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추모공간에 4천여 유공자 명시
국가폭력 희생자라는 점 의도적 무시
"혐오, 왜곡, 폄훼 세력에 편승" 비판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발언에 광주와 대구의 화합을 다지는 '달빛동맹'의 가치까지 훼손되고 있다. '국가 폭력'에 희생자를 공개하라는 주장이 보편성에 어긋나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여전히 5·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극우적 인사와 이에 동조하는 이들의 가해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정치적 행위라는 비판이다. "홍준표의 한계"라는 지역 내 보수성향 인사의 뼈 있는 지적까지 나왔다.
홍 시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지난 25일 광주를 찾아 강기정 광주시장과 손을 맞잡으며 '달빛동맹' 의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홍 시장은 주요 일정이었던 국립5·18민주묘지 합동 참배를 취소한 데 이어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기로 한 특별강연까지도 당일 갑작스럽게 취소했다. 5·18 단체들이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한 홍 시장의 발언에 반발하면서 물리력 행사 가능성까지도 예고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홍 시장은 지역방송인 광주KBC에 출연해 거듭 5·18 유공자 명단 공개 당위성을 설파했다. 홍 시장은 "5·18은 4·19와 더불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고 거기에 항거하셨던 분들은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자고 공로자들"이라며 "국가의 공로자들인데 그분들의 명단을 왜 익명으로 처리를 해야하는지 그게 이해가 안 된다"고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명단을 공개하라는 홍 시장의 주장은 '사실 관계'조차 파악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를 포함한 오월단체들은 지난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5·18 기념공원에 조성된 추모승화공간에 4천296명의 유공자 명단이 공개돼 있다"며 "홍 시장은 추모공간을 직접 방문해 유공자 명단을 확인하고 사과하라"고 비판했다.
홍 시장이 단순히 이름을 공개하라는 주장이라면 허위 주장에 해당될 수 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주장은 5·18을 혐오하고,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특정 사람들의 공격 수단이 돼 있다"면서 "홍 시장의 주장은 그런 맥락에 편승하면서 은근히 5·18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점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홍 시장의 이 같은 주장은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를 두고 "2차 가해다"라고 주장한 것과도 배치된다. 자당이 국가 행정의 부재에 희생된 이들의 이름조차도 공개하는 데 반대하는데 '국가 폭력' 희생자를 공개해야 한다는 홍 시장의 입장은 앞뒤가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역에서 합리적 보수 성향 인사로 분류되는 배훈천 광주시민회의 대표는 "(유공자) 명단 공개를 인권과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접근하지 못하는 홍준표의 한계"라며 "10·29참사(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도 개인의 판단과 자유이듯 5·18 유공자 명단 공개도 개인의 판단과 자유이지 국가나 집단이 공개하고 말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전히 5·18민주화운동이 극우적 성향을 가진 이들로부터 집단적 왜곡과 혐오, 증오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폭력 희생자 명단 공개 주장은 위험한 발언이라는 주장이 강하다.
정다은 광주시의원은 "5·18에 대한 진상규명이 다 이뤄지지도, 사회적 평가도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폭력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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