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무등일보 주부글방서 시 공부
세상 곳곳에서 벗어난 삶 존재 증명
단단하고 진실한 시어로 고통 위로

시는 일상적 풍경에 대한 사실적 진술이나 재현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행각하는 새로운 감각을 통해 낯선 풍경으로 바꿔내는 데서 비롯된다,
광주에서 활동 중인 하여진 시인이 첫 시집 'Itaewon과 곰팡이꽃 풀 옵션'(포지션刊)을 펴냈다.
그의 시는 항상 중심이 아닌 주변, 그 어둠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그의 시에는 주변적 삶에 대한 응시는 존재하지만 대상에 대한 거짓 위안, 관념을 통해 상처를 봉합하려는 태도가 드러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무심한 듯 보이는 이 태도에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대상에 대한 관념적 개입을 절제하는 이 태도야말로 하여진 시의 특징적인 면모다. 그의 시는 다만 주변적 삶이, 어떤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세상 곳곳에 중심에서 벗어난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시인의 시를 향한 마음은 간절하고 열정으로 가득하다.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삶을 한 땀 한 땀 누벼서 박은 시들을 읽으며 눈시울이 여러 번 뜨거워졌다.
시인은 묻고 있지만, 그가 바늘 하나로 일으켜 세운 시의 세계는 이미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분방하게 흘러넘치던 언어는 이제 간결하고 단단해져서 진실의 최대공약수 같은 시어들만 남았다.
시인은 '비탈'과 '절벽'을 자신의 "생의 전략"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은유를 전당포에 맡"긴 채 시를 쓰는 동안 창밖 저편으로" 날아가는 날개 없는 검은 새들을 떠올려본다. 또는 전기가 끊긴 가게에서 "끊어진 시간을 촛불로 이어놓고 젓갈을 담그고 있는 주영상회 박씨와 그의 그림자를 오래 바라보게 된다. 그 벌거벗은 힘, 나력(裸力)으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의 숨결이 이 시집에는 가득하다.
이번 시집에는 고통으로 충전된 그 밤들은 계속 뜨겁고 아픈 시들이 담겨 있다.
"케밥 가게, 되네르에 꽂힌 양고기만큼 작아진 저녁 아홉 시가/ 이태원의 네온 불빛에 겉에서부터 익어가고 있다/ 거대한 빌딩 숲 뒤의 오르막길/ 쓰레기더미가 꽃처럼 피어 있는 빈민가/ 우사단길 노린내가 이삿짐 트럭 안으로 몰려온다/ 골목 끝에서 이삿짐을 풀었다/ 낡은 불빛, 꿉꿉한 냄새 진동하고 벽지에는 사진에 없는/곰팡이가 울긋불긋 피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만 보이는 반지하/ 왼발은 지상에 오른발은 지하에 인생은 양다리인가/ 벽에서 떼어놓아야 하는 가구처럼/ 삶에서 꿈은 조금 떼어놓아야 할까/ 꿈을 위해 아직 늙지 못한 육십 대와/ 튕길수록 청춘이 흔들리는 피크에 사로잡힌 삼십 대에게는/ 한 점의 빛도 허락지 않는 어둠 속이/ 포자도 없는 꿈을 퍼뜨리기에 안성맞춤이다/ 누르면 튕겨날 듯한 희망과/ 눅눅한 장판 밑에서 서식하는/ 얼룩진 삶"(시 'Itaewon과 곰팡이꽃 풀 옵션' 중 일부)
시인은 얼마 전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을 삶에서 꿈은 조금 떼어놓아야 할까하는 상념에 잠긴 채 얼룩진 삶의 공간으로 묘사했다.
