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여수 왕지·만흥매립장도 포화
사용기한 연장·대체시설 협상 팽팽
근본해결책 못찾고 민·관 떠넘기기
'님비 고집' '행정 무능' 대란 불보듯
전남 동부권 쓰레기가 갈 곳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생활폐기물 처리시설 존폐를 둘러싼 민-관 갈등이 원인이다.
순천시는 잔여 용량이 3% 남짓 남은 왕지매립장을 대체할 종합폐기물처리시설(클린업환경센터) 건립을 두고 후보지 주민들과의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순천시는 당장 쓰레기 처리할 곳 없어 왕지매립장을 증설부터 서두르고 있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만흥위생매립장 사용기한 연장 계획이 수포가 된 여수시는 협상 테이블에 앉은 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매립장을 정상 운영하고 있다. 추가 사용기한 설정 여부를 두고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두 지자체는 현재까지 이렇다 할 타협점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민들과의 갈등 봉합은 요원한 과제로 남겨둔 채 땜빵식 처방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기피시설에 대한 반감 등 님비 현상, 사회적 합의기구 부재 등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맞물려 전남 동부권 쓰레기 대란이 앞당겨지고 있는 가운데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쓰레기 대란 카운트 다운, 순천에 남은 시간은 1년 안짝
순천 생활폐기물 매립시설인 왕지매립장의 잔여 용량이 3% 수준에 도달했다. 1년 이내로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어지게 된다. 순천 전역에서 배출되는 일평균 생활폐기물량은 2019년 기준 254t(가정·사업장)에 달한다. 이는 전남 22개 시·군 중 여수(523t)와 목포(262t) 다음으로 많은 발생량이다.
순천시는 급한 대로 올해 말까지 왕지매립장 늘려 사용 연한을 5년 7개월 더 늘릴 계획이다. 친환경 클린업환경센터 조성 사업이 여전히 초기 단계라, 급한 불 먼저 끄겠다는 시의 차선책이다.
문제는 클린업환경센터 조성 사업이 해묵은 현안이란 점이다. 사업 추진 3년이 지났지만 첫 삽을 뜰 시기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19로 늘어나고 있는 생활폐기물이 쓰레기 대란을 부추기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클린업환경센터 조성 사업은 2018년 7~8월 잇따라 열린 시민포럼과 100인 시민 토론회를 시작으로 9월 출범한 순천시 쓰레기문제해결 공론화위원회가 발표한 '순천시 쓰레기 문제 해결 정책 권고안'에 관련 내용이 포함되면서 공론화됐다. 순천에 SRF(고형폐기물연료) 생산시설은 있지만 정작 소각장이 없다는 등 이유로 소각장과 매립장, 자원재활용 시설을 갖춘 클린업환경센터가 대안으로 거론됐다.
같은 시기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던 SRF 생산시설인 순천자원순환센터가 적자 등 이유로 가동 중단 사태를 빚으면서 해당 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9년 7월부터 두 달 간 진행한 후보지 공모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단 1곳이 신청했는데 이마저도 해당 지역 주민들 간 갈등으로 중도 철회 사태를 맞았다. 300억원 규모 인센티브 지원이 무색해지면서 시는 그해 12월 법적 기구인 '순천시 폐기물처리시설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자체적으로 후보지 물색에 나섰다.
이렇게 출범한 입지선정위원회는 지난 9일 클린업환경센터 후보지로 압축된 4곳 중 1곳인 월등면 송치를 최적지로 선정·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2년간 진행한 입지후보지 타당성 용역, 입지 평가후보지 선정(1차 7곳·2차 4곳), 전략환경영향평가 용역, 입지후보지 환경예측·평가·저감방안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순위를 매겼다. 그 결과 1순위로 월등면 송치, 후순위로 서면 구상, 주암면 구산, 서면 건천이 최종 선정됐다.
클린업환경센터 조성 사업의 향방을 가를 민-관 협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는 1순위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입지타당성 조사 결과를 열람한 뒤 의견을 수렴하고, 공청회와 전략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입지결정고시를 올해 말까지 확정 짓겠다는 계획이다. 모든 절차가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선 시와 월등면 송치 주민들 간 협상이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클린업환경센터는 2025년 12월 운영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순천 최대 현안 사업이다. 하루 소각량 200t, 재활용량 60t, 매립용량 130만㎡ 규모의 친환경 종합폐기물처리시설로, 주민들이 우려하는 침출수 방지를 위해 지붕형 구조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비 1965억원 중 주민지원비는 595억원에 달한다. 주민 편익시설(233억원)과 폐기물수수료(152억원), 출연금(50억원), 지역개발비(40억원), 주민채용(115억원), 마을숙원사업비(5억원) 등 다양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음에도 주민들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순천시 관계자는 "주민들이 염려하는 타 지자체 이격거리, 기타 부지면적, 운반거리, 세대수, 진출입도로 등 부분을 최대한 고려해 1순위 후보지를 선정했다"면서 "올해 안에 입지결정고시를 마무리 짓고 내년부터는 기본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주민들과의 공감대 형성과 동의를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 "사용 기한 다시 넣어라" vs "의미 없다" 줄다리기
여수시는 만흥위생매립장 사용기한 연장 문제로 매립장 인근 주민들과 협상에 들어갔다. 당초 매립장 사용 종료 시점인 지난해 3월이 지난 지 18개월이 흘렀지만 양 측은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용기한을 협상안에 넣자고 주장하는 주민 측과 달리, 기한 설정 없이 매립장 포화 시 자동 종료를 원하는 시측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이 매립장 사용을 전면 중단하라는 본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건 진일보한 성과로 평가되지만, 애초부터 종료 시점이 정해져 있던 만큼 늑장 대응과 안일한 행정이 도마 위에 오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사용기한 협의를 위한 TF팀이 구성된 건 매립장 사용기한이 종료된 지 6개월 뒤다.
