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뒷문 뛰쳐나올때 참상 그리자 맘먹어
서양화 택했다가 기록화 맞게 전공도 바꿔
'윤 열사 일대기 그림'은 숙원이자 숙명"
2년 작업 120호 9점, 500호 3점 전시
500호의 커다란 화면은 수묵의 흑빛으로 가득하고 그 가운데에는 결연함이 보이는 윤상원 열사의 뒷모습이 보인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까지 가지게 됐지만 시대의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담아낸 작품이다. '5·18 시민군 대변인'으로만 알려진 윤 열사의 또다른 모습이다.
윤상원 열사의 일대기를 담아낸 전시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 6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윤상원 열사의 생가가 있는 광주 광산구에서 주관하고 하성흡 작가가 2년 동안 작업해 나온 결과물이다.
하 작가는 이번 일대기 그림 그리기 사업에 공모를 통해 참여하게 됐지만 '윤상원 열사 일대기 그림'은 그에게 하나의 숙원이었다. 1980년 5월 도청 뒷문으로 뛰쳐나오며 '훗날 이 실상을 그림에 담아야한다'고 되뇌였던 그. 이후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수원능행도'를 보고선 역사기록화에 한국화가 최적이라 판단, 전공까지 바꾸며 오월 기록화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은 그다. 1993년엔 전남대부터 옛 전남도청 앞까지의 박승희 장례행렬을 담아낸 '박승희, 장례행렬도'를 그리며 80년 5월 기록에 대한 가능성과 자신감도 찾았다. 막연했던 그의 목표는 2016년께 구체적 계획으로 드러난다. 윤상원 열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80년 5월 광주를 들여자보자는.
하 작가는 "딱 쉰이 된 해였는데 더 이상 늦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윤상원 열사의 삶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됐다. 사건의 나열보다 인물로 그날을 들여다보자는 계획을 세웠다"며 "이 분 저 분 만나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들이 분실되는 등 생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낙심하다가 발포 장면이라도 먼저 그려놔야겠다 생각해 2017년 발포 그림을 먼저 전시로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 전시를 계기로 하 작가는 광산구청과 2019년 윤상원 열사 일대기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하 작가는 이번 일대기 작업을 통해 흔히 5·18 시민군 대변인으로만 알려져있는 윤상원 열사의 혁명가적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사회적 모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문제점을 개선하고 싶어했던 그의 삶을 말이다.
그는 "윤상원 열사는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대학까지 마치고 은행에 입사해 탄탄대로의, 성공한 삶을 보장받는 길을 걷게 됐다"며 "그런데도 그런 것들을 다 내려놓고 가난한 노동자의 삶으로 직접 뛰어들어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했다. 그런 결단이 쉽지 않았을텐데 이 시대의 대단한 혁명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이런 지점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2년 여간 그는 윤 열사 연구는 물론, 이를 바탕으로 구상한 작품 등을 공식적 자리로는 세 차례에 걸쳐 윤 열사와 가장 가까운 이들의 피드백을 받는 등의 과정을 가졌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120호 9점과 500호 대작 3점. 여기에 그간 틈틈히 그려온 80년 5월 광주의 풍경과 윤상원 열사의 초상화 등 100여점의 소품까지 더해졌다.
작가는 이번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많은 이들의 도움 덕이라 강조한다. 윤상원 열사의 일대기를 그림에 담아내려 의지를 보여준 광산구나 윤 열사에 대한 생생하고 많은 이야기로 여러 피드백을 준 윤상원기념사업회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돌아봤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에 함께 선보이고 있는 '아름다운 청년 윤상원'에 대해 주목해주길 바랐다. 김광례 작가가 제작한 윤상원 열사 흉상이다.
