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 문집 '시은집' 수록 한시 재해석
25년 동안 받은 육필 손편지 묶어내
시와 편지에 얽힌 가족과 인연 오롯이
수필가 이정선씨가 '이정선 점화시집'(한국문화사刊)과 손편지 모음집 '두근두근 손편지'(동산문학사刊)를 동시에 펴냈다.
이중 '이정선 점화(點化)시집'은 이 작가가 자신의 조부인 시은 이치홍(1873∼ 1951)이 남긴 문집 '시은집'에 남긴 한시 531수 중 100수를 가려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려 쓴 점화시를 묶은 수록집이다.
'시은집'에 담긴 531수는 시은 선생의 아들이자 이 작가의 부친인 향포 이명구씨가 직접 번역했다.
시은 이치홍은 장성 북상면 백계리 남양마을에 터를 잡은 부친 야은 이용중의 슬하에서 태어났고 생전 숙릉참봉을 역임하고 남양촌에 서당을 열고 후학 양성에 힘썼고 자신의 문집 '시은집'을 남겼다.
'시은집'은 선비로서의 도와 믿음, 자신의 인생관과 철학을 읊은 한시를 수록했다.
이정선 작가는 '시은집'에 수록된 다성적이고 다층적인 시의 소재와 묘사, 다양한 사회적 인간의 감정과 인식을 자신의 시각과 시대적 감각으로 되살림과 동시에 조선이라는 세계에 갇혀있기를 거부하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동양은 물론 서양으로 눈을 돌렸던 조부의 시 정신과 사상 계승을 위해 '점화시집'을 출간했다.
"푸른 산의 의미에/ 걸린 붉은 해/ 눈부셔라// 한줄기 버들피리 소리/ 때맞춰 들리고// 귀머거리 새/ 제풀에/ 화들짝 놀라는/ 이 청아한/ 적요// 그 속에/ 머무름/ 이 또한/ 흐뭇하리"(시' 집 위 나무꾼의 피리 소리' 전문)
이렇듯 딱딱하고 의미 전달이 어려운 한시는 이 작가의 매끄럽고 현대적인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시로 재탄생했다.
'두근두근 손편지'는 자신에게 따뜻한 엽서와 손편지를 보내준 이들의 육필 원고를 한데 모아 독자들과 공유를 위해 쓰여졌다.
제1부 '열린 울타리'는 가족과 친턱, 피붙이 버금가게 잊을 수 없는 은인 몇명이 보낸 편지를 담았다.
이어 2부 '내 수필의 모태'에는 32년 전 자신의 처녀작을 실어 주며 글을 슬 수 있게 해 준 광주수필문학회와 광주여류수필문학회 문우들과 나눈 편지들을 모았다.
이와함께 (사)영호남수필문학협회 문우들과 나눈 편지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수필가협회, 광주문인협회, 국제펜광주지역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맺은 글, '우정의 손길'은 수십 년을 동고동락한 동창이나 이웃사촌들의 글, '필퐁처럼 통통 튀는 우리 사이'에서는 10여 년 가까이 탁구공을 주고 받으며 인연을 맺은 탁구와 요가 동아리 소속 회원들과 나눈 글, '4반세기 묵은 향기'에서는 지난 98년 첫 수필집 '부딪히며 사랑하며'를 상재한 후 받았던 고마운 손편지 묶음을 실었다.
이정선 수필가는 "점화시집과 손편지 글들은 평생 가족과 삶 속 인연을 매개로 접한 글들을 한데 묶은 것"이라며 "솜이불을 꺼내 바짝 말려 햇살의 정취도 맡고 부풀어 오르는 이불 부피만큼 배가된 즐거움을 함께 하는 마음으로 책들을 세상에 내보낸다"고 밝혔다.
그는 장성에서 태어나 전남대 교육대학원 가정교육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후 오랫 동안 교직생활을 했다.
지난 92년 한맥문학으로 등단,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상임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영호남수필문학협회 광주회장과 광주여류수필회장 역임, 영호남수필문학 대상, 광주문학상, 허균문학상 본상, 국제PEN광주문학상 수상, 수필집 '부딪치며 사랑하며', '걸림돌을 디딤돌로', '원의 버릇'을 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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