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끝났다. 돌아보면 민주주의의 축제였을까 싶은, 참으로 지난한 여정이었다. 대선후보 본인들에게도 숨 막히는 레이스였겠지만 유권자들의 시간 또한 녹록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뽑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는 푸념들이 쏟아졌다. 결코 긍정의 의미가 아니다. 역대급 비호감 후보들에다 네거티브까지 판을 치니 한차례 난장을 치러낸 소회를 드러낸 것이다. 이제 대선은 끝이 났고 우리 앞에 놓인 대한민국호의 엄중함을 마주한다.
코로나19 팬더믹 위기상황 속에 치러진 20대 대선은 대한민국에 있어 더없이 중요한 선거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관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대선을 관통한 키워드를 살펴보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다. 선거 초반부터 제기됐던 이 논란은 캠페인 기간 내내 후보자와 유권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도대체 찍을 후보가 없다',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을 뽑아야 하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온통 리스크와 의혹들이 난무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용어들이 등장했고 유력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도는 60%대를 육박했다. 진보·보수·중도 333 진영싸움 속에 차별화되고 흡인력 있는 후보 없이, 여야 모두 상황은 도긴개긴이었다.
이번 대선의 두 번째 키워드는 '사상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전'이다. 한마디로 축제의 장이 돼야 할 대선이 진흙탕싸움으로 변질됐다. 대장동 의혹, 본·부·장 리스크, 녹취록 공개, 막말 파문, 배우자 리스크 등 끝없이 쏟아진 네거티브 총질로 단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인신공격과 추문'(mudslinging and scandal).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대한민국 대선을 단적으로 정의했다. 후보자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민들의 품격까지 떨어트린 결과다. 정치인들이 조장한 갈라치기는 진영을 넘어 세대와 계층, 지역까지 대한민국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세 번째 키워드는 역대급 '초박빙 대선'이다. 선거 초반부터 양강 후보의 지지도가 엎치락뒤치락 하더니 개표 상황까지 피 말리는 싸움이 이어졌다. 일찌감치 진영싸움 구도가 만들어진 데다 후보들의 비호감이 더해진 지표였다. 통상 대한민국의 대선은 진보와 보수가 팽팽히 맞서는 구도 속에, 후보의 인물과 정책으로 스윙보터인 중도층을 얼마나 끌어안느냐의 싸움인데. 이번 양강 후보들은 워낙 핸디캡이 많은 터라 차별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후보도 치고나가지 못하는 초박빙의 싸움이 이어졌고 서로를 향한 네거티브 총질만 더 드세졌다.
이밖에도 '단일화 후폭풍', '국회 0선 대통령', '유세 현장에서 사라진 배우자들', '정권교체 10년 주기설' 등 이번 대선을 특징하는 키워드들은 차고도 넘쳤다. 그렇게 대선은 마무리됐고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20대 대통령이 탄생했다. 이번 대선이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었던 만큼 대한민국호를 이끌 차기 대통령의 책무도 실로 막중해졌다. 무엇보다 진영간, 세대간, 계층간 여러 갈래로 찢긴 대한민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역대 대통령들의 화두이기도 했던 국민통합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더욱 절실한 이슈로 떠올랐다. 이번 대선이 국민들에게 남긴 생채기가 너무 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통합과 포용의 협치가 필요한데,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에 의문이 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회 의석수를 비롯한 정치 지형도 위협요소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향후 대한민국의 5년은 대단히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던 사전 예측들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위기 극복과 치유, 인식의 대전환을 이끄는 것도 차기 대통령의 몫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글로벌 위기상황이나 부동산 경제정책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대선이 치열해진 것도 따지고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인 만큼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역 차원에서는 대선 공약의 실현이 급선무다. 역대 대선에 비해 빈약하기 짝이 없었던 공약이었고 미래를 담보할 메머드급 청사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마저도 차기 대통령이 실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매번 대선 때면 호남민심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됐다가 선거만 끝나면 이내 나 몰라라 하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이젠 안 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되는 대통령 선서의 무게감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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