앞서 주민들은 생활폐기물 매립량이 해를 거듭할수록 감소세를 보여 매립장 사용기한이 무기한 연장될 것을 우려했다. 또한 재산권 침해 등 피해가 계속되고 있어 사용기한 연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여수지역 일평균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순천의 배에 가까운 523t(2019년 기준)이다. 이를 처리하는 시설은 2곳이 있다. 잔여 용량이 30% 남은 만흥위생매립장과 10% 수준인 월내위생매립장이다.
월내위생매립장이 2024년 포화 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만흥위생매립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1997년 매립을 시작한 만흥위생매립장은 매립용적 325만5천㎡ 중 98만㎡(30%)가 남은 상태다. 사용완료 예상 시기는 2037년이다.
과거 시와 주민들은 공문을 통해 만흥위생매립장 사용기한을 1997년부터 2020년 3월까지로 약속했다. 시는 그동안 매립 가스를 활용해 연간 1천890㎿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으며, 반입 수수료 10% 등을 주민들에게 주민지원기금(연간 2억여원)으로 지원해왔다.
시는 사용기한 종료 시점이 다가오자 2019년 6월 이후 주민들과 11차례 회의와 간담회, 28차례 개별 면담을 하는 등 여러 차례 협상을 시도했다. 종료를 하루 앞둔 지난해 3월30일에는 주민지원기금으로 4억원을 제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종료 당일에도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주민들로 인해 최종 협상이 결렬됐다. 앞으로 있을 협상에서는 사용기한 기재, 주민지원금 인상 폭 등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여수시는 현재 만흥위생매립장을 정상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매립장에 드나드는 폐기물 수집·운반 차량을 대상으로 폐기물 불법 반입 조사를 하고 있다.
여수시 관계자는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해 협상에 임할 것"이라면서 "만흥위생매립장이 갑자기 중단되면 쓰레기 대란을 초래할 수 있다. 잔여 용량이 여유가 있는 만큼 사용 기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충분한 경제적 보상, 민·관협상 실마리 될 것"
[조선대 이성기 명예교수 인터뷰]
님비현상 대표적 사례
공감대·신뢰 형성 중요
"쓰레기매립장은 님비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시설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우려나 혐오감을 경제적으로 충분히 보상해주는 방식으로 타협을 끌어내야 합니다."
조선대학교 환경공학과 이성기 명예교수는 쓰레기매립장 건립·운영과 관련한 민-관 갈등은 결국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제안이 협상 테이블에 올랐을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폐기물 처리 관련 자문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여러 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이같이 분석했다.
이 교수는 후보지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입지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순천시 클린업환경센터(종합폐기물처리시설)에 대해 "순천시는 최근 클린업환경센터가 들어설 1순위 후보지가 발표되면서, 행정력을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면서 "주민지원협의체 구성 등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기금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해 조속히 입지 선정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결국 신뢰를 확보하는 게 관건인데, 말뿐인 지원으로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 주민지원협의체는 주민이 직접 기금을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라 신뢰 확보에 효과가 있다"며 "클린업환경센터 쓰레기 반입료 중 일정 비율을 징수해서 기금으로 사용하면 된다. 또 주민지원협의체에는 전문가도 참여하게 돼 있는데, 이 분야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를 참여 시켜 주민과 지자체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전국적으로 순천시 클린업환경센터와 유사한 성공 사례를 찾아서 주민 대표들과 함께 선진지 견학을 가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클린업환경센터 주변 주민을 세대당 1명씩 순차적으로 '반입폐기물 감시요원'으로 임명해 3~6개월 정도 기간을 근무하게 하고 임금을 지불해 직접적으로 소득을 보전하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성이 있다. 감시요원으로 근무한 주민들을 통해 클린업환경센터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첨언했다.
순천시는 실제로 최종 후보지가 선정되면, 주민 편익시설, 출연금, 지역개발비, 주민채용, 마을숙원사업비 등 주민지원비에 약 6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 교수는 여수 만흥위생매립장 사용기한 연장을 두고 교착상태에 빠진 여수시와 만흥동 주민들 상황 역시 경제적 지원 폭이 관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만흥위생매립장도 주민 반발이 거센데,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기피시설이 주변에 있기 때문"이라면서 "여수의 경우 주민들이 기존에 받고 있던 경제적 보상보다 더 큰 제안이 있어야 적절한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여수시가 만흥위생매립장 사용기한이 종료하는 시점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주민들과의 충분한 대화 등이 부족했던 건 아쉬운 부분이다. 주민들의 님비현상을 당연하게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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