지 석조대좌가 남아있다. 불좌는 사라지고 없지만 최척이 어려울 때마다 등장했던 그 부처님이 앉은 자리만 남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 만복사지를 잊고 살았다. 먹고살기 바빠 시대를 초월한 사랑 얘기 따위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문학에서 만복사지는 영원한 사랑의 무대다. 금오신화와 최척전의 무대가 만복사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만복사지는 황량한 하기 그지없지만 문학사에서만큼은 더없는 상상력의 원천인 것이다.
◆비극의 씨앗은 명나라 장수 결정적 오판
최척전에 등장하는 정유재란의 최대 비극 교룡산성과 남원성은 과연 어떤 곳인가. 남원성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헐린다. 남원성은 고을을 지키는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1597년 8월 정유재란,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싸움이 남원성에서 펼쳐진다. 남원 관민 1만명이 참가한 남원성 전투는 조선의 처절한 패배로 끝난다. 패한 남원성 안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인간 살육극이 펼쳐졌다. 그렇게 해서 사라진 남원 백성이 1만여명.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래알처럼 사라진 1만 남원백성이 '만인의 총'에 묻혀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통탄스러울 때가 있다. 남원성 전투만 해도 그렇다. 남원성이 아닌 교룡산성에서만 싸웠어도 이런 황망한 패배는 없었을 것이다. 5만여명의 일본 병력과 1만 조선의 싸움은 지리적 이점이라도 누려야 했다. 교룡산성은 말 그대로 산성이고 남원성은 평지다. 교룡산성에 올라보니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천연 요새다. 교룡산성 내에는 99개의 우물이 있었다 한다. 남원주민과 식량도 그곳으로 옮겨 항전 준비도 끝낸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장수 양원이라는 작자의 결정적 오판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비통하기 그지없다. 그날의 비극을 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새로 조성되고 있는 남원성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밥 한상 먹을 시간이면 닿은 정거장
만복사지가 잊혀진 고대 문학여행이라면 사매면 노봉마을 투어는 남원 문학의 현대판 기행이다.
혼불은 작가 고(故) 최명희(1947~1988)의 역저다. 일제 강점기 몰락해가는 양반촌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인 강모 이야기와 상민들의 저항 등 1930년대 전라도 남원의 몰락해가는 양반가 며느리 3대 이야기를 향토색 짙은 사투리로 풀어 놓았다. 시대를 넘어선 베스트셀러 혼불은 "큰 소리로 읽으면 판소리 가락이 될 정도다"는 운율의 교과서 같은 소설이다.
노봉마을 앞 서도역은 익산과 여수를 오가는 전라선 기차역사로 2002년 현재의 서도역사로 옮겼다. 1934년 처음 개장한 서도역사는 일제 강점기 역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소설 속 인물인 효원이 강모네로 시집 가던 날 "점잖은 밥 한상 천천히 다 먹을 만한 시간이면 닿는 정거장"이라는 구절로 서도역을 묘사한다. 서도역 앞에는 기품 있는 고목이 흐드러져 있다.
서도역은 혼불의 고향역 같은 곳이다. 서도역에서 5분 거리에 혼불 문학관이 있다. 혼불 문학관에서는 최명희의 문학적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한옥으로 단정히 지어진 문학관이 나온다. 작가 최명희의 원고를 만날 수 있고, 소설 속 인물들도 디오라마로 만날 수 있다. 문학관 옆 청호 저수지 물은 푸르디푸르다.
'청호저수지·달맞이동산·서도역'… 눈앞에 나타난 1930년대 최씨 종가
양규창(혼불문학관 관장)
"남원은 한국 문학의 메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지난 2월 혼불문학관관장으로 취임한 양규창씨는 남원이 한국 문학에서 차지 하는 위상을 "한국 문학의 메카다" 고 서슴없이 규정한다. "불멸의 고전문학 춘향전과 흥부전이 탄생한 곳이고 만복사저포기, 최척전과 홍도전등 고전문학의 발생지이자 현대 문학의 금자탑 혼불의 고장인 남원을 빼놓고는 한국 문학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양규창 관장의 메카론적 지론이다.
혼불 문학관은 지난 2004년 10월 혼불 작가 최명희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자 작품의 배경지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조성됐다. 혼불 문학관은 전시관을 비롯해 최씨 종가, 청호 저수지, 달맞이 동산, 구 서도역등과 연계한 혼불 정신으로 전국적인 문학 마을로 발돋움 했다. 혼불 문학관에 들어서면 18년전 소설 내용을 꼭 닮은 디오라마를 만날 수 있다. 디오라마 표정 하나 하나가 너무나 리얼해 감탄을 자아낸다.
양규창 관장은 최명희 혼불에 대한 역사성과 작품성에 대해 "1930년대 종가의 이야기를 농밀하게 서술한 소설로 민속학과 모국어의 보고이자 민족문화의 전승이 폭넓고, 다채롭게 표현된 소설이다"고 역사성과 작품성을 높이 평가한다.
여름에 찾은 혼불 문학관은 한창 새단장 중이다. 보수작업이 끝나는 이달 말께는 새로운 모습으로 '가을 작은 문학제'를 열 계획이다. 혼불 문학관에서는 혼불 문학시상식과 '혼불로 배우는 '온고 지신','혼불 만년필 필사체험'등으로 혼불 문학의 정신적 오롯이 이어갈 각오다.
양관장은 "노봉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 공간이 혼불의 소설 배경이 된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서 "달빛 철도가 열리는 날 영호남이 남원에서 문학으로 하나가 됐으면 한다"는 꿈도 숨기지 않았다.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
- '달빛철도특별법' 국회 법사위 통과···광주시 "환영" 법제사법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이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법사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을 의결했다.이번 특별법은 대구시와 광주시를 연결하는 고속철도의 신속한 건설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토 균형발전과 영·호남 산업벨트 조성 및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는 내용이 골자다.구체적으로 ▲신속한 건설사업 추진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고속철도 역사 주변 3km 이내 개발 예정지역 지정 ▲건설사업 및 주변 지역 개발을 위한 필요 비용 보조·융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달빛철도는 대구(서대구), 경북(고령), 경남(합천·거창·함양), 전북(장수· 남원·순창), 전남(담양), 광주(송정) 등 6개 광역 지자체와 10개 기초 지자체를 경유하는 영호남 연결 철도다. 총길이 198.8㎞로 2030년 완공 목표다. 총사업비 4조5천158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국책사업으로, 달빛고속철도가 개통되면 광주에서 대구까지 이동시간이 1시간대로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이날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특별법은 25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광주시는 이날 "달빛철도 특별법이 오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환영합니다. 동서화합과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인 달빛철도사업이 시작되기까지 이제 한 걸음 남았습니다. 광주시와 1천700만 영호남 지역민들은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달빛철도 특별법이 의결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고 밝혔다.박석호기자 haitai200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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