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들은 느닷 없다' 출간
창립 10년 맞은 소규모 창작공동체
단시조에 각자 개성 담아 슬픔 표현
초·중·종장 3장 구성 생각 느낌 담아
창작공동체 '광주문학아카데미'는 지역 등단 작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소규모 문학모임으로 창립 10년을 넘어섰다.
여기에는 고성만·김강호·김화정·박정민·박정호·백애송·염창권·이송희·이토록·임성규·정혜숙·최양숙 시인 등 12명 회원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시와 아동문학, 펼온 등 다양한 장르 작가들이 한데 모여 활동을 펼쳤고 합평회 등을 통해 각자 독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새로운 안목으로 창작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광주문학 아카데미' 10명 회원들의 작품 성과를 한데 모아 묶은 두번째 공동 작품집 '모든 날들은 느닷 없다'(다인숲刊)가 출간됐다.
이번 작품집에는 고성만, 김강호, 김화정, 박정호, 이송희, 이토록, 임성규, 염창권, 정혜숙, 최양숙 시인의 시조 각 7편과 디카시 각 1편씩을 담았다. 그동안 진행해 온 '짧은시(단시조)' 쓰기를 통해 SNS시대의 변화된 문학 양식에 부응한다는 취지다.
이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가 만나 화음을 만들어내듯 각기 다른 개성의 문장들로 행간의 의미를 새기며 참 많이 아프고 슬픈 날들을 그려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각종 재난과 10·29 이태원 참사 등으로 소중한 이웃들과 이별하고 그 슬픔을 가슴에 품었다. 온갖 재난으로 불편해진 마음을 공유하며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고자 뜻을 새겼다.
작품집의 큰 얼개는 단시조로 채워졌다. 짧고 긴 여운을 주는 글이 이 시대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고 있다는 판단 아래 단순히 짧은 시보다는 특수성을 갖는 시조를 사진과 함께 텍스트 공유를 통해 시조의 대중화는 물론 현대시조 창작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바람을 담았다는 점에서 출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45자 내외로 이루어진 단시조는 3장 6구의 간결한 시형이다. '시의성'을 갖는 짧은 시형으로서 단시조는 140자로 쓰는 트위터와 결합하기에도 적절한 장르다. 시조는 초·중·종장이라는 3장의 구성 안에 생각과 느낌을 모두 표현한다는 점이 순간의 모습만을 묘사해 놓은 하이쿠와는 구별된다. 문학평론가 김열규는 "말을 아낄 대로 아껴 쓰면서도 함축성은 부풀대로 부풀어야 한다"면서 단시조의 미학을 규정했다.
단시조를 사진과 융합하여 서사성과 시적 경험을 결합한다면 짧은 순간 이미지의 전환과 공감이 가능하다. 순간 포착된 이미지를 전달하는 디카시의 속성은 짧은 긴장 속에도 완결성을 담고 있는 단시조와 결합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감수성과 문학성을 경험하는 장으로 펼쳐진다.
광주문학아카데미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전방위적 미학주의'로 요약된다.
이들은 합평회를 통해 지나친 혹평은 멀리 했으나 칭찬에는 인색했고 비평적 기준을 통해 회원 작가들이 자기 연마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데 활동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광주문학아카데미 관계자는 "글은 혼자 쓰지만 문학은 함께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외로운 문학의 길에 '광주문학아카데미'가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리라 믿는다"며 "오늘도 쓰고 또 쓰며 한 시대를 증언하는 여러분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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