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8년 전엔 실패, 지금은?···광주 복합쇼핑몰의 정치사회학

@유지호 입력 2022.09.14. 17:16


광주에서 추석 연휴 직전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지난 7일 광주시가 복합쇼핑몰 관련 가이드라인 제시와 함께 민간사업자로부터 사업제안서 공식 접수를 시작하면서다. 인구가 144만명인 광주엔 복합쇼핑몰과 창고형 할인 매장이 없다. 광역시 중 유일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부각되면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역내 사정은 복잡하다. 도시문명의 상징물(랜드마크)인 쇼핑몰을 두고 이해집단간, 보수·진보 정치권 등의 이념과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첫 발을 떼 면서 헤게모니 경쟁도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는 것이다.

복합쇼핑몰은 도시 발전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다.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이른바 몰링(malling)족과 맞물려서다. 영화부터 식사·쇼핑·공연까지 모두 한 곳에서 해결하는 원스톱 문화에서 말미암았다. 상품 소비공간의 진화 덕분이다. 새로운 관광객 유입과 함께 도시문화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쇼핑타운을 만들어 관광 단지화도 가능하다.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와 홍콩의 하버시티 등이 대표적. 올해 초부터 광주가 복합쇼핑몰 이슈로 뜨거웠던 이유다.

'민관협의체' vs '상생발전협'

걸림돌은 여전하다. 구조적으로 내재된 지역 내 갈등이 표면화 됐다. 논의기구 구성을 둘러싼 대립이다. 실제 투자를 해야하는 민간기업과 중소상인·시민사회단체는 이해관계가 상충된다. 소상공인 지원과 교통체증·주차·환경 이슈 등과 관련해서다. 상인대책위는 "피해가 우려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 반영"을 요구한다. 반면 광주시는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별도로 구성하지 않기로 했다. 현행 '유통발전법'상 의무화 돼 있는 상생발전협의회를 활용하자는 취지에서다.

트라우마가 있다. 복합쇼핑몰은 광주에 더 일찍 선 보일 기회가 있었다. 2019년 광주세계수영 대회 개최 과정에서다. 광주시가 먼저 신세계그룹에 요청했다. 특급호텔과 면세점 등 복합쇼핑시설 개발이 핵심이었다. 2015년 5월엔 투자협약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현 유스퀘어 옆 이마트를 허는 대신 지하 7층, 지상 21층 규모의 백화점과 200실 규모의 특급 호텔을 짓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인근 소상공인과 시민단체 등이 즉각 반발했고 광주시도 '판매시설 규모가 크다'며 태도를 바꿨다.

정치가 개입하면서 꼬였다. 정당 정치엔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보수가 자유 경쟁, 시장주의에 비중을 둔다면 진보는 평등과 부의 분배를 강조한다. 2017년 1월 연면적을 기존 대비 40% 축소해 호텔·백화점을 짓겠다는 수정계획을 신세계가 내놨지만 결국 무산됐다. 그 해 5월 '벚꽃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정의당 대선 주자들이 잇단 반대 입장 표명을 하면서다. "상생과 연대의 '광주 정신'"이 명분이었다. 정치논리가 지역 경제를 눌렀다는 뒷말이 나온 배경이다.

정부의 재정 지원 규모·범위도 문제다. 광주는 복합쇼핑몰을 도시 발전과 연계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 지난 7월 여당인 국민의힘과의 예산정책협의회 과정에서 교통망 개선 비용 등으로 9천억 원 규모의 지원을 요청한 이유다. 반면 정부·여당은 대규모 예산 투입 대신,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늘리고 규제를 완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듯 하다. 민간 투자자가 수익을 올리는 쇼핑몰 건립에 세금을 투입하는데 따른 형평성과 다른 기업·지역의 반발 등을 고려해서다.

"판도라의 상자엔 희망 남았을까"

광주가 쇼핑몰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최근 국내 '유통 빅3' 대기업이 앞다퉈 건립 의사를 밝히면서다. 우선, 현대백화점이 '더현대 광주' 출점 계획을 내놓았다. 신세계도 어등산 관광단지에 호남권 최초의 스타필드 건립을 추진한다. 롯데그룹도 롯데칠성 공장 터와 패밀리랜드 등 몇 군데 부지를 후보로 놓고 검토 중이다. 격세지감이다. 8년 전과 달라진 건 쇼핑몰 건립을 약속한 윤 대통령의 당선이다. 정부의 광주지역 7대 과제에 포함됐다. 또한 '노잼 도시' 광주를 바꾸길 원하는 시민들의 건립 여론도 높다.

행정 유연성과 특혜 시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도 향후 논란 거리다. 우선 광주 신세계는 2015년 광주시 도로 일부를 사업 대상 부지로 편입하는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신청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어등산관광단지는 서진건설과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더현대 광주'의 북구 임동 옛 전남·일신방직 공장 부지도 마찬가지. 준공업지역 용도를 바꿔 쇼핑과 문화·레저·엔터테인먼트를 접목한 '미래형 문화복합몰'을 짓겠다는 계획 통과가 전제돼야 한다. 롯데가 검토 중인 부지도 여러 변수들이 있다.

복합쇼핑몰과 특급호텔은 도시의 핵심 인프라다. 하지만 광주엔 없다. 쇼핑몰은 광주의 도시 브랜드·마케팅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기회다. 온갖 이념과 가치가 충돌하고 수 많은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앞으로 각계 각층에서 터져 나올 저항과 반발도 만만찮다. 그러나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길이다. 광주시의 판단과 결정에 쇼핑몰이 '희망의 상자'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동상이몽이 아닌 지역사회 통합과 정부 지원을 이끌어 내면서 특혜 시비까지 잠재우는 '세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지 지켜봐야 할 이유다. 유지호 부국장대우 겸 뉴스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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