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포할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지만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소리는커녕 '5류로 추락했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들은 여든, 야든 모든 정치권에 대해 실망과 탄식을 넘어 분노와 혐오감까지 드러내고 있다.
지금의 거대 양당은 거의 모든 사안과 이슈에서 극렬하게 대립하는 무한정쟁(政爭)을 일삼고 있다. 일부 강성지지층의 맹목적 팬덤정치에 파묻혀 극단적인 언행으로 정치권의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서로에 대한 불신의 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런 여야의 '분열정치'가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면서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 꽃'인 협상과 타협은 사라진 채 대립과 갈등만 난무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다. 남북관계와 지정학적 불안요인 등으로 한국 기업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 기업 주가에 비해 낮게 형성돼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 리스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요인인게 분명하다. 정치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
여당은 오만하고 무능력하다. 친윤 일색 지도부라는 태생적 한계와 당정 일체 행보가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지금 국민의힘에는 나라와 민생을 살리겠다는 절실함을 찾아볼 수 없다. 겉으론 연일 민생을 외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윤심만 바라본다. 특히 김재원 최고위원의 5·18폄훼 발언 등 극우 보수 성향 정치인들의 실언과 실책으로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이 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친명-비명간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의 부실한 실력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다. 여당과 마찬가지로 위기감도 없다. 여기에 송영길 전 대표의 '돈 봉투' 전당대회 문제에 이어 김남국 코인파동까기 겹치면서 도덕성까지 타격을 받으면서 국민들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최악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국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전년보다 10.3%p 떨어진 24.1%에 불과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지난 10년간 국회 신뢰도는 압도적인 '만년 꼴등'이었다.
거대 양당에 대한 불신과 실망은 자연스럽게 무당층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누가 더 못하냐'는 경쟁을 벌이는 양당이 자초한 결과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4월 3주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무당층 비율은 31%에 달했다. 같은 기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각각 32%로, 무당층과는 불과 1%p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선거를 치르면 1당은 여도 야도 아닌 무당이 될 것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양당정치의 폐해로 최근 제3지대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에도 몸담았던 금태섭 전 의원은 "제3지대 세력이 이기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며 신당 창당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견고한 양당 구조로 신당 성공에 대해선 부정적이지만, 현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보면 '제3지대'가 만들어질 환경은 충분히 조성됐다는 분위기다.
거대 양당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경제의 실패,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저들의 생명력이 길어질수록 국가 경쟁력은 떨어지고 국민들의 고단한 삶은 계속될수 밖에 없다. 방법은 있다. 거대 양당이 낡은 정치를 벗고 혁신하든지, 아니면 그 빈 공간을 새로운 세력이 뚫고 들어가도록 국민이 나서야 한다. 구태 정치를 마감하고 새로운 정치시대를 열 수 있는 출발점이 다가오고 있다. 내년 4월 치러지는 제22대 총선. 거대 양당의 오만함을 심판하고, 권력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민심의 편에 서는 정당과 인물을 선택하자.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보자. 박석호 취재1본부장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