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순응하며 절망의 가치 인식
구체적 삶의 체험에 밀착한 시편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운명 승화
시는 삶과 자각을 동반한다.
삶의 순응이 생존에 대한 의지가 되는 순간 시가 탄생한다
강진 출신 박은영 시인이 '우리의 피는 얇아서'(시인의 일요일刊)을 펴냈다.
지난 2018년 문화일보와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된 박은영 시인은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황동규·정호승 시인에게 "인간 삶의 내면을 응시하는 깊은 사고와 이해"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인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등단 5년 차에 두 번째 시집을 펴내게 되었지만 시집을 읽다 보면 시가 시인의 삶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시인이 시에 얼마큼 의지하지 있는지를 쉽게 단번에 알 수 있다.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최소한의 노동만을 하며 살아왔다. 등단 전에는 최저시급으로 식당일을 했고, 시간제 보육일을 하며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 시를 썼다. 그리고 시인이 된 후에는 식당일과 보육일이 글쓰는 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최소한의 노동만으로 시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박은영 시인은 첫 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에서 체험하지 않았으면 표현할 수 없는 간난하고 신산한 삶을, 연금술사적 언어로 그려내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 시집은 삶에 순응하며 버텨낼 때 목격되는 부끄러움과 절망을 또다른 차원의 가치로 끌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신박한 이미지와 화려한 언어의 시들이 유행처럼 범람하는 요즘, 박은영 시인은 삶의 스산한 풍경과 맞서며 생존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 7080세대의 감성이다. 그럼에도 그 시절보다 더욱 치열하다. 시인에게 시는 상흔이다. 지난 시절의 상처로 아로새겨져 있다. 아련한 흔적만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고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새겨진 경우도 있으며, 여전히 보랏빛 멍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상처를 돌보는 일, 박은영 시인에게 그것은 시를 쓰는 일이며 지난 시간을 부여잡고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다.
시집의 첫 자리에 놓인 시만 읽어보아도 그렇다. '억새'라든지 '나는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등의 작품들을 보면 수사(修辭)로서의 가난과 불안이 아니라 생존의 치열한 방식임을 읽을 수 있다. 억압과 길들임의 순간과 세상의 폭력 앞에서 순응으로 버텨내며 좀처럼 체념을 하지 않는 의지를 보여준다. 남의 시선을 의지한 여유도 없이 온힘으로 버텨내는 자세가 박은영 시의 자세이다. 행간에 드러난 지독한 외로움도 수사가 아니다. 그리고 여전히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운명에 비켜서지 않는다.
시집을 촘촘하게 읽다보면 이전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전통적 시작법에 충실했던 시인이, 변화를 향한 갈망도 느껴진다. 치열한 삶의 감각을 통해 언어의 감각을 유지하는 일이 시인의 미덕이기도 하지만 구체적 삶의 체험에 밀착한 시로부터 진정성을 길어 올리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고투의 흔적들이 시집 곳곳에 드러나 있다.
전해수 문학평론가는 "박은영의 시는 새롭게 인식되는 '부끄러움'의 감각들을 통해 무릎으로 절망을 누르던 시간을 생존가능성이 희박할 때 일어나는 기적이 머무는 가치의 세계로 승화시키고 있다"며 "그 가치의 세계는 상실의 시대를 건너는 부끄러움의 감각들이 품은 시의 세계에서 몹시 아릿하고 저릿하다"고 평했다.
박은영 시인은 강진에서 태어나 함평에서 살고 있다. 제주4·3평화문학상,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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