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속 한말 호남 의병

보성 한말 의병장 안규홍…봉덕면엔 그를 도운 '빅3' 있었다

입력 2022.08.24. 18:53 김양희 기자
[판결문 속 한말 호남 의병] ⑥보성 빛낸 손덕오·염인서·정기찬<상>
보성 의병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 안규홍이 거병한 봉덕면은 지금의 문덕면이다. 이곳  출신 손덕오·염인서·정기찬은 안규홍을 적극 도와 공을 세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무궁화가 활짝 핀 문덕면 서재필기념공원. 무등일보DB

[판결문 속 한말 호남 의병] ⑥보성 빛낸 손덕오·염인서·정기찬<상>

최근 "'광복절 때 윤 대통령 옆 누구?'에서 드러난 중대 사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지난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에 대통령 옆에 서 있는 여성이 누구일까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독립운동가 OOO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독립운동가의 이력이 국가보훈처에 있는 공훈과는 달리 독립운동하다 일본군에 귀순한 전력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의 서훈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한 인물을 국가보훈처에서는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대통령 옆에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배치했다는 것은 안일한 행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것에 반발하여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사설을 써 우리의 심금을 울린 장지연을 잘 알고 있다. "남의 노예가 된 우리 2천만 동포여!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기자 이래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돌연 멸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도다. 원통하도다. 동포여! 동포여!" 사설의 일부이다. '2천만 동포여,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라는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심장이 멈추려 한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가 말년에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글을 싣고, 그가 운영한 신문에 친일 관련 글이 게재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친일' 논란에 빠져 서훈이 박탈되었다.

5·18 관련 유공자 선정에도 일부 석연치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명단을 전부 공개하자는 얘기가 수년 전부터 나오고 있다. 독립유공자 서훈을 보면 최근에 전라남도가 주관하여 80여 명의 서훈 신청을 한 예가 있지만, 그동안의 대부분 서훈은 후손들이 신청하였다. 그렇다 보니 독립운동가의 공훈 사실보다 후손의 능력에 따라 공적이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서훈 문제를 이제는 더 개인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는 것이 옳다. 이러한 점에서 전라남도가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공훈대상자를 발굴하여 서훈신청을 한 것은 매우 의미 있어 보인다. 나아가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있는 공적들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확인하여 보면 거의 30-40%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다름이 나타나고 있다. 전수조사가 필요한 까닭이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 역사의 교훈이다.

안규홍을 거괴라 지칭한 자료

'3성(곡성,보성,장성) 3평(남평, 함평, 창평)'은 한말 의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곳으로 이 지역이 강건한 정체성을 엿보게 한다. 일제는 의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이들 지역을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남평군을 나주군에, 창평군을 담양군에 통폐합하는 등 군세를 꺾으려 하였다. 아울러 이들 지역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고을이 보성이다. 보성은 한말 의병전쟁이 치열하였다. 보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의병부대는 인근 순천, 고흥, 화순, 남평 등 여러 지역에까지 진출하여 의병전쟁의 열기를 확산시켰다. 보성의병을 이끈 대표 인물이 안규홍이라고 알려져 있다.

안규홍에 대해 '전남폭도사'에는, "거괴(巨魁) 안규홍, 보성군 봉덕면(현, 문덕면) 법화촌 31세, 융희 2년(1908년) 2년 4월 순천 부근을 점거한 강용언의 부장(副將)으로 있다가 동년 5월 강용언을 원망하여 그를 죽이고 스스로 수괴가 되어 보성군을 중심으로 각 군을 휘젓고 다녔다. 그 세력이 한창일 때는 부하가 2백 명을 넘었고, 전해산·심남일과 나란히 폭도 거괴 중 첫째가는 인물이다. 여러 번 관헌과 충돌할 때마다 교묘하게 체포를 면했고, 악랄한 약탈을 자행했다.(하략)"라고 하여 그가 전해산, 심남일과 함께 대표적인 의병이라고 일제는 평가하고 있다.

