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3월의 목련길

@주종대 밝은안과21병원 원장 입력 2022.03.31. 16:22

임인년의 3월은 날씨가 춥고 중순 이후부터 비가 오는 날이 잦았다. 나는 매일 출퇴근길에 길가의 줄줄이 선 나무들에게서 언제 푸른 빛깔이 올라오는지, 형형색색의 꽃망울이 언제 터져 나오는지를 관찰했다.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저 나무처럼 나도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렸다.

3월 시작 무렵부터 집 주변 공원을 거닐면서 바싹 말라있는 나뭇가지를 만져보고 열매를 맺었는지 초목들을 살펴봤다. 그러던 중 3월 중순부터 가볍고 촉촉한 봄비가 목마른 대지를 적시고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었다. 그러자 매화를 선두로 동시다발적으로 노란 개나리, 빛깔 고운 산수유, 하얀 목련까지 이곳저곳에서 피어나 완연한 봄이 왔음을 알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계절 중에 봄을 가장 좋아한다. 길고 긴 겨울은 나무가 말라있어서 삭막하고 날씨는 차디찬 바람과 눈 때문에 흐릿하고 몹시 춥다. 사람들의 옷 색깔도 유독 검정, 회색만 입고 다녀서 그런지 겨울은 항상 무채색으로 물들어있다. 또한 겨울은 낮이 짧기 때문에 햇빛을 보는 시간보다 밤을 보내는 시간이 길어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봄이 왔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고 삶의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꽃을 보자 나는 다시 살아가는 기쁨에 휘파람이 저절로 나왔다. 파릇파릇 싹트는 봄기운에 몸이 근질근질해져 주말 오후에 사진기와 물통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집 건너편에 있는 중외공원이었다. 잘 보존된 수목들과 낮은 높이의 산, 그리고 광주시립미술관, 문화예술회관, 비엔날레 전시관이 함께 있어 최고의 자연공원 지역이다.

바로 길을 나서자 예년보다 늦게 피어난 개나리를 만났다. 올망졸망 피어난 개나리는 지난 며칠간의 추위로 인해 개화시기를 못 맞춰서 어정쩡하게 피다가 멈춰버렸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자 높고 길게 솟아오른 나뭇가지에 하얀 순백색의 목련이 만개하고 있었다. 매끄러운 꽃잎에서는 고귀함과 도도함이 묻어 나왔고 바람 따라 실려 오는 은은한 목련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목련은 마당이 있는 집, 아파트, 학교, 공원 등에서 주로 심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 목련에 대한 추억은 하나씩 있다. 학생들은 3월에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 후에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교정에 핀 하얀 목련을 봤던 추억이 있다.

그때 음악 선생님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피아노를 직접 치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우리에게 불러주셨고 혈기 왕성한 친구들의 야수성을 음악적 감성으로 순화시켰다. 하얀 목련 꽃봉오리가 연달아 피어나고 후드득 꽃잎이 떨어지는 교정에서 빡빡 머리의 사내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던 기억들이 지금과 오버랩 된다.

그 뒤로 10여 년 후, 고향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전공의로 의국 생활을 하던 어느 봄날이 생각난다. 일과를 마치고 따사한 봄날의 공기와 환한 달빛에 취해서 병원 근처 동네 골목을 이곳저곳 정처 없이 배회했다.

마침 골목 사이로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졌다. 나는 음악 소리를 따라 걸었고 높지 않은 담이 있는 2층 집에서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집을 둘러싼 담벼락 위로 가지를 곧게 내어 뻗은 회백색의 목련이 활짝 피어있었다. 목련 아래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눈과 귀 그리고 코로 봄의 정취를 느꼈다.

지금은 그때보다 20년이 훌쩍 지났고 그동안 수십 번의 봄을 맞이했지만 그때마다 내 모습은 다 달랐다.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화려하지 않지만 꾸밈없이 단단하게 핀 저 목련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 모습이, 내 시간이 화양연화 아닌지 속으로 되뇌며 나는 또 다시 봄을 즐겨본다. 주종대 밝은안과21병원 원장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