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쓰레기 급증에도 분리배출 엉망
음식물 잔뜩 묻은 재활용품들 씻고 닦고
"협조 절실" 호소하지만 넘치는 비양심들
[생활쓰레기 팬데믹 ④분리배출 시달리는 경비원]
14일 낮 북구 두암동 A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 30도가 넘는 찜통더위 속에서 제복 차림의 경비원 오모(68)씨가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분리수거함에 플라스틱, 비닐, 캔 등 서로 다른 쓰레기가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이물질이 묻어 오염됐거나, 겉면의 테이프 등이 제거되지 않은 '재활용 불가' 쓰레기가 많았다. 일부 주민의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된 잘못된 분리배출의 흔적이었다.
일부 쓰레기라도 재활용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 이뤄졌다. 오씨는 분리배출이 가장 안 되는 투명페트병이 수북이 쌓인 전용 수거함을 뒤척이며 라벨(상표띠)이 붙은 페트병만 골라내 커터칼로 일일이 라벨을 제거했다. 페트병 안에 이물질이 들어있으면 버리고 세척했다. 분리 작업을 시작한 지 10여분이 지나자 바닥에는 어느새 포대 한 자루 분량의 페트병이 쌓여있었다. 오씨는 재활용품을 분류하기 위해 쓰레기 품목별로 하루에 2~3회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는지 배달음식 등을 주문하는 세대가 부쩍 증가했다. 쓰레기 배출량도 덩달아 늘어나면서 재활용 쓰레기 분류 작업이 새로운 골칫거리"라면서 "사실 아파트 2~3동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혼자서 처리하다 보니 모든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배출하기가 어렵다. 품목별 처리 방법도 제각각이라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다른 업무는 하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쓰레기 수거업체들도 재활용품 상태가 엉망인 줄 알면서도 수거해 가는데, 결국 선별 과정에서 절반 이상의 쓰레기가 재활용되지 못하고 폐기된다고 들었다. 주민들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가정에서 잘못 분리배출한 쓰레기 뒤처리는 오로지 경비원이 감당하고 있다. 같은 날 방문한 동구 계림동 B아파트는 경비원 박모(75)씨가 수시로 분리수거함을 정리·청소했지만, 쓰레기가 쌓이는 속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박씨는 이날 오전 분리수거장에서 악취가 난다는 민원으로 관리사무소에 불려가 경고 조치까지 받았다. 분리수거장에선 실제로 음식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배달용기 등에 음식물 찌꺼기가 들러붙어 오염된 상태였다. 박씨는 야간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얌체족'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밤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남은 음식을 배달용기에 그대로 담아 버리는 주민이 더러 있다. 경비 업무가 통상 밤 10시에 끝나는데, 이보다 늦은 시간에 음식을 버리면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현장의 애로사항을 매번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말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주민에게 무조건 친절하라'는 말이다. 경비원이 무분별하게 버려진 쓰레기 뒤처리를 해야하는데 전혀 신경도 안 쓴다"고 토로했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재활용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가정에서 배출하는 일회용품 등이 급증한 마당에 쓰레기 분리배출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경비원 1명이 여러 동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쓰레기 분리배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관리사무소와 주민 등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수도권은 2030년부터 무분별한 생활쓰레기 배출을 막기 위해 쓰레기를 선별 없이 직매립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선별 후 재활용하거나 소각한 뒤 남은 소각재만 매립할 수 있다. 쓰레기 대란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광주의 재활용품 발생량(공공 부문)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급증했다.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1~12월 재활용품 평균 발생량은 98.5톤으로 전년 83.3톤 대비 18.2% 증가했다. 특히 플라스틱류(36.8%) 사용이 증가세를 주도했다.
재활용 쓰레기의 혼입·오염 등 이유로 재활용률도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광주에서 배출된 재활용 쓰레기의 절반에 가까운 45.49%가 소각 또는 매립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재활용 쓰레기 관리 부재의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쓰레기 매립의 한계는 분명하고, 이를 대체할 소각 또는 자원 순환 방법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제대로 처리가 안 된 상태에서 장시간 방치되면 미세플라스틱 등으로 시민 건강도 함께 위협받을 수 있다.
