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메타버스 졸업식 적응하기

@양기생 신문잡지본부장 입력 2022.02.23. 16:58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축하 소리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바일이나 PC로 참여하고 있지 않으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학교 현장에서 진행되지 않고 온라인 가상공간인 메타버스(가상우주·metaverse)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메타버스에서는 성대한 축하연이 진행된다. 넓은 잔디를 배경으로 하는 캠퍼스는 구름인파로 가득하다. 졸업생과 학부모의 아바타들이다. 캠퍼스 곳곳에는 졸업을 축하하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졸업 축하 문구를 달고 있는 풍선은 공중을 떠다닌다. 알 수 없는 장르의 음악은 귀를 때린다. 곳곳에서 팡파르도 울려 퍼진다. 한껏 멋을 부린 아바타들은 삼삼오오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다. 미래 메타버스 졸업식 장면이다.

겨울 끝자락에 접어들면서 따사로운 햇살이 그립다. 아지랭이 피는 봄 마중을 해야 할 시기인데 늦추위가 매섭다. 이맘 때 쯤 보여야 할 사회 풍경 하나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졸업식과 입학식 얘기다. 일선 학교와 대학들이 졸업·입학식을 취소하거나 비대면 형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걷잡을 수 없어서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난 지금은 일선 학교에서는 이별과 만남의 시기다. 정들었던 친구와 헤어지고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 대학생은 사회로 진출하며 치열한 경쟁 세계에 돌입하는 시기다.

2말 3초가 졸업과 입학 시즌이라고 한다. 코로나 여파에 따라 비대면으로 진행하다 보니 언제 어디서 졸업하고 입학하는 지 알 수가 없다. 딱히 시즌이 없어졌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일선 초·중·고등학교 졸업은 새해가 시작되면서 시작해 2월 초면 전부 끝난다. 대학가는 2월이 졸업 시즌이다.

그나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 전부터는 온라인으로 대체하고 있어 분위기도 느낄 수 없다. 교육 당국은 지난달 초 일찌감치 온라인 졸업식으로 대체해 진행하라는 공문을 일선 학교에 내려보냈다.

예년의 시끌벅적했던 졸업 풍경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비대면 졸업식이 대세를 이루면서 평생 추억이 될 졸업식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게 된 현실에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아쉬운 사람은 또 있다. 학교 주변 상가와 화훼농가, 사진관도 졸업과 입학 특수가 사라져 울상이다. 일부 학교는 학위복과 학사모를 대여해주고 포토존을 만들어 제공하면서 아쉬운 이별의 순간을 기록하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학창시절을 평범하게 보냈던 필자는 기억에 떠오르는 졸업식은 딱히 없다. 다만 고등학교 졸업식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졸업식 날 당시 고3 담임선생님은 교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학교 대강당에서 진행된 3학년 전체 졸업식 이후 반별로 교실로 이동해 이별의 시간을 갖고 졸업장을 개인별로 나눠주는데 얼굴을 비치지 않은 것이다.

학력고사를 준비하며 1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추억을 되돌아보고 학생들의 마지막 소중한 기억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인데 그 이유는 학생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대립은 학년 초부터 시작됐다. 당시 60명의 학생 중 공부를 작파한 이가 3분의 1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고3 내내 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담임은 학기 초 체육대회를 개최하는 등 분위기 잡기에 나섰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선생님의 다양한 화해 시도는 오히려 학생들의 반감을 샀다. 메시지 전달자 역할을 하던 반장이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만두겠다고 할 정도로 대립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갈등의 정점은 9월 초에 진행된 특수목적 대학 진학이었다. 육군사관학교를 비롯한 경찰대학, 해군과 공군사관학교 지망생의 원서를 접수했는데 6명이 지원했다. 다른 반은 보통 1명 정도가 특수대학에 지원하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비율이었고 담임은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담임은 원서 접수는 커녕 진학지도 조차 해주지 않았다. 일반 교과 선생님이 대신 원서를 작성해 접수할 수 있었다.

갈등의 골로 인해 일부 학생은 담임 선생님을 벼르고 있었다. 졸업식날 맞짱을 뜨겠다는 이도 있어 긴장감이 나돌기도 했다.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아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필자를 비롯한 몇몇 학생은 밀가루와 꽃다발로 더러워진 교실을 청소하고 책 걸상을 정리한 뒤 학교를 떠났다.

코로나가 교육 현장 곳곳을 변화시키고 있다. 메타버스 졸업식 등 익숙하지 않은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학사모를 쓴 채 꽃다발을 들고 셀카를 찍고 있는 대학생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애처롭다. 코로나 시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교 현장의 웃픈 풍경 중 하나다. 가상우주에서 진행되는 졸업식에 적응해야 할 과제도 새로 생겼다. 양기생 경영관리미디어본부장

슬퍼요
1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