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K-택소노미와 원전

@박지경 입력 2022.05.11. 18:58

윤석열 정부가 10일 출범했다. 단 5년 만에 정권교체가 됐지만 많은 것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 에너지정책은 가장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에너지정책 변화는 그 기조가 되는 K-택소노미의 변경으로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2일 인사청문회에서 원자력 발전을 녹색탄소원으로 분류했다. 또 문재인 정부가 확정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대해 "산업계와의 논의가 미흡했다"고 지적한 뒤, "NDC 40%는 국내 여건을 감안할 때 매우 도전적인 목표"라면서 "국제사회의 약속인 만큼 목표는 준수하되 실행가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한 장관의 발언대로라면 윤석열 정부에서 환경정책은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틀로 전개될 것이 확실시 된다. 가장 기본적으로 윤석열 대통령 공약대로 원전 비중을 확대해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다시 짤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우선 K-택소노미를 바꿔야 한다.

분류체계를 뜻하는 택소노미(Taxonomy)는 환경정책에서 사용될 때 친환경(녹색) 경제활동으로 인정하는 지속가능한 금융 녹색분류체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K-택소노미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다. 택소노미는 민간·공공의 친환경 투자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이 체계에 따라 친환경산업에 대한 금융과 세제 지원이 이뤄진다.

그런데 지난해말 문재인 정부 환경부는 녹색경제활동에서 원자력을 제외한 내용의 K-택소노미를 발표했다. 탈원전정책 기조를 유지해온 문재인 정부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란 예측을 빗나가지 않았다.

원자력업계는 건설공기가 길고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원전의 특성상 금융지원이 원활해야 한다며 '포함'을 주장했다. 한국수력원자력도 "K택소노미에서 원전을 제외할 경우 해외 원전 수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기존 계획인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나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 목표에 원전 신설이 없는데다 원전의 택소노미 포함 여부를 두고 국제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을 들어 원전을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환경부 측은 "이번엔 1년, 이후 2~3년 주기로 K택소노미는 조정될 것"이라며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된다면, 우리도 사회적 합의 등을 통해 충분히 재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런데 2개월여 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원자력을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안을 확정, 발의했다. 이 안은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20개국 이상이 반대하거나 EU 의회의 과반수가 거부하지 않는 한 오는 6월 확정된다. 이대로 확정돼 내년부터 시행되면 택소노미는 EU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친환경 활동의 기준이 될 것이다.

다만, 원전이 친환경 활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하도록 단서조항을 달았다. 우선 투자 대상이 될 신규 원전은 2045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건설하려는 국가가 프로젝트 승인일 현재 방사성 폐기물 관리와 원전 폐기를 위한 기금,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계획과 부지 및 자금이 있는 국가여야 한다.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은 2040년까지 승인이 필요하다.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수준까지 안전을 개선하고 2025년부터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도록 했다.

EU 회원국들은 원자력의 녹색 분류를 놓고 1년 이상 갈등했다. 프랑스·폴란드·핀란드 등 7개국은 찬성을 주장한 반면 독일·룩셈부르크·덴마크 등 5개국은 반대했다.이 같은 상황에서 새 정부의 환경부 장관이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 K-택소노미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인수위원회는 아예 오는 8월에 원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하겠다고 밝혔으니 원전에 대한 투자가 다시 이뤄질 것이 확실한 상황이다.

원전이 친환경 에너지가 아니지만 탄소중립을 위해 당분간 필요한 존재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이 '당분간'이 길어져서 탄소중립을 너무 늦어지게 하는 원인이 돼서는 안 된다. EU도 이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탄소중립을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이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 탓만 하다가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뒤처질 가능성도 있다. 탄소중립은 명확한 목표다. 정부와 산업계, 국민이 현명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다만, 우리 국민은 그렇게 우려가 많았던 한미FTA 체결과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파고도 잘 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박지경 디지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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