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2000년 총선과 노무현의 길, 그리고 이재명과 이낙연 - 세번째 이야기

@유지호 입력 2024.02.21. 18:00

살다보면 묘하게 어긋나는 지점이 있다. 영화 '헤어질 결심'처럼 말이다. 보통 결심은 성공하는 일이 드물다. 그 과정도 굉장히 고스럽다. 연초에 매번 실패하는 작심삼일처럼. 지난해 12월 30일 눈 내리는 날 오전, 우산을 받쳐든 두 정치인의 악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의 회동 뉴스였다. 헤어질 결심을 전제한 만남 탓이었을까. '마침내'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앞선 4년여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당시 여권내 지지율 1·2위를 다퉜던 이들을 주제로 칼럼을 두 차례 썼다. 2020년 4월 총선과 22년 3월 '벚꽃 대선'을 앞두고서다. 첫번째 칼럼은 포스트 코로나라는 문명의 대전환기에 대권을 둘러싼 정치지형 변화를 전망하는 내용이었다. 당시엔 총리를 그만 둔 뒤 종로대첩에 나선 이낙연은 상종가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지도자 1위를 달렸다. 이재명은 뒤쫓는 형국이었다.

지지율 역전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재명은 이듬해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다. 광주에서도 이낙연을 제쳤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대권 꿈을 꾸는 민주당 계열 유력 주자들에게 광주는 '마음'을 얻어야 할 핵심 지지기반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리더십의 시대, 광주가 선택할 후보는 누구일까를 전망한 게 두 번째였다.

'용문점액'의 갈림길 … 리더십 위기

이재명과 이낙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대권 가도의 전초전이 될 4·10 총선 국면에서다. 4년 전 장밋빛 전망과 달리 리더십 위기에 대한 우려가 많다. 내우외환 탓이다. 공교롭게도 두 명 모두 그렇다. 총선이 3파전에서 4파전 구도로 요동치면서다. '용문점액'의 갈림길이다. 용문 아래 잉어가 뛰어올라 문을 넘으면 용이 되지만, 넘지 못하면 문턱에 이마를 찧고 떠내려간다는 뜻이다. 옛날 용문은 중국 황하 상류에 있던 협곡이다.

민주당은 안팎에서 들끓고 있다. 이재명 사당화 논란 탓이다.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의정활동 평가가 낮은 의원들에게 감점 통보를 하면서다. 31명 중 28명이 비이재명계라고 알려지면서 '밀실공천' '사천논란'에 휩싸였다. 김부겸·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전직 국회의장들까지 나서 "불공정 공천"에 대한 유감을 표할 정도다. 광주·전남에서도 공개 반발이 끊이지 않는다. 광주 서구 갑에서 비명계 현역의원이 배제된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석연치 않은 컷오프로 반발이 거셌던 광산구 을에선 재심이 인용돼 결정이 번복됐다.

문제는 국민의 불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스템 공천을 무력화하는 행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생사여탈이 걸린 중대사인 공천에 크고 작은 갈등은 불가피하다. 공정한 잣대와 투명한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당 안팎에선 이재명 지도부의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 심판론에만 기대는 일종의 '감나무 전략'에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거다.

원조 '민주당' 논쟁도 불 붙을 기세다. 새로운미래 대표인 이낙연은 "'진짜 민주당'을 세우겠다"고 했다. 민주당과 결별한 그는 제3지대 통합에 나섰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이전투구에 염증을 느끼는 중도층·무당파 유권자를 겨냥해서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과의 통합이 결렬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설 이후 4자(개혁신당·새로운미래·새로운선택·원칙과상식) 개혁신당에서 이탈해 독자 행보에 나서게 된 것이다.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당초 보수당 대표였던 이준석과 이합집산을 명분 있게 바라는 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의 총리이자 대선 후보로 정반대 편에 섰던 그였다. 이념·가치가 다른 세력 간 화학적 결합에 대한 우려가 많았던 것이다. 전격 성사된 급조 통합 탓이다. 실리를 좇다 명분까지 놓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새로운미래 측은 다시 세결집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盧, 시대정신 읽은 새로운 리더십

총선은 차기 대선의 바로미터다. 총선을 통해 대선 정국에서 민심의 향배를 가늠해 볼 수 있어서다. 2027년 대권을 노리는 야권의 유력 주자인 이재명과 이낙연의 '총선 셈법'이 복잡해진 이유다. 노무현은 위기 관리 리더십의 전형이다. 그는 에두르지 않았다. 우선 처절한 자기희생과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자신 만의 길을 만들었다. 2000년 16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도전 때마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담보로 잡혔다. 98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서울 종로를 버리고 고향인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서 도전했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명분에서다. 자기 희생과 헌신을 통해 국가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는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지역주의 극복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했다"고 썼다. 결국 지역은 덫이 됐다.

'바보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읽는 새로운 리더십은 대권의 발판이 됐다. 지역주의 극복은 정치 인생을 관통한 키워드이자 필생의 어젠다였다. 전화위복, 지역은 그에게 힘이 돼 줬다. 광주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2002년 대선에서 든든한 후원군이었다. 정치적 자산과 브랜드도 만들었다. 지역감정·지역주의 타파나 수도이전으로 대표되는 지방 분권 등과 같은 국토균형발전이다.

"마지막 대권만 남았다"는 두 정치인을 이야기 할 때 노무현은 빠지지 않는다. 이낙연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선 후보와 당선인 대변인 등을 지냈다. 이재명은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에 감명받아 인권변호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 13대 청문회 스타로 데뷔해 92년 14대 총선에서 처음 낙선할 때 노무현의 선거구호였다. 낙선할 줄 알면서도 원칙을 지키려 강행한 당시 부산 출마를 그는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92년 3당합당 거부 탓에 민주당 후보로 나선 터였다. 그는 험지 부산에서 3번을 포함해 모두 4번 낙선했다. 노무현은 그렇게 전투에선 졌지만 전쟁에서 승리했다.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발광체' 정치인으로 성장해가면서다.

유지호 디지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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