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살 주범 할아버지 전두환 재차 강조
5·18민주묘지 참배…겉옷으로 묘비 닦기도
"저희 가족이 5·18 앞에 큰 죄를 지어 사과드립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다시는 있어서 안될 대학살 5·18의 주범은 할아버지 전두환입니다."
5·18민주화운동 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고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27)씨가 31일 5·18 유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그가 전두환과 그 일가를 대신해 말문을 열고 사죄하자 5·18 피해자와 유족들은 전씨를 위로하며 화해의 뜻을 밝혔다. 일부 유족은 43년이 지난 후에야 학살자 후손의 사죄를 듣고 전씨를 끌어 안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사망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전두환과 달리 후손이 5·18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우원씨의 고백과 사죄 행보가 43년 전 '5월 광주' 진실규명에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이를 계기로 잔존 신군부 세력의 양심고백과 사과로 이어져 5·18 진상규명에 탄력이 붙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전우원씨는 이날 오전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1층 리셉션홀에서 열린 '5·18유족·피해자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전씨는 유가족에게 큰절을 하며 "더 일찍 사죄 말씀을 드리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하다. 5·18로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죄한다"고 울먹였다. 전씨의 큰절을 받은 유가족들은 한 분 한 분 다가가 손을 맞잡거나 전씨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그는 "제 할아버지는 5·18 당시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이를 인정하고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며 "군부독재 속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맞섰던 광주시민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할아버지 전두환은 민주주의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고 역으로 후퇴시켰다"면서 " 5·18은 다시는 있어서 안되는 대학살이라고 생각한다. 광주학살의 주범은 전두환이다"고 했다.
전씨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저 또한 추악한 죄인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들 사이에서 죄를 짓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되려 나에게 피해가 올까 항상 숨어 살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사과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께서도 자랑스럽다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줬다"며 "이기적인 마음을 전부 내려놓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5·18 유가족과 피해자 모두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드린다"고 다시한번 5·18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죄했다.
유가족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문재학 열사 어머니 김길자 여사는 "(전우원씨가) 큰 용기를 내 광주를 찾아와 줘서 고맙다. 그동안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지,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고통이 컸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프다"며 "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부터 5·18 진상규명을 위해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심정으로 차분하게 화해의 길로 나아가자"고 답했다.
5·18기념공원 추모승화공간으로 이동해 4천296명의 유공자 명단을 본 전우원씨는 "유공자 전체의 이름이 세상에 공개돼있는데 왜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두 눈으로 유공자 전체의 이름을 보니 다시 한번 부끄럽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전우원씨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로 이동해 최초 희생자인 김경철 열사와 가장 어린 희생자인 전재수씨, 행방불명자, 무명열사 묘소 등을 차례로 참배했다.
전씨는 참배 도중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으며, 묘비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코드로 함참 동안 묘비를 닦은 뒤 고개를 숙이고 묘비 옆에 있던 고인의 영정사진을 닦기도 했다.
전씨는 방명록에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라고 적었다.
전씨가 5·18 희생자 묘비에 추모하며 묘비를 닦을 동안 곁에 있던 시민들은 숨죽여 그를 바라보기도 했고 눈물 짓는 이들도 있었다.
전우원씨는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으로 이동, '옛 전남도청(시민군 최후 항전지) 복원' 지킴이인 오월어머니 회원들을 찾아 용서를 빌었다. 오월어머니들은 80년 5월 광주에서 가족들이 계엄군에 희생당한 어머니들이다.
전씨는 도착 직후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절한 뒤 어머니들에게 다가가 차례로 인사했다.
어머니들은 할아버지 전두환에 대한 원망을 뒤로 한 채 전우원씨의 손을 맞잡고 "열심히 진상규명 해가지고 광주의 한을 풀어달라"고 했다.
한편, 전우원씨는 지난 13일부터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전두환 일가의 비자금 의혹과 지인들의 범죄 의혹 등을 폭로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이날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전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강승희기자
- 갈수록 걱정되는 5·18 조사위 종합보고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등이 지난 25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5·18조사위 보고서 평가 간담회를 열고 5·18조사위가 내놓은 직권조사 과제별 조사결과 보고서를 평가하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작성 중인 종합보고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잘못 알려진 5·18 역사를 바로잡아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는 수단이 돼야 할 보고서에 5·18의 역사적 배경이나 성격 등이 일절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27일 5·18조사위에 따르면 5·18조사위는 오는 6월26일까지 대정부 권고안이 담긴 종합보고서를 발간해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한다.5·18 진상규명 특별법 제34조에 '활동이 종료될 경우 6개월 이내에 위원회의 활동 전체를 내용으로 하는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서다.5·18조사위는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를 마친 뒤 종합보고서와 함께 진상규명 의결서, 백서를 공개할 예정이다.또 지난 4년간의 공식 조사 활동 기간 확보한 진술과 수집한 사진·영상 등 모든 자료는 국회 동의를 얻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할 계획이다.그러나 작성 완료 기간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종합보고서의 구성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전체 1천400쪽 분량의 종합보고서는 제1장 총론(200쪽), 제2장 계엄군의 진압작전(200쪽), 제3장 민간인 희생(350쪽), 제4장 인권탄압사건(300쪽), 제5장 북한개입설(100쪽), 제6장 진상규명 불능 과제(250쪽) 순으로 구성됐다.하지만 보고서 어디에도 5·18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성격, 진상규명을 시작하게 된 이유, 진상규명이 갖는 의의에 대한 서술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반면 국내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중 하나인 부마민주항쟁의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유신체제에 대항해 발생한 민주화운동',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의식 확산' 등 항쟁의 역사적 배경과 '유신체제의 종말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의의가 자세히 담겨있다.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도 8·15 광복 전후 제주도의 상황이나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3·1사건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이와 관련 정다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제1장 총론에 위원회의 설립과정, 조직·예산·연도별 조사 활동, 대정부 권고안이 담기는 데 사실 설립과정이나 조사 활동은 백서에나 들어갈 내용이다"며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5·18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성격, 5·18이 갖는 의의를 종합보고서에 싣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이어 "5·18조사위의 종합보고서가 새로운 왜곡·폄훼의 근거가 될 것 같아 심각하게 걱정된다"며 "지금이라도 종합보고서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초안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 · 오월지키기대책위 "5·18조사위, 조사 결과보고서 폐기해야"
- · 박형대 전남도의원, 5·18조사위 보고서 관련 간담회 개최
- · 광주공동체 "5·18조사위 보고서는 왜곡·폄훼 빌미 투성"
- · 광주 찾은 이재명 "5·18 부정하는 반역집단 심판해야"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