이에 광주시가 최근 쓰레기 재활용률을 높이고, 재활용품 품질 개선을 위해 팔을 걷었다. 지난달부터 공동·단독주택을 찾아가 올바른 분리배출법 안내와 재활용품 사전 선별, 투명페트병 라벨이나 종이상자 테이프 분리 유도 등을 안내·지도하는 자원순환도우미를 배치했다. 올 말까지 800여명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제도도 시행 중이다. 고품질 재활용 자원이라 별도 배출이 필요한 투명페트병 전용 분리수거함 508개를 설치했고, 단지 내 안내방송과 시·구 합동점검도 벌였다.
동구 산수동·지산동·지원동, 북구 용봉동 등 4개 동을 자원순환마을로도 지정해 주민이 주체적으로 나서 불법투기 근절, 올바른 분리배출에 앞장서도록 유도하고 있다.
쓰레기 문제 해결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신일섭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는 "이제는 시민 모두가 쓰레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라면서 "광주가 자원순환도시로의 전환을 위해 쓰레기 분리배출부터 자원 순환, 최종 처리까지 어떻게 일을 분배하고 이익을 공유할 것인지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은정 광주환경운동연합 팀장은 "쓰레기 발생을 줄이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품 사용을 늘리고 제품을 오래 쓸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면서 "기업은 제품 생산 유통 재활용 전 단계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방안을 정부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며, 쓰레기 배출자들은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올바른 분리배출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과거 쓰레기 수거 거부 사태를 교훈 삼아 쓰레기 대란 대비책 등을 마련하고 사회적 혼란에 준비돼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건 개인의 실천과 정부·지자체의 인프라 마련, 기업의 혁신 등 주체별 노력이 동반돼야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생활쓰레기 팬데믹ㅣ인터뷰] "분리배출 매뉴얼 더 공유하고 모범사례는 보상도"
황철호 국제기후환경센터 탄소중립지원단장
분리수거 강국이지만 재활용률은 저조
실천 주체는 주민이라는 인식 전환을
"한국의 쓰레기 분리수거율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지만 재활용률은 낮은 수준이다.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선 분리배출 홍보에 그칠 것이 아니라 쓰레기 배출자들이 함께 공유·실천할 수 있는 매뉴얼, 공익적 활동에 대한 보상 등 공동체적 방안이 필요합니다."
황철호 국제기후환경센터 탄소중립지원단장은 "시민들이 분리배출의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물질별 분리 방법이나 쓰레기가 재활용되기 위해선 어떤 상태로 배출해야 하는지 헷갈려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황 단장은 "시민들에게 가정에서부터 분리배출 방법을 숙지하고 최상의 상태로 배출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이를 생활에서 체득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리배출 과정에서 다양한 재활용 쓰레기를 얼마나 잘 분리·선별하는가가 재활용률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의 하나인데, 실제 현장에선 다른 쓰레기가 혼입되거나 오염돼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가 섞이는 경우가 많다"면서 "최근 한국의 쓰레기 재활용률이 통계상 60%대지만 실제로는 30% 수준인 이유"라고 했다. 쓰레기 배출자들이 분리배출 체계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것을 나타내는 수치다.
코로나19 이후 재활용 쓰레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아파트의 경우 분리배출 주체가 경비원이 아닌 주민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 단장은 "올바른 방법으로 쓰레기가 배출됐는지 혼입된 품목은 없는지 감시하고 분리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수반한다. 단순히 양적인 증가뿐만 아니라 재활용 쓰레기의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러한 일을 경비원 한두 명이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현 분리배출 체계보다 더욱더 많은 재활용품의 분류가 필요하고, 분리배출을 이행하는 주체도 주민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 단장은 "서울과 제주 등 일부 지자체는 이미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도시를 표방하고 효율적인 분리배출 체계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원 순환율을 높이기 위해 재활용 정거장이나 재활용도움센터 설치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광주도 재활용 쓰레기가 순환되는 구조로 분리배출 체계를 바꿔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민을 참여시키고 새로운 마을 일자리 모델 등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쓰레기와 함께 살거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황 단장은 현재 한국전력공사 비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무총리실 소속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 한국산업단지공단 EIP사업단 코디네이터 등을 역임했다.
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