원래 보성읍내 택촌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안규홍은 모친을 따라 봉덕면 법화마을로 이사하였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크게 일어나던 1908년 1월 법화마을 가까이에 있는 동소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미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순천에서 활동하고 있던 관동의병 출신 강용언의 휘하 부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곧 강용언과 부대 지휘권 및 운영방법을 둘러싼 갈등이 생겨 그를 죽이고 보성, 순천, 고흥 일대를 휘젓고 다니며 그 지역의 의병부대와 연합작전을 전개하였다.

안규홍이 의병부대를 결성할 무렵 지역 유지들의 도움을 받았다. 지역 자산가들은 의병을 빙자한 도적들이 횡행하고 있을 때 일부 유지들은 그들의 재산을 지키려고 이른바 자위단을 조직하였다. 안규홍도 이 자위단에 들어갔다. 안규홍이 어느 양반 지주 집에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안규홍의 초기 부대 결성과 관련하여 참고되는 얘기가 있다. 곧 1907년 말 보성군 백야면(현 겸백면) 입석동(현 석호리 선돌마을)에 사는 정태화가 일본군 토벌 부대의 이동로를 확보하고자 하는 도로 건설을 감독하는 일본군을 죽였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의병부대를 조직하려 하였다. 1908년 정월이었다. 하지만 태화를 체포하려는 일본군이 포위망이 좁혀오자 그는 몸을 숨겼고, 태화의 부친은 안규홍을 전면에 내세워 의병부대의 조직을 서둘렀다고 한다. 이 얘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안규홍이 담살이 출신임에도 초기에 부대 결성이 어렵지 않게 이루어진 까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교수형에 처한다는 정기찬 판결문

안규홍이 의병부대를 결성하고 활동하는 데는 같은 고향 출신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지역적으로 보면 당시 지명으로 법화촌과 백야면 입석동 일대의 장년층들이 많이 참여하였음이 확인된다, 이들의 빛나는 공적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이들의 재판을 다룬 판결문이 당시의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손덕오(44세, 봉덕면 마치동), 염인서(48세, 봉덕면 내동), 정기찬(31세, 봉덕면 마치동) 등에 관한 판결문이다. 모두 교수형에 처해졌다.

"제1. 피고 3명은 융희 2년 음력 정월 무렵, 폭도 수괴 안계홍(安桂洪, 안규홍과 같음)이가 다중을 모아 폭동을 일으키는 정을 알면서 그의 부하로 투입하여 손덕오는 도포(都砲), 좌우포장(左右砲장), 좌우익장(左右翼장)에, 염인서는 좌우포장, 좌우익장에, 정기찬은 포군습장, 기군장(起軍장)이라는 명목의 임무를 맡고 안계홍 및 그 도당과 함께 총을 휴대하고 동 3년 8월경(음 7월경)까지 의사를 계속하여 전라남도 보성·순천·동복·장흥 등 각 지역을 휘젓고 다니며 수괴 안계홍의 폭동행위를 방조하였고,"

이들이 의병부대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곧 안규홍 의병부대를 같은 마을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었음을 판결문은 말해주고 있다. 이들은 당시 나이가 40대임에도 불구하고 의병에 참여하였다. 젊은 혈기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의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이들을 전장으로 불러냈다. 이들이 중심이 된 보성의병이 순천, 동복, 장흥까지 나아가 활동하였음을 알려준다. 판결문은 계속되고 있다.

"제2. 피고 손덕오·염인서는 동년 4월 6일경(음력 3월 6일경)에 위 수괴 안계홍이가 다른 폭도 수괴 강사문(姜士文 :일명 龍彦)은 양면에게서 재물을 겁취한 자라 하여 동인을 모살하려는 정을 알면서 그 살해를 용이케 하기 위해서 안계홍의 부하 30여 명과 함께 동도 순천군 문전면 고부기(古府基) 산중에서 강사문을 포박하여 이를 조력하고 안계홍은 위 조력에 의하여 동인을 총살하였고,"

위의 이어진 판결문에서 관동의병 출신 강사문이 재물을 겁탈하는 것에 반발하여 죽였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는 부대 운영 및 외지 출신인 관동의병과 토착의병 사이의 지휘권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세력 싸움에서 안규홍이 이길 수 있었던 데는 법화동, 입석동 등 인접한 지역 출신 의병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가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박해현 시민전문기자

시리즈⑦<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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