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반도체 인재 15만 명 양성, 왜 지방은 반발할까?

@강동준 입력 2022.08.03. 10:19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문제를 잘 푸는 사람들은 대개 쉬운 문제부터 푼다고 한다. 이는 왜 동양계 학생들이 국제시험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가를 살펴보던 중 밝혀졌다고 한다. 반면, 유럽의 학생들은 쉬운 문제부터 풀지 않고 문제지 순서대로 푼다고 한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여러 문제 앞에서 대뜸 쉬운 문제부터 풀어 점수 올리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나중에 회사에 들어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내는 모험을 하고 또 성공시킬 수 있을까?…."

지방대학 위기는 국가·지역의 위기

전 대통령 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역임했던 이민원 광주대 교수가 펴낸 책 '광주·전남 자립발전론'(2021.종로인쇄)에 나온 한 대목이다. 책에서는 "어떻게 해야 지역을 살려낼 능력 있는 지역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과 함께 지역인재의 기준을 정리했다. 먼저 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고, 부당한 억압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그러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6월 2일자 칼럼 '왜 다시 불평등이고 불균형인가?'에서 수도권 집중의 부작용과 과포화에도 지방은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소멸위험지역으로 변하고 있어 더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의 전환을 주장했다. 전남 22개 지자체 중 절반 이상이 사라질 위기다. 말 그대로 지방 몰락은 시간문제로, 그 중심에 지방대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라 대부분의 지방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해 일제히 미달사태를 맞았다. 여기에 지역인재의 수도권 유출로 입학자원이 수적·질적으로 동시에 떨어지는 악순환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대학 입학정원을 따져보자. 현재의 학령인구를 보면 대학 입학 가능 자원이 지난 2020년 46만5천 명에서 오는 2024년 39만4천 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2021학년도 수능 지원자는 49만여 명이었으나 대학 입학 정원은 55만여 명이었다. 지방 사립대학은 물론 거점 국립대학도 미충원 사태를 맞고 있다. 2023년에는 미충원 규모가 10만여 명에 달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문제는 미충원 규모가 지방대학에 쏠린다는 점이다. 2021학년도 전국 일반대 미충원 인원은 1만6천여 명으로, 이중 93%인 1만5천여 명이 비수도권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대학의 위기는 국가와 지역의 위기다. 이민원 교수가 꼽은 대학정책의 문제점이다. '대학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취업률의 부적절성, 정원 조정 실패에 대한 정부의 책임회피, 취업책임의 전가….' 즉, 사회 구조적으로 전체 일자리 증대 없이 대학에서 취업을 늘리라는 폭력적 과제는 대학의 본질인 학문연마와 교육의 질을 위협하는 파괴행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 주도 대학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지원정책도 사업단위가 아닌 특정사업 공모형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도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2021.해냄)는 책에서 취업중심 대학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무려 87%대학이 사립인 나라, 미국은 20%를 넘지 않고 독일은 대다수가 국립대학이다. 그러나 정부 지원 또는 대학 재정의 15% 정도, 이마저도 국립대에 집중돼 사립대학은 지극히 미미한 실정인데 인재양성이든 취업이든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김 교수는 책에서 대학의 기업화와 대학의 보수화, 입시제도의 폐지까지도 주장한다. "이제 대학은 진리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학원이 되었고,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공동체가 아니라 생존경쟁의 새로운 전쟁터로 바뀌었다…."

'인재육성 방식' 선후가 바뀌었다

최근 '반도체 인재 양성'을 놓고 반발이 거세다. '향후 10년간 반도체 관련 인재 15만명 양성'방침에 왜 지방이 반발할까?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려주려는 꼼수,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적·즉흥적 정책, 지역균형발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대선공약과 국정과제를 포기하는 일…." 지방소멸은 곧 국가 불균형의 문제로, 수도권 규제완화를 통한 수도권 대학의 정원 늘리기는 지방대학을 죽이는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다.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이 더 이상 안되는 이유다.

지역대학 교수와 전문가들의 우려도 높다. 반도체 실무경험을 가진 사람이 대학에는 없는데다 산업현장에서 4∼5억 원의 연봉을 받는 인재들이 대학 1∼2억 원 안팎의 연봉을 받고 누가 오겠느냐는 것이다. 국가경쟁력에 필요한 교육인력이라면 정부가, 아니면 반도체 대박에 엄청난 수익을 챙긴 기업이 투자해야 하고, 특히 수백억씩 나가는 대학내 시설 등 인프라 구축을 대학에 떠넘기는 꼴은 아닌지 의구심이란 얘기다.

더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 등 거의 모든 첨단 분야에 인력양성이 시급한 과제다. 고사 직전인 지방대학들이 국가 균형발전과 인재육성에 앞장서도록 선 지원체제를 가동해야 한다. 정원을 늘리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학과 개편은 물론이고 우수교원 확보와 시설확충 등 대학 전체의 업그레이드에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강동준(이사·마케팅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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