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가을 가뭄과 탄소 중립

@양기생 신문잡지본부장 입력 2022.10.19. 15:12

필자의 고향은 화순 이양 골짜기다. 지난 주말 보름 만에 시골을 찾았다. 90이 넘은 연세의 아버지를 뵙기 위해서다. 한 달에 2∼3번은 시골을 방문해 부모님의 안색을 살피고 있다.

구순을 넘긴 연세도 그렇거니와 요즘 들어 기력이 부쩍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추석에는 장어구이에 막걸리 한 잔을 먹은 뒤 갑자기 가슴 통증을 호소하고 호흡이 거칠어져 식겁한 적도 있었다.

아스라이 향수가 밴 시골 마을은 보성 복내로 넘어가는 장치 저수지 길목에 있다.

마을은 저수지 둑을 지나 상류 쪽 양지바른 산비탈에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60여 호 정도의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보건진료소 포함해 건물 8채가 전부일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장치 저수지는 시골에 있는 저수지라고 하지만 제법 규모가 크다.

화순에는 저수지가 163개 있다. 43개 저수지는 농어촌공사가 맡고 있고 마을 단위 소규모 저수지 120개는 화순군이 관리하고 있다. 저수량이 500만 톤 정도인 장치 저수지는 화순 전체 저수지 중 가장 크다.

토종 붕어가 잘 잡힌다는 명성 때문에 낚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장치 저수지의 규모가 커진 것은 이명박 정부 때 추진한 4대강 사업 때문이다. 당시 농어촌공사는 영산강 수량 확보와 집중 강우 대비 용수 조절을 이유로 둑 높이기 사업을 진행했다.

이전보다 저수지 둑이 9m 정도 높아져 저수량이 대폭 증가했다. 둑이 높아짐에 따라 필자의 마을은 수몰 위기에 처했다.

마을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 다시 형성됐다. 뒤편 산을 깎은 뒤 메꾸고 수도와 전기 등 기반시설을 정리한 뒤 가구별로 부지를 분양받았다. 마을 전체가 과거보다 20m 정도 높아져 다시 들어선 셈이다.

장치 저수지는 평소 저수량 보다 훨씬 빠져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 절반이 채 되지 않게 보였다. 수량이 빠지면서 잠겼던 옛날 모습이 드러났다. 마을 앞 초등학교 건물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기단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운동장 주변을 에워쌌던 플라타너스 나무와 측백 나무는 앙상하게 가지만 드러났다. 학교 옆 도로와 냇가는 고스란히 형체를 드러내며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형체가 드러난 냇가 둑에서 낚시인 몇 명이 낚싯대를 늘어놓으며 고기잡이에 여념이 없었다. 간만에 드러난 초등학교 전경을 힐끗힐끗 보며 차는 시골집으로 향했다.

봄부터 지속되고 있는 가뭄으로 전국 저수지가 바닥을 속속 드러내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이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저수지 45곳이 저수율이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전남이 28곳 62.2%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전남지역 저수율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초부터 시작된 가뭄 여파 탓이다. 실제 올 1월부터 지난 9월20일까지 전남지역 강수량은 평년 대비 47∼65% 수준에 그치고 있다.

태풍 힌남노 등이 한반도를 스쳐 지나갔지만 호남지역은 큰 영향을 받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저수율 20% 이하 저수지는 14곳인데 이 중 전남이 6곳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별 맞춤형 급수대책과 농촌 용수 개발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부분이다.

가뭄으로 농업용수 뿐 아니라 식수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역 상수원인 동복댐과 주암호 저수율도 내려가면서 광주시가 비상 급수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4일 기준 동복댐 저수량은 3천600㎥로 예년 대비 48% 수준이다. 수돗물 공급 일수는 154일 정도에 불과하다. 주암댐 저수량은 1억8천600㎥로 예년 대비 58% 수준으로 수돗물 공급 일수는 213일 정도에 그치고 있다.

최근 들어 이상 기후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여름 50일이 넘는 역대급 장마가 지속되며 자동차 침수 피해가 속출하고 농산물 가격이 급등해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을 줬다.

또 그해 갑작스러운 폭우로 구례읍 서시천이 범람해 재산 피해가 발생하는 등 해마다 이상 기후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해지고 있다. 자연이 인류에서 경고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실상을 생활 속에서 몸소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탄소 중립을 일상 속에서 지켜야 하는 이유다. 양기생 경영관리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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