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23> 폼페이 유적

입력 2021.05.11. 20:00 김혜진 기자
플로라(Flora), 기원 1세기, 32×38cm. 폼페이유적 출토.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플로라'와 프레스코, 폼페이 폐허에서 본 불가항력의 순간들


2018년 11월 16일. 당시 피렌체에서 체재하던 나는 새벽기차를 타고 나폴리를 방문했다. 이번 여행은 순전히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과 폼페이유적에서 출토된 프레스코 그림, '플로라(Flora)'에 대한 편력 때문이었다. 박물관에는 폼페이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어서 사람들은 유적현장을 보기에 앞서 이곳을 찾아가게 된다. 말하자면 이 박물관은 폼페이의 혼이며 예술인 셈이다. 물론 '플로라'도 여기에 있다.

나폴리는 기원전 5세기 이후 그리스의 영향 하에 건설된 신도시, 네아폴리스(Neapolis)에서 기원한다. 초기에는 상업으로 번성한 성곽도시였으며 기원전 4세기에 로마에 복속되었다. 로마시대 흔적들은 구시가지의 거리와 주택가에 아직 남아있고 누오보성과 나폴리 대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은 1777년에 처음 개관해 1957년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전시품은 '파르네세 컬렉션'으로 불리는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품이 유명하지만, 역시 이곳의 특징은 화산의 폭발에 묻혀버린 고대도시 헤르쿨라네움과 폼페이에서 발굴된 모자이크 및 프레스코를 비롯한 기원 1세기경의 유물들이다. 폼페이 출토품은 1층의 서쪽에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한 '비밀의 방'과 모자이크와 프레스코의 전시실이 있고, 2층의 동쪽에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묻힌 마을과 신전, 그리고 남쪽에 프레스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나는 창틀 사이로 지중해의 가을 햇살이 길게 내려앉은 이곳에서 '플로라'의 실물을 정면으로 봤다.

폼페이유적의 중앙광장, 왼쪽에 베수비오산이 있다.

'Flora, 1~45년, 32×38㎝, 출토지; 스타비아(Stabiae) 아리아드네(Ariadne) 빌라, 그리드 W26. 8834'. 이것은 나무액자에 담긴 프레스코 밑에 놓인 설명카드의 내용이다. 이 그림의 명칭과 제작연대, 규격, 출토장소, 유물번호 등이 적혀있다. 소위 '플로라'는 폼페이의 스타비아에 있는 아리아드네 별장의 침실 벽에 그려져 있었다. 녹색 바탕의 이 그림은 왼손에 들려진 칼라토스(바구니)에 오른손으로 달맞이꽃처럼 노랗고 흰 꽃 타래를 집어 따 넣으며 맨발로 걷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오른쪽 어깨가 흘러내린 노란색 키톤(Chiton)을 걸치고 머리띠를 둘렀으며, 오른팔에는 아밀라(팔찌)를 착용했다. 이 프레스코는 1759년 발굴됐다. 그림은 상하로 길게 금이 간 것을 보수했고, 사진과 달리 색깔은 바래고 선들은 희미해졌다. 나는 상당 시간 '플로라' 앞에 서 있었다. '플로라'는 그리스신화의 꽃과 봄을 관장하는 여신 클로리스(Chloris)의 로마 이름,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Primavera)가 유명하다. 사실 내가 이 그림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구도의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기원 1세기의 작품이라는 데 있다. 내게 문명의 가늠자인 광주 신창동유적과 동 시기의 고고학유적들을 비교하는 것은 동(東)과 서(西)를 초월해 신선한 감동이다. 이번 폼페이여행도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인간인지 아니면 신성한 모습의 님프(Nymph)인지가 확실하지 않은 '플로라'와 함께 발견된 '레다(Leda)', '메데이아(Medea)', '다이애나(Diana)'를 묘사한 프레스코들과 '사포(Sappho)'로 알려진 초상화도 있다. 사포는 기원전 612년 레스보스섬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여류시인. 이 프레스코는 1760년 발견됐다. 실제 그녀는 하얀 벽에 보라색 바탕의 목걸이 메달에 삽입된 모습으로 상류사회의 여인처럼 머리엔 금실을 수놓고 금귀걸이를 했다. 설명문에는 이른 바(so called)를 붙여 그녀가 사포일 가능성을 열어뒀다.

프레스코는 아직 덜 마른 회벽에 물에 갠 물감으로 그린 채색화. 마른 바탕에 그리는 것보다 훨씬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정교한 예술이다. 기원전 1600년경 크레타의 청동기시대 미노스인들이 남긴 벽화가 알려져 있으며 기원전 5세기경에는 인도와 중국에도 전해진다. 우리나라 고구려벽화도 프레스코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흔히 르네상스 예술품과 연관시키지만, 이 기법은 고대와 현대의 예술가 모두에게 영감을 주며 수천 년을 존재해 왔다.

폼페이유적에서 발굴된 사람의 모습과 그릇들

오후가 돼서야 폼페이를 향한다. 나폴리에서 폼페이유적을 가려면 소렌토행 치르쿰베수비나를 타고 폼페이 스가비(Pompei Scavi)역에서 내려야 한다. 시골 간이역 같은 이곳에서 잠시 걸으면 유적의 출입구가 나오고 우측에 폼페이 고고학공원사무소가 있다. 지금은 퇴적으로 내륙이 되었지만, 원래 폼페이는 나폴리만의 항구도시였다. 외곽은 성채로 둘러싸여 있고, 8개의 아치형 문을 통해 외부와 연결됐으며, 내부는 건물과 거리가 반듯하게 구획된 계획도시였다.

서기 79년 8월 24일, 폼페이에서 10㎞ 정도 떨어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그리고 폼페이는 두께 3m 정도의 화산쇄설물에 묻혀 사라졌다. 당시 인구는 2만여 명, 그 가운데 2천여 명이 생명을 잃었다. 1594년 수로공사중에 고대도시 폼페이가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1748년부터 시작된 고고학자들의 발굴은 현재도 계속되며 그동안 전체면적(약 98만㎡)의 3/2 정도가 조사됐다. 오늘날 폼페이는 '고고학유적공원'으로서 발굴과 보존, 그리고 현지에서 전시와 교육작업을 진행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는다.

사포(Sappho), 기원 1세기, 37×38cm. 폼페이유적 출토.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유적 현장에는 무너져 내린 대리석 기둥과 신전, 성당, 광장, 마차바퀴 자국이 선명한 도로, 건물, 목욕탕, 모자이크 및 프레스코 벽화장식, 포도주병 등과 함께 아비규환 속에 죽어간 사람들의 순간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특히 두껍게 쌓인 화산재의 빈 곳에 석고를 부어 찾아낸 사람들의 모습은 처참함의 비극성을 더한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순식간에 멈춰버린 폼페이의 마지막 순간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2천년 전 시간의 간격을 극적으로 대비하는 폼페이는 비밀처럼 감춰진 일상과 수준 높은 예술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다.

조현종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사적 375호 광주신창동유적의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고, 국제저습지학회 편집위원, 고고문물연구소 이사장으로 동아시아 문물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캡슐' '탐매' '풍죽' 등 연구와 저작, 전시기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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