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배지 북상에 중국산까지···나주 배 명성 흔들리나

입력 2022.09.02. 10:35 선정태 기자
경쟁자에 밀려 '나주배'의 인기 시들
수출 효과 보지만, 중국산 위협 직면
신품종 개발·소비자 인식 변화 필요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국산 배의 대명사로 통했던 나주 배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재배지가 북상해 독점적 생산지라는 위치는 오래 전에 사라졌으며, 기후 변화로 자연재해와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도 늘고 있다. 국민들의 기호 변화로 배를 찾는 소비자들은 줄어 수출을 모색하고 있지만, 중국산과 일본산의 견제가 심한 편이다.

나주배의 명성을 흔드는 요인은 크게 재배지 북상과 기후 위기, 소비자 입맛 변화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올해는 몇 년간 괴롭혔던 봄철 냉해와 여름 태풍 피해없이 배 농사는 풍년이지만, 올 추석이 평년에 비해 2주~한달 빨리 찾아와 농가마다 '제대로 크지 못해 제값을 못 받는다'며 울상이다.


◆ 냉해 없지만 이른 추석 '농가들 울상'

몇 년간 심해진 봄철 냉해 피해와 여름 태풍으로 나주배 농가들의 피해를 입었다.

배 개화기의 심각한 꽃샘추위로 대규모 '착과 불량' 피해를 입었다. 2018년과 2019년, 2020년까지 이어진 봄철 저온 현상으로 최저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뚝 떨어지는 갑작스런 이상 저온으로 개화를 앞둔 배꽃봉우리가 얼어붙는 냉해가 발생했다. 피해 면적은 재배면적의 50%에 육박했다. 특히 2020년에는 나주시 봉황면과 금천면, 노안면을 중심으로 나주지역 전체 배 재배면적 1천943㏊ 중 50%를 차지하는 972㏊에서 냉해가 발생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얼어붙은 암술 씨방은 꽃을 피운 이후 까맣게 고사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어렵게 착과시킨 농가는 여름 장마와 태풍 피해로 작황 저조, 낙과로 인한 생산량 감소 등 악재도 겪어야 했다.

올해는 다행히 이렇다 할 냉해나 태풍 피해가 없어 작황이 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평년보다 빨라진 추석이 걸림돌이다.

나주배 생산량의 60% 이상이 추석을 앞두고 제수용·선물용으로 판매되다 보니 농가마다 '추석을 놓치면 한 해 농사는 망친다'며 출하를 서두르고 있지만, 완전히 크지 못한 배를 따면서도 "공판장에서 받아줄지나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와 올 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농가의 짐을 무겁게 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수급이 원활치 않은데다, 인건비 상승 폭도 가팔라 고용 부담이 늘었다. 전쟁 여파로 원자재·농약 값 상승도 농민들의 주름살을 깊게 만드는 요인이다.


◆ 재배지 북상으로 경쟁력 약화

배 생산지로서의 독점적 위치가 흔들리는 것도 농가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나주를 중심으로 한 배 재배지가 조금씩 북상하더니, 2010년대부터는 충남·북을 중심으로 대규모 농원들이 들어섰다. 현재 재배 면적은 전국 9천여㏊ 중 전남도가 2천729㏊로 전국에서 가장 넓지만 충남 1천993㏊, 경기도 1천533㏊를 차지할 정도로 나주배를 위협하고 있다.

수도권과 가까운 경기도와 충남 배 출하가 늘면서 운송비 등에서 경쟁력이 낮아 판매량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출하·판매 시기가 추석에 집중되는 것에 비해 충남·경기도 배가 추석과 설에 나눠 판매되는 점도 나주배를 위협하는 한 요소다.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추석이 있는 해는 충남·경기도 배에 경쟁력 면에서 밀리고, 추석이 이르면 상품성이 떨어져 판매가 부진하다"는 농가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예측한 '미래 과일 지도'는 더 암울하다. 농촌진흥청은 올 초 2005년 2만1천㏊였던 배 재배지가 9천㏊줄었다고 분석하며 현재의 품종과 작형 등의 재배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2030년대까지는 재배 면적이 증가하다가 2050년대부터 감소해 2090년대에는 재배 면적이 거의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기후 변화로 재배적지가 한반도 서남해안에서 충남과 경북으로 북상, 전남은 2050년대부터 재배적지는 물론 재배 가능지역도 사라진다. 기후 변화는 재배지의 북상 뿐 아니라 잦은 자연 재해와 새로운 병해충 등장이라는 측면도 있다.

아열대 과일 등 '단 과일' 국내 생산으로 가격 경쟁력이 강해진 것도 나주배 위협의 한 요소다.

가격이 싸지면서 당도가 높은 과일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배를 찾는 사람들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 수출로 판로 개척 모색

나주배는 지난 1967년 대만 수출을 시작한 후부터 1986년 미국으로 수출이 본격화되면서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K-푸드의 원조격이다.

미국과 동남아 지역에서 나주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매년 수출량이 늘어 매년 2만5천t에서 3만t 가량을 수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캐나다, 중동, 유럽, 호주 지역으로 수출을 확대, 신선 농축산물로 순위 4번째에 드는 수출량을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시장은 추석 전후에 교민을 대상으로 조생종인 원황이 수출되고, 10월 이후에는 신고 배를 중심으로 설까지 지속적으로 수출된다. 교민 중심의 수요층에서 현지인들로까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국산 배가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자, 중국이 한국 품종을 재배해 싼 가격에 수출하면서 경쟁하기 시작했다. 중국산 배 현지 도매가격은 국산의 9분의 1 수준이어서 가격만으로는 경쟁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중국산 배가 국내 시장까지 넘볼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나주시와 나주배원예농협은 중국산의 도전을 잠재우기 위해 해외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먹기 편한 중·소과 품종 육성에 나설 것이며, 껍질 채 먹을 수 있는 품종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나주배원예농협 관계자는 "'신고'배는 저장성은 뛰어나지만 품질 면에 낮다는 단점이 있어 신화·창조 등 신품종 재배를 확대하고 있다"며 "대과를 선호하는 문화의 변화도 필요하다. 외국은 깎아 먹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껍질 채 먹는 품종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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