하여진 시인은 지난 92년 '무등일보 주부글방'에서 처음 시를 접하고 문학공부를 하며 시 창작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9년 '시인세계'로 등단, 조선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국토 곳곳의 유적으로 만나는 우리 역사 우리 시대 '문화 전도사' 유홍준이 새로운 시리즈로 돌아왔다. 우리 역사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며 각 시대를 대표하는 지역과 문화유산을 만나는 '국토박물관 순례' 시리즈다.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를 외치며 시작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출간 이후 30년, 답사기에서 다 담아내지 못했던 우리 역사의 진수를 국토박물관 속에서 차근차근 찾아가는 새로운 답사기이자 진화한 답사기인 셈이다. 선사시대와 고대사를 다룬 이번 1~2권을 시작으로 근현대까지 이어질 예정이다.'국토박물관 순례'에는 역사와 문화, 유물과 현장을 아우르며 수십 년간 우리 역사의 현장을 두루 순례하고 소개해온 유홍준의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통찰과 매력으로 가득하다. 또한 우리 역사를 차근히 알아갈 수 있도록 답사지 소개와 더불어 해당 시대에 대한 친절하고도 깊이있는 설명을 붙여, 성인과 청소년 독자들에게 두루 유익한 역사 교재로 손색이 없다.이번에 출간되는 '국토박물관 순례' 1~2권은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을 소개했다. 1권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초기철기시대, 고구려시대의 핵심 유적을 다뤘다.연천 전곡리 유적은 세계 고고학 지도를 바꾼 획기적인 발굴이 이뤄진 곳이다. 1978년 미국 병사 그레그 보엔이 이곳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발견하면서 동아시아에는 주먹도끼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기존 학설이 뒤집혔다. 이후 유적 전체가 공원으로 조성되고 전곡선사박물관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우리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이자 배움터로 거듭났다.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유적은 150곳 이상이다. 이 책에서는 전국에 분포한 유적 중에서도 유물이 풍성하게 출토되어 역사적 가치가 돋보이는 부산 영도의 패총 유적을 둘러보며 한반도 신석기시대를 소개한다.이어 고구려 역사의 중심이었던 만주를 탐방한다. 먼저 우리 고대사의 무대였던 만주의 지도를 익히는 것을 시작으로 고구려 기행 대장정을 시작한다. 첫 번째 코스는 중국 동북삼성의 중심 심양에서 봉황산성과 단동, 호산장성을 거쳐 압록강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과정이다. 봉황산성과 호산장성은 각각 고구려 오골성과 박작성으로 추정(비정)되는 곳으로, 고구려 산성 문화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본격적인 탐방을 위해 잠시 들른 단동에서는 압록강의 아름다움과 분단을 포함한 우리 역사의 숭고함과 아픔을 느껴본다.이어서 고구려의 첫 도읍이었던 중국 요령성 환인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곳에 위치한 왕성이자 산성이었던 오녀산성은 고구려 유적 중에서도 웅장함과 장대함이 남다르다.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를 구축해놓아 신생 왕국 고구려의 패기와 단단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이곳에 도읍한 지 얼마 안 있어 길림성 집안 지역의 국내성으로 천도했다. 그렇게 저자는 고주몽의 건국 이야기를 떠올리며 천도 경로를 따라 길림성 집안으로 이동한다.집안은 고구려 국내성과 환도산성이 한 쌍을 이루어 400년간 고구려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만큼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들이 밀집해 있다. 고구려 유적 탐사단은 이 집안에서 여러 날 머무르며 역사의 향기와 압록강변의 서정을 느낀다. 시내에 있는 국내성은 심하게 훼손되었고 환도산성 안쪽은 과수원이 되어 있었지만, 중국은 이 지역의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수년 전 정비를 마쳤다. 이곳에 있는 고구려의 대형 왕릉과 고분을 만나는 것은 대략으로도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다. 우리 역사의 자부심을 지탱하는 고구려 전성기의 유적인 태왕릉, 장군총, 벽화고분 등 '무덤 순례'를 마치고 광개토대왕릉비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1권은 마무리된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 [새책안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外
- · 사랑의 힘으로 치유되는 상처와 희망
- · 아름답고도 슬픈 삶의 이면
- · 역사의 관점으로 본 한국인의 본질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