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의 문턱이다. 아침저녁으로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머지않은 동장군의 방문을 예고한다. 누가 청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성큼성큼 문 앞에까지 와 있다. 춥다. 스치듯 떠나가는 가을이 그래서 더 아쉽다.
찬바람이 부는 건 요새 날씨뿐만이 아닌 듯싶다. 각종 현안을 두고 갈등하는 광주시와 전남도 사이에도 칼바람이 멈추질 않는다.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의욕적으로 상생을 외쳤던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오버랩 된다. 무릎을 맞대고 상생의 정치를 펼쳐야 할 시점인데, 마이너스의 정치로 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공허한 시-도 상생의 목소리
지난해 7월 강 시장과 김 지사는 민선 8기 출범 이후 첫 번째 광주전남 상생발전위원회에서 의미심장한 말들을 쏟아냈다. 강 시장은 "시-도의 협력 시너지 효과는 '1+1=2'보다 큰 '1+1=10' 정도의 느낌이 든다. 초광역 협력만이 지방소멸 위기를 막을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화답하듯 김 지사는 "광주·전남 상생을 강조해 온 최고의 파트너를 만났다. 상생협력은 원팀을 이룰 때 미래 100년 발전의 원동력을 확보할 수 있고 부부처럼 일심동체가 돼야 큰 진전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광주시와 전남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상생의 의지는 온데간데없이 현안마다 충돌하고 있다. 지역의 최대 숙원인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이 그렇고, 광역철도 건설 노선과 관련해서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반목을 넘어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되는 양상이다.
호남권 최초로 추진되는 광주~나주 광역철도 건설은 노선 변경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광주시는 효천역 경유 변경 노선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업을 접겠다는 벼량끝 입장을 내놨다. 극한 상황이다. 이 안은 상무역~서광주역~서부농수산물센터~효천역~도시첨단산단~나주 남평~혁신도시~나주역으로 이어지는 총연장 28.77㎞ 구간이다. 기존 노선보다 2.31㎞ 길다. 반면에 전남도는 국토부가 용역을 통해 확정한 기존 노선안을 고수하고 있다. 효천역 경유 없이 상무역, 서광주역에서 혁신도시, 나주역으로 직통하는 총연장 26.46㎞다. 관건은 비용 대비 편익, 경제성 분석(BC)으로 기존안은 0.78, 변경안은 0.63이다. 길이가 늘어나는 만큼 총사업비도 기존 1조5192억원에서 2676억원 가량 늘어난다.
이 때문에 전남도는 기재부 예비타당성조사 통과를 이유로, 광주시는 광역철도의 경제성 담보를 내세우며 맞서 있다. 기존안 고수와 사업중단 불사로 갈린 두 지자체 사이에는 접점이 없다.
광역철도 노선, 군공항 이전 갈등
시-도 간 최대 현안인 광주 군공항 이전은 정부 방침이 세워진 이후 십년 넘게 답보상태다. 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전 대상지 선정 절차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군-민간공항 동시 이전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실타래가 꼬일 대로 꼬였다. 지난 2018년 광주시와 전남도가 체결한 무안국제공항 활성화 협약의 파기 여부도 맞물려 있다. 한 때 군공항이전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재정지원 규모가 확대되면서 청신호가 켜지는 듯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지금쯤이면 최소한 이전 대상지의 윤곽 정도는 나왔어야 하는데, 단체장들의 정치력 부재가 더없이 실망스럽다. 오죽했으면 광주시의회 한 의원이 "정치가 실종됐다"며 강기정 시장, 김영록 지사, 김산 무안군수까지 싸잡아 비판했을까.
많은 이들은 지금 골든타임을 놓치면 상황이 훨씬 나빠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전국적으로 공항 건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부의 재원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만약 광주군공항 이전의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사업이 재조정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런데도 단체장들은 요지부동이다.
단체장들 통 큰 결단 내려야
광주시와 전남도 사이의 갈등과 반목은 오랜 화두다. 겉으로는 시-도 상생을 외치지만 안으로는 늘 곪아 있었다. 민선 1기 허경만 전 전남도지사와 송언종 전 광주시장 사이 골 깊은 갈등을 빗대 '허송세월'이라는 풍자가 회자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민선 7기를 거치는 동안 끊임없이 충돌했다. 역사적으로 한 뿌리라는 것은 그저 허울에 불과했다.
그래도 민선 8기만은 기대해볼 만 하다고들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강기정, 김영록 두 단체장의 상생 의지가 강했고 주변 여건들도 무르익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의 좌고우면이 그 원인이다. 통 큰 정치력에는 조정과 양보, 결단, 설득이 뒤따라야 하지만 무엇 하나 두드러진 게 없다. 심각한 건 뺄셈정치의 피해가 고스란히 지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정치력 부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이제는 정치 지도자와 지역 리더들이 합리적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다." 오래 전 두 단체장 가운데 한 분이 토해낸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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