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마을 가꾸는 진정한 주민자치 실현이 가장 큰 성과

입력 2022.04.03. 17:20 선정태 기자
754개 마을 돌며 3년 여정 마친 '보성600' 사업
'주민·마을에 애착, 더 가꾸고파' 뿌듯
'한번으로 부족' 3년 내내 신청하기도
마을 활기·청결, 주민 건강 등 1석3조
복지·보건·문화 분야로의 확대 계획

"쓰레기 쌓였던 마을 공터를 내 손으로 직접 치우고, 꽃을 심고 벽화도 그려 놓으니 뿌듯합디다. 그래서 자꾸 신경이 쓰여 수시로 내다 보고 꽃에 물도 주고, 잡초도 뽑고 그래지더란 말이요. 사람들이랑 만나믄 할 이야기도 늘었지라. 작년에 해놓응께 좋아서 이장한테 올해도 신청하라고 안했으믄 어쩔뻔 했소."

며칠간의 꽃샘 추위에서 벗어나 따뜻한 햇볕이 비추던 지난 1일 오전 보성 득량면 한 마을 주민들이 길가에 꽃을 심고 있었다. 주민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70~80대였지만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웃으며 흥겹게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은 지난 2020년부터 진행했던 '보성600'사업이 3년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었다.

▲ 주민이 먼저 나서야 추진

'보성600'은 한마디로 마을의 쓰레기를 치우고 벽화를 그리거나 꽃을 심어 단장하는 마을가꾸기 사업이다.

보성군도 여느 농촌 마을과 마찬가지로 마을마다 사람이 줄어 집이 비게 되면 그 곳은 폐가가 되고 어느 순간부터 쓰레기가 쌓이며 마을은 황폐화됐다. 그동안 대부분의 지자체는 막대한 자금과 전문 인력을 투입해 쓰레기를 치웠지만, 그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공무원들이 나서 사업을 진행하고 주민들은 들러리에 불과해 큰 애착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번 심은 꽃이나 나무는 꾸준한 관리가 안돼 금방 시들어지고, 기껏 치운 마을 입구는 다시 지저분해졌다.

이런 현실을 파악한 보성군은 '주민들이 나서서 마을 가꾸는 사업'을 계획했다. 마을을 찾아 다니며 사업 취지를 설명하고 마을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 주민들이 먼저 제안해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계획부터 추진, 사후 관리까지 모두 주민들 스스로 진행해야 한다.

▲ '함께 하는' 공동체의 부활

보성군에 자연 마을이 600여개 있다는 점에 착안해 사업 이름을 '보성600'사업으로 지었다. 주민들이 모여 마을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 상의해 제출하니 마을마다 독특한 사업으로 진행됐다.

대표적으로, 보성읍의 쌍용마을은 둥글레와 어성초를 심었고, 벌교입의 수차마을은 대추나무를, 미력면의 도개마을은 녹차나무를 심었다. 복내면의 봉계마을은 히어리와 마가목을 심었다. 회천면의 우암마을은 '이왕 심는 나무, 돈이 되는 것으로 심자'며 소득작물인 금규화를 심었고, 득량면의 월평마을은 꽃이나 나무 대신 지역의 특징인 구들장을 활용한 공원을 조성했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면서 더 친해졌고, 함께 일하면서 40~50년 만에 마을 공동체 정신도 부활했다. 내가 고른 꽃과 나무를 직접 심다 보니 애정이 커져 자꾸 가꾸고 보살피게 됐다. 한 번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내년에, 또 그 다음해에도 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렇게 애초 1년에 200개 마을씩 3년 동안 600개 마을을 진행하려던 보성군에는 지난해와 올해 '또 하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하기도 할만큼 높은 인기였다.


▲ 많은 상 수상

'보성600'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 마을은 우리가 직접 가꾼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마을 공동체 정신을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자발적인 주민 참여가 가능해지면서 마을마다 독특한 가꾸기가 가능해졌고, 마을 주민이 먼저 나서서 지속적인 관리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보성군의 '저비용 고효율' 마을 가꾸기는 차츰 소문이 퍼졌다. 전남도도 '보성600'에 관심을 갖고 마을을 직접 방문하며 내용을 파악해 22개 시군에 '청정전남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확대했다.

상도 많이 받았다. 전남도의 전극행정 경진대회 우수상을 수상한데 이어 행정안전부로부터 지방재정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전남 22개 시군 중 유일했다. 지난해에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지역산업진흥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전국 유일의 수상이었다. 또 환경부로부터 녹색환경대상 종합대상을 수상했다.


▲ 브랜드화해 속편 준비 중

3년간의 '보성600' 사업이 주민들 사이에 속속 스며들어 각인됐다고 판단, '보성600' 명칭을 시리즈화 한 사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런 사업의 핵심 역시 '주민 스스로'다.

실제 지난해 말 주민들 집에 있던 영농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클린보성600'을 진행했다. '보성600' 시리즈의 두번째 격인 이 사업 역시 예상보다 많은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타 지역에 사는 가족과 친척, 지인들이 대형쓰레기를 몰래 버리러 올 정도로 입소문이 퍼진 것이다. 보성군은 늘어나는 사업비에 부랴부랴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보성군은 '보성600'을 통해 주민 스스로 마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가 충분하다고 판단, 복지와 문화, 환경 부분 '보성600'을 추진키로 했다.

김철우 보성군수는 "주민 스스로 자신이 사는 마을을 가꾸고, 마을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주민 자치의 첫 걸음이다"며 "많은 주민들이 '보성600'을 아끼고 사랑해준 만큼 동네의 어려운 사람을 주민을이 보살피고, 마을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스스로 나서는 복지와 환경 분야 '보성600'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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