하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윤상원 열사의 얼굴이었다. 기록화이기 때문에 얼굴이나 표정이 최대한 사실적이었으면 했는데 참고할만한 사진 자료가 너무 적어 애를 먹었다. 작품마다 각기 다른 각도의 얼굴을 그려야하는데 이것이 안돼 처음에 정말 스트레스가 컸다"며 "그래서 김광례 작가에게 윤 열사의 흉상을 부탁했다. 처음에 부담을 느낀 김 작가가 거절을 하는데도 '제발 해달라' 매달렸고 흉상을 만들어줬다. 윤상원 열사를 가까이서 잘 알고 지내던 분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실제 모습과 닮게 잘 나왔다. 그 덕에 흉상을 이렇게 돌려보고 저렇게 돌려보며 그림에 적용할 수 있었다. 이번 작업에 큰 도움이 된 만큼 이 흉상 또한 많은 분들이 눈여겨봐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작품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시민들을 만난 후 수정 작업 등을 거쳐 광산구 신룡동 윤상원 열사 생가 인근에 마련되는 기념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전시는 13일까지.
김혜진기자 hj@srb.co.kr
- 산에 안겨 강에 기대어 이어 온 우리네 삶 오상조 작 '영산강' 예로부터 산과 강은 아주 좋은 회화 소재였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은 산과 강을 애호하며 화폭에 담아 왔다. 왜일까. 산과 강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 지역 만의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을 넘어 산과 강은 이들의 넉넉한 품에 안긴 민중의 정신을 이루는 뿌리다. 우리는 무등산과 영산강의 품에 안겨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이같은 일상이 너무나도 당연해 어미와 같은 무등산과 영산강의 소중함을 잊고 있지는 않나. 이같은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자리가 마련된다.광주시립미술관이 '무등에서 영산으로'전을 지난 20일부터 5월 19일까지 본관 1, 2실에서 진행한다.이번 전시는 지역 공립미술관으로서 우리 지역의 미적 가치와 무등이 주는 인문 사상, 영산강이 주는 미래에 대해 조망하는 자리다.우리 가까이에 있어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그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무등산과 영산강의 아름다움과 가치, 풍경, 삶, 문화, 역사를 회화, 사진, 설치, 아카이브 등에서 찾아본다.배동신 작 '무등산'전시는 소장작품을 통한 광주인의 삶과 멋,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시작해 무등산을 소재로 한 전통적 회화와 현대의 예술인 사진을 통해 무등산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기상을 보여준다. 대형 사진 작품은 점으로 우주와 같은 무등산을 그린 회화작품과 어우러져 무등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색다르게 선사한다. 영산강을 소재로 한 대형 벽면 설치 작품은 무등산과 영산강은 하나로 연결돼 있으며 영산강이 어머니의 강인 이유를 눈으로 확인하게 해준다.계단을 지나서는 특별 섹션이 이어진다. 시립미술관 순수 소장품 중 1946년부터 1999년까지 그려진 무등산 그림 8점을 한 번에 전시해 20세기 화가들이 무등산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김형수, 양수아, 배동신, 임직순, 김영태, 박상섭 등 20세기의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광주미술사적, 조형적으로 무등산을 살필 수 있다.정송규 작 '무등을 바라보다'아카이브 자료도 풍성하다. 무등산과 영산강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을 배치하고 무등정신을 문화적, 사상적, 예술적으로 공부하고 체화해 새로운 무등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무등공부방의 미술작품과 활동자료 등 아카이브 자료를 선보인다.사진의 기록성을 중시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꾸려진 5명의 영산강 사진그룹은 3년 간 계절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영산강의 시원지인 담양에서부터 목포 하구언까지 136.66㎞를 답사하며 찍은 사진도 만날 수 있다. 영산강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더불어 강가를 따라 자리한 역사유적, 삶의 모습 등이 담겼다. 영산강에 대한 최초의 대형 프로젝트로 영산강의 모든 것이 오롯이 담겨 의미를 더한다.조진호 작 '소쇄원'김준기 시립미술관 관장은 "무등산과 영산강을 한 번에 다룬 최초의 대형 전시로 지역민 마음의 고향인 무등산과 영산강에 대한 위로와 더 큰 도약을 꿈꾸는 자리다"며 "이번 전시가 무등산과 영산강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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