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송규 화백 기획 아래 후손 포함
市 관계자·미술계 인사들 참석

"오지호 선생이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자신의 뜻이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정리돼 우리 후손들이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0일 오전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오지호 화백 구술 좌담회가 열렸다.
이날 좌담회는 자유롭게 오지호 화백에 대한 기억, 오늘날 그를 기억하는 방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 연구 결과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아닌 누구나 그에 대한 추억이나 의미를 함께 나누도록 기획됐다.
특히 이번 좌담회는 한국의 최초 인상주의 작가로만 알려진 오지호 선생의 교육자적, 사회운동가적 면모에 집중하는 자리로 구한말부터 한국전쟁을 관통하는 그의 삶과 그 안에서 사회 지식인 역할을 말년까지 이어온 그의 정신에 대해 체계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한데 모으는 것에 의미가 있다.
지난해 12월 오지호미술상 본상을 수상한 지역 대표 원로 작가 정송규 화백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이 자리에는 오지호 선생의 손주 오수경 작가와 오병하 카이스트 교수의 부인이 참여했으며 광주시와 동구 관계자, 미술계 인사들이 함께 했다.
정 화백은 "오지호 선생의 작품 세계는 잘 정리가 됐지만 그분의 교육자적, 운동가적 사상이나 삶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연구 등이 부족한 것 같아 늘 아쉬웠다"며 "이번 자리는 누구나 편하게 오지호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됐으면 하고 더불어 연구의 시작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오지호 선생의 큰 아들인 오승우 화백으로부터 광주여고에서 미술을 배웠던 정 화백은 선생님을 따라 지산동 오지호 화백의 집으로 주말마다 사생을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조대부고 미술부 학생들도 자주 지산동 집을 찾았는데 사생을 마치고 평상에 앉아 떠들고 놀던 이들을 매번 반겨주던 오지호 선생. '호남인들이 지금은 멸시 받지만 머리가 좋아서 언젠가는 빛을 볼테니 너희들이 잘 살아야 한다'고 늘 가르침을 전했다고.
정 화백은 "유년기, 늘 호남인 차별에 대한 울분을 갖고 있었는데 오지호 선생의 가르침은 서울이든 외국이든 나가서 활동할 때 내게 큰 힘이 됐다"며 "그 힘으로 주눅 들지 않고 언제나 당당할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와 함께 정 화백은 오 선생이 언제나 후배 화가들의 전시장을 찾아 작품에 대한 조언을 전하고 관람하러 온 또다른 후배들에게도 한국 기후의 아름다움, 호남인의 똑똑함, 광주의 지산동과 무등산, 한복 선의 아름다움 등 우리나라와 광주에 대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회상한다.
또 오 선생은 한글한문병용운동 등 민족주의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말년까지도 사회 운동에 투신했다.
정 화백은 "생각해보면 오 선생의 정신이야 말로 광주정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다"며 "그의 청빈한 삶과 후배로 대변되는 미래세대를 향한 애정, 호남에 대한 긍지, 나라에 대한 사랑은 지금의 광주정신을 꽃피운 근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점차 잊혀지고 있는 오지호 선생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다양한 방안도 논의됐다. 오지호미술상이 속한 광주예술상 개편, 오 선생의 삶에 대한 주변인 구술 채록의 시급성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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