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아닌 '동물 시설'…관리 사각
"안전사고 우려…역사관 거듭나길"

"저 건물이 1980년 5·18 훨씬 전부터 있었으니 50년은 더 됐을걸요. 계엄군들이 저기서 총 들고 쫙 깔려있던 게 기억에 선한데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무너지더니 지붕까지 주저앉았어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주둔지로 이용했던 광주 동구 주남마을 '목장 건물'이 사적지로 활용되기는커녕 안전관리마저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26일 광주 동구에 따르면 주남마을 위령비 인근 옛 목장 건물(동구 월남동 144번지 일원)은 빈집 관리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관리 사각지대에 놓였다. 이에 따라 2013년 이후 10년간 단 한 차례도 건물 소유주를 대상으로 보수 요청·이행강제금 부과 등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은 물론 사실상 방치되면서 흉물로 전락했다.
이 목장 건물 일대는 1980년 5월 당시 광주와 화순을 오가는 길목을 차단하려는 계엄군 수십 명이 주둔하던 장소다. 이 군인들은 80년 5월 23일 화순을 향하는 미니버스에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 17명을 사살하는 등 수 차례의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당초 젖소 사육 목장으로 이용했던 이 건물은 수십 년 동안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 반쯤 무너져 내린 상태다. 한쪽 벽면은 완전히 부서져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고, 건물 인근 바닥에는 슬레이트와 목재 파편이 흩어져 있다.
동구는 현재 지역 내 빈집 404채를 확인, 관리명단에 포함해 정비사업을 펼치고 있으나 이 목장 건물은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애초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은 1년 이상 사용되지 않은 주택(단독주택, 다세대주택·연립주택 등)을 자치구 차원에서 정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목장 건물은 주택이 아닌 '동·식물 관련 시설'로 등록돼 있어 '정비 사각지대'에 해당하는 셈이다.
주민들은 목장 건물이 붕괴하면서 안전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역사적 현장인 건물이 수십 년째 방치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한다.
마을 주민 김모(86)씨는 "5·18 당시 저 건물에 군인들 수십 명이 주둔해 마을을 감시했던 게 생생히 기억나는데, 어느덧 건물이 비워진 채로 수십 년이 흘렀다"고 회상했다.
다른 주민 이모 씨는 "5년쯤 전부터 특히 건물이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는데, 위험하고 흉물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걱정이다"며 "주민들이 건물을 직접 꾸미고 리모델링해 마을 역사관으로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에 대해 동구 건축과 관계자는 "건물이 법적으로 '빈집'에 해당하지 않는 데다가 주위 민원이 접수되지 않아 별도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해당 건물·부지 소유주를 대상으로 한 안전조치 요청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동구 인문도시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주남마을의 도로를 넓히는 취지의 정비사업을 구상 중이다"며 "정비 사업을 통해 목장 건물을 함께 보수·활용할 수 있도록 살피겠다"고 했다.
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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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 주남마을, 민주·평화 기원할 열번째 마을축제 16일 오전 광주 동구 월남동 주남마을에서 '제10회 기역이 니은이 축제' 참가자들이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노란 풍선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한 민간인 집단 학살이 자행됐던 주남마을에서 오월영령의 넋을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축제가 열렸다.'기역이 니은이 축제추진위원회'는 16일 오전 광주 동구 월남동 주남마을 앞에서 '제10회 기역이 니은이 축제'를 열었다. 임택 동구청장과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을 비롯해 마을 주민 20여명과 자원봉사자 30여명이 축제에 참여했다.이날 축제 참가자들은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노란 풍선을 하나씩 들고 마을 입구에서부터 희생자 위령비까지 518m를 행진했다. 위령비 앞에서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낸 후 살풀이춤 공연, 헌화, 민주·인권·평화의 시낭송, 붓글씨 작성 순으로 행사를 진행했다.'기역이 니은이'란 주남마을의 옛 지명인 '지한면 녹두밭 웃머리'를 기억하자는 의미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2014년부터 축제를 꾸려왔다.주남마을은 1980년 5월 당시 광주와 화순을 오가는 길목을 차단하려는 계엄군들의 주둔지로 이용된 곳이다. 1980년 5월23일에는 이곳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화순으로 향하던 미니버스에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 민간인 17명을 사살하기도 했다.많은 마을 주민들은 살얼음 같던 1980년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주민 최양섭(84)씨는 "6·25전쟁 때도 1980년 5월처럼 공포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며 "사람들이 행방불명되는가 하면 전쟁터를 연상시키는 총소리와 헬기소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려 퍼졌다"고 회상했다.16일 오전 광주 동구 월남동 주남마을에서 '제10회 기역이 니은이 축제' 참가자들이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노란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내고 있다.마을 주민들은 5·18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축제를 열고 있다. 그러면서 주민들의 아픈 상처를 희망으로 승화해 '평화로운 마을을 만들어가자'는 각오를 매년 다지고 있다.김재림 기역이 니은이 축제추진위원은 "5·18은 아픈 역사지만, 아픔만으로 기억되서는 안 된다"며 "당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분들의 정신을 이어 더 따뜻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이철성 기역이 니은이 축제추진위원장은 "많은 주민분들과 봉사자분들이 참여해주신 덕분에 트라우마를 축제로 승화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주남마을의 미래를 꿈꿔 나갈 수 있는 뜻깊